1998년 2월 5일, 베를린국제영화제 회고전 초청을 앞두고, 화재 사고로 비극적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김기영 감독이 손에서 놓지 않았던 작품은 <악녀>였다. 미완의 작품이긴 했지만, 보지 못한 ‘녀’ 시리즈가 더 궁금해지는 2018년이다. <하녀>(1960)를 변주한 <화녀>(1971), <충녀>(1972), <화녀’82>(1982), <육식동물>(1984)을 비롯해 <수녀>(1979), <아침에 퇴근하는 여자>(1979) 등 제목에 내세운 것만 보더라도 김기영 감독의 작품에서 ‘여성’은 언제나 흥미로운 관찰의 대상이었다. 1997년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에서 기괴하고 집요한 표현력으로 ‘컬트감독’으로 읽히며 재조명된 뒤 이후 끊임없이 조명될 만큼, 32편의 유작을 통해서 읽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감독. CGV아트하우스의 김기영 기념관 선정을 계기로, 2018년 현재에서 바라보는 김기영 감독의 여성 캐릭터에 대해, 여성들의 관점으로 논의해보았다. 모은영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 손희정 평론가, 이언희 감독(<미씽: 사라진 여자> <탐정: 리턴즈>), 차성덕 감독(<영주>)이 참여했다. 기존 남성 감독들의 대담과는 사뭇 다른 흥미진진한 내용들로 가득했다.
-<하녀>를 변주해 만든 <화녀> <충녀> <화녀 ’82> <육식동물>로 이어지는, 김기영 감독의 본인 영화 리메이크 역사를 돌아보면 10년 주기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필연적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여성의 변화를 돌아보게 된다.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고 일을 하는 아내가 있다면, 이에 반해 무기력하거나 무능력한 남성들이 한결같이, “요즘 여자들이 기가 세다, 일을 하지 않는다”는 등의 언어로 아내를 비난하고 두려움을 표시한다.
=차성덕_ 이번에 다시 한꺼번에 <하녀> <화녀> <화녀 ’82>를 보며 더 확연해졌는데, 단순히 가부장적인 구조나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대상의 구조를 드러낸 게 보이더라. 여직공으로 시작해서 하녀가 된다든가, 양계장을 운영한다든가 하는 이런 것들이 정말 철저하게 리얼리티에 기반하고 있어 시대상을 드러내는 데 한치도 소홀하지 않았던 감독이라고 생각된다. 널리 알려진 컬트감독이 아니라 굉장히 리얼리즘을 추구한 감독이었다.
=손희정_ 어떻게 보면 김기영 감독의 중요한 주인공은 서울인 것 같다. 그의 영화에는 서울이 변화하는 모습이 계속 묘사된다. 한강 다리가 중요하게 잡히고, 개발되는 도시의 풍경이 담긴다. <하녀>의 이층집을 시작으로, <충녀> <육식동물>에 이르면 아파트, 부동산 투기로 넘어간다. 그런 가운데 변하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충녀>의 첫 장면, 정신병원에 수감된 남자들은 여자가 너무 기가 세서 발기가 안 되는, 신경증에 걸린 남자들이다. 생물학자가 곤충을 연구하는데 암컷, 수컷이 교미한 후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 현상에 주목해봤더니 인간사도 그렇더라는 이야기를 한다. 20여년간 김기영 감독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게 결국 암컷에 잡아먹히는 수컷 이야기인 것 같다. 그 이야기가 중심에 있고 시대적인 맥락만 계속 변화하는 것이다.
=모은영_ 성적, 경제적으로 무기력한 남자들이 나오고, 뒤로 가면서 점점 더 퇴행해서, 아예 나중에는 기저귀를 찬다(<육식동물>). 이게 자조적인 것일까, 아니면 그런 퇴행에 대한 비판일까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흥미로운 건 그 무기력함과 더불어 남녀를 불문하고 지속적으로 ‘장애’라는 부분이 결부된다는 것이다. <고려장>(1963)이나 <수녀>를 보면 말 못하는 여자, 다리를 저는 남자가 있고, 신경쇠약 같은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도 많다. 한국 사회의 어떤 결함을 캐릭터들에게 신체적인 징후로 표현하는 것 같다.
손희정_ 김기영 감독의 작품에서 여성과 노동 문제와 직결되는 지점이다. 1953년에 만든 데뷔작 <나는 트럭이다>는 트럭의 관점에서 전후 한국사를 돌아보는 19분짜리 작품이다. 미국에서 온 트럭이 한국전쟁을 겪으며 노후하고 망가졌다 상이용사들의 노력으로 다시 작동된다. 미군 공보물로 제작된 영상이라 감독 자신이 원하지 않은 부분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초기작에는 이 나라의 역사를 끌고 갈 수 있다는 전망 같은 게 있었다면, 60년대 들어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불안이 짙게 깔려 있다. <하녀>를 보면 중산층 가정을 이루어도 결국은 안 될 거라는 불안이 야기되고, 그렇게 80년대까지 가면 남자가 기저귀까지 차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남성성이 회복되지 못할 거라는 불안이 극대화된다.
차성덕_ 사회는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형사는 다그치기만 하고 남자는 그냥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움직이는 건 여자뿐이다. 남자는 아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첩이 같이 죽자 하면 죽는다. <화녀>의 경우, 양계장에서 부인이 병아리를 고르는 장면에서 수컷은 쓸모없으니 죽여야 한다고 말하는데, 실은 인간 사회에서도 수컷은 필요가 없어 보인다. <이어도>에서는 여자는 다 섬에 남고 남자는 다 죽어 시체가 되어 돌아온다는 식의 세팅을 한다. 단순히 개인적인 자조가 아니라 결국 이것이 사회를 보는 감독의 감수성이 아니었을까 싶다.
=모은영_ 70년대에 만든 <수녀>의 남자주인공은 베트남에서 돌아온 상이용사다. 전쟁에서 다쳐 몸은 불구가 되었고, 가지고 온 건 통조림 30개뿐이다. 통조림을 팔아서 가정을 살리려(재건) 하는데, 아내(김자옥)가 통조림을 뜯는다. 이걸 먹어야 살 수 있고 일을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이후 아내가 죽세공을 해서 가세를 일으키면서 계속 말한다. “여자가 손재주가 있으면 남자가 게을러지고, 바람 피워서 집안이 망한다”고. 그리고 결국 실제로 그렇게 된다. (웃음)
차성덕_ 영화 속 남자들은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거나 유흥을 즐긴다든가, 아니면 작곡을 하는 게 전부다. 그 와중에 여자들은 바느질을 하고(<하녀>), 양계장을 운영하고(<화녀>), 죽세공을 하는(<수녀>) 등 손으로 끊임없이 노동을 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것도 여성이다.
-가부장제라는 사회의 틀이, 그렇게 기술과 이성을 가진 여성들을 나서지 못하게 한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결국 자신들이 가정의 경제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동력이면서도, 겉으로 보여지는 가장의 권위는 남성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 가령 <수녀>에서 아내 순옥은 죽세공으로 돈을 벌면서도 결정권을 행사하는 대신, “당신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며 안주인 역할에 안주한다.
손희정_ 그랬던 것이 80년대로 들어가면 완전히 달라진다. <육식동물>에 와서는 여자가 복부인 형상을 하고 전권을 쥐게 된다.
차성덕_ 김기영 감독의 영화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사회와의 호응이다. <하녀>도 ‘식모가 그 집의 아들을 죽였다’는 기사 한줄에서 시작했더라. 그걸 토대로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거다. 응징, 권선징악일 수도 있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기사 안에서 감독은 이상한 에너지가 순환하는 집안을 상상했고, 그렇게 현실에 감응하는 것이 독특하고 남달랐다는 생각이 든다.
손희정_ 김기영 감독의 영화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설정이, 무능하기 짝이 없는 남자 형제를 먹여살리기 위해서 여자 형제가 공장에 취직하거나 몸을 파는 것이다. 지금은 새로울 것 없는 묘사지만 70~80년대까지는 여성노동이 완전히 지워진 역사였고, 다른 작품에서 그냥 도구적으로 활용되고 버려졌다는 느낌이 있었다. ‘몸 파는 여동생’이 남성성이 좌절돼서 내가 그녀를 지키지 못해 안쓰럽기 짝이 없는 남자를 수식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김기영 감독은 그때 완전히 자기 의지를 가지고 노동한 여성들이 무능한 남자들을 어떻게 응징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당시로 보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시각이었던 것이다.
모은영_ <하녀>도 그렇고, 여성은 당시 새로 유입된 노동력이었고 그걸로 인해 남성, 가부장제의 흔들림이 분명 있었다. 그 안에서 두려움도 야기된 거고. 그 두려움이 기괴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이 영화들이 그걸 과장되게 보여주면서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여성이 무엇인지 정의해준 건 사실이다.
손희정_ 만약 감독님이 IMF 외환위기 때까지 작품을 했다면 남성성이 어떻게 재현됐을까 궁금하다. IMF 시기를 ‘위기의 남성성’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김기영 감독 작품에서는 남성성이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 김기영 작품에서 여성에 대한 재현보다 남성에 대한 재현에 더 주목해야 하는 게 아닐까. 워낙 여성의 재현이 기괴하게 전개되니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더 현실적인 건 남성의 재현일 수도 있다.
=이언희_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여성들에 대해서는 기괴함을 극대화해서 영화를 흥미롭게 만드는데, 사실 그 여성들이 자신의 욕망을 가지고 뭘 하겠다, 하는 게 없다. 본능은 있는데, 그 욕구가 거기서 끝나면 저 기괴함은 무엇을 위한 건지에 대한 것이 없다. 겉으로는 여자의 시점이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남자의 시점에서 그 여자를 보고있을 뿐이다. 여자들의 에너지와 욕망, 그리고 노력을 엄청나게 두려워하는 반면, 그 여자에 대한 연민이 전혀 없다. 그렇다고 남자에 대해서 연민을 하느냐,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김기영 감독의 여성들이 노동, 성공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고, 성적인 욕망을 대사로 가장 명쾌하게 드러낸다는 점은 흥미롭다. 성적인 욕망을 되돌아볼 때 <만추>(1966)를 변주한 <육체의 약속>(1975)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똑같은 상황에서 다른 감독들이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문예적으로 풀어낸다면, 김기영 감독은 한정된 시간 안에서 반드시 섹스를, ‘삶의 기쁨’이라는 대사를 통해서 완수해낸다.
모은영_ <양산도>(1955)를 보면 사랑을 이루지 못한 두 남녀가 차례로 죽고 남자의 무덤이 갈라지고 여자가 뒤따라 들어가 무덤 안에서 섹스를 하기까지 한다.
이언희_ 다들 이런 생각은 할 수 있지만 실현하지는 않는 것. 김기영 영화에서는 그걸 여자들이 쉽게 내뱉는다. 난 그게 너무 재밌더라.
차성덕_ 맞다. ‘나, 너랑 하고 싶다’ 라는 것을 너무나 노골적으로 요구한다.
모은영_ 야생성, 생명에 대한 집착이 크다. 태평양전쟁 당시 한국 청년의 고난을 그린 초기작인 <현해탄은 알고 있다>(1961)를 보면 남성, 여성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삶의 의지가 엄청나다는 걸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는 데서도 그걸 헤치고 나오는 게 사람이다. 전쟁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그들이 집착하는 것은 원초적인 것, 본능적인 것, 먹는 것, 성행위 같은 것들이 아닐까. <이어도>, <바보사냥>(1984) 등을 거치며 생명, 환경 문제에 대한 생각은 더 극대화된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건 남성이 대를 잇는다는 것보다 여성들이 아기를 갖는다는 것이다. 생명과 잉태의 문제에 있어서, 남성은 결국 생명을 잉태하지 못해서 무기력해지고, 부러움을 가지고 자신감을 잃게 된다.
차성덕_ 김기영 감독에게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것은 너무나 매혹적인 관찰의 대상이다. 뭔가 자신이 한번 되어보고 싶었던 욕망의 재현이었던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 씨에 대한 욕망이 크게 작용한다면 김기영 감독에게 중요한 것은 잉태된 자리, 잉태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어떤 질투 혹은 선망일 수도 있겠다. 재밌는 것은 동시대의 다른 감독들과 달리 여성의 몸을 판타지, 낭만주의로 대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유쾌하고 통쾌하다.
손희정_ 그러고 보면 이 사람의 욕망이 퀴어적인 것 아니었을까. 엄청난 생명력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데 이걸 남자들이 행사하는 게 아니라 여자들이 행사하고 있고, 김기영 감독은 남자 캐릭터보다 훨씬 더 여자 캐릭터와 비슷하다. 결국 김기영 감독은 자기를 드러내고 싶은 공간으로 여성 신체를 고른 게 아닐까. “내 씨를 네 안에 뿌리겠어”가 아니라, “사장님의 피를 더 받고 싶어요”라는 대사들. 이런 것들이 왜 여성들에 의해서 표현되는지 생각해볼 문제다.
이언희_ 반면 이미 있는 아이에 대해서는 아무 의식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본처들을 보면 하나같이 내 아이들을 지킬거라는 의식이 강하지 않다. 번식, 섹스에 대한 의지가 강해서 “당신의 애를 낳아야겠어요”라는 대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과는 달리, 지키려는 의지는 그만큼 크지 않은 것 같다.
차성덕_ 김기영 감독의 영화에서 말하는 생명은 성스러운 것과 거리가 있다. 부성이나 모성이 문명화된 어떤 것이라면 감독님은 그런 것에는 1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하녀>에서 하녀와 장자가 다 죽는다. 그때 생모가 “이왕 이렇게 죽은 애, 우리는 먹고살 생각이나 해요”라고 말한다. 생명의 귀함은 엄마로서 아이를 잘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번식에 국한된다.
이언희_ 어차피 또 낳으면 되니까 하는 그런 생각이 깔려 있는 것 같다.
손희정_ <파계>(1974)를 보면 비구니가 남자 승려들을 찾아가서 유혹을 한다. 유혹에 넘어오면 고자로 만들어버리고, 그걸 이겨내면 “넌 역시 진정한 승자”라고 한다. “남자를 거세해서 그들이 고통받는 걸 보는 게 즐거워”라는 비구니의 대사가 지금 보면 그리 충격적인 건 아닌데, 그 당시 사람들은 여자 입에서 저런 말이 나왔을 때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모은영_ <하녀>는 그전까지 흥행 기록을 깬 최고 흥행작이기도 했고, <화녀> <충녀>도 흥행을 했다. <하녀> 때는 여성 관객이 영화에 크게 반응했고, “저년 죽여라”라고 소리치고 그랬다더라. 확실히 당시 대중에도 반향이 컸다.
이언희_ 그런 점에서 도덕성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보면, 하녀들은 크게 도덕성에 좌우되지 않는다. 주인 남자와 정사를 하고서는, “이제 저는 시집도 못 가요” 라고 한다. 그런 말을 하지만, 막상 이후에는 크게 도덕성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는다.
차성덕_ 여자들이 말하는 순결성에 대한 건 엄마의 생각이지 본인의 생각이 아니다. <화녀>에서 하녀(윤여정)가 “엄마가 시집 보내주는 조건으로 여기서 일하랬어요”라고 하는데, 아마도 엄마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가졌던 도덕성이, 딸에게 세뇌되었고, 그것이 딸 자신의 언어가 되어 자기 발목을 잡는 것 같다.
-달라진 여성상을 대변하는 이은심, 윤여정, 김자옥, 이화시 등 주연 여배우들을 살펴보면 새로운 마스크, 새로운 이미지의 배우들을 필요로 했다는 생각이 든다. 생식이라는 관점에서의 풍만함과는 상치되는, 또 당시의 미적 기준에서 볼 때 지극히 모던하거나 강렬한 이미지인 배우들로, 캐스팅 과정에서 무조건적인 기대를 받지는 못했을 텐데 독불장군이라고 알려진 감독님의 성향이 캐스팅에서부터 반영된 지점도 있는 것 같다.
차성덕_ 깡마르고 작고 여성 같지 않은 몸, 잉태와는 오히려 상관없는 몸이 주를 이룬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2016)에 나온 김태리 배우의 이미지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그 영향이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이언희_ 수더분한 이미지의 본처 역할을 하는 배우들과 젊은 여성들은 이미지적으로 확연히 대비된다. 좀 다른 여성배우. 전형적인 미인이 아니고 상업적으로 증명받지 못한 신인배우들을 캐스팅했다는 걸 보면 확실히 새로운 여성상을 만들어내려는 감독님의 의지가 강했던 걸로 보인다.
모은영_ 김지미 배우의 데뷔작도 김기영 감독님의 <황혼열차>(1957)였고, 이 작품으로 안성기 배우도 데뷔한다. 윤여정 배우의 영화 데뷔작도 <화녀>였다. 당시 선우용녀, 임예진, 김자옥 등 배우의 이름도 감독님이 직접 지어주신 걸로 알고 있다. 언급한 배우들이 지금까지 계속 연기를 하고 있다는 점만 봐도 감독님의 심미안이나 혜안이 보이는 부분이 아닐까.
이언희_ 배우들이 새로운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공격적인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거다.
손희정_ 이화시 배우가 그러더라. “김기영 감독 작품 한 다음에 뭐가 무서웠겠어.” 그분은 <이어도>, <수녀>, <반금련>(1981) 등 김기영 감독님의 작품만 연달아 하고 미국으로 갔고 이후 다른 작품에 큰 역할로는 출연하지 않아서인지, 더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있는 것 같다.
-김기영 감독이 전개하는 원초적인 욕망이 있다면, 확실히 그걸 고민하고 고심하고 영화적으로 실현하는 능력이 대단했던 것 같다.
이언희_ 독특한 섹스 신은 전형적인 영화들을 찍어야 하는 상황에서 나온 자구책이 아닐까. 금박을 칠하고 뒹군다든가(<화녀 ’82>), 뻥튀기 기계에서 뻥튀기가 튀겨져 나오는데 그 앞에서 섹스를 한다든가(<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하는 장면들을 보면 어떻게 하면 웃기게 찍을까, 그런 생각을 한 것 같다. 정말 아름답거나 성욕을 불러일으키는 섹스 신들이 아니지 않나. 섹스 신이 들어가긴 해야 해서 그걸로 면피를 한 게 아닐까.
손희정_ 그러기엔 너무 공들이고 있는 것 같다. (웃음) 뻥튀기, 사탕같은 것들 보면.
이언희_ 그래서, 그러자면 공을 들여야 하는 거다. 그만큼 이상하려면. (웃음)
모은영_ 그게 영화라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전의 한국영화가 문예영화였다면, 김기영 감독은 문예영화를 찍더라도 기존의 문예영화처럼 안 찍는다. 영화라는 판타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 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스즈키 세이준과 비슷한 지점이 보이기도 하고. 어쨌든 모든 것에서 기존의 것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 섹스신도 개발을 하는 거다.
손희정_ 직접 무언가 연구를 하셨을까. 사탕 장면(<충녀>)은 정말 아파서 힘들었다고 하더라.
차성덕_ 윤여정 배우가 일어나는 장면에서 몸에 사탕이 하나 박혀있더라. 아, 정말 아프겠다 싶었다. 사실 노골적으로 섹스 신을 보여준 것은 <이어도>의 시간(屍姦)이었다. 사탕 정사 신 같은 경우 유리 테이블을 통해 그 장면들을 보여주는 등 뭔가 하나를 거쳤다면, 시간 장면은 딱 정면에서 바라본다.
이언희_ <이어도>를 처음 볼 때 죽은 남성의 성기에 칼을 삽입해 세우고 섹스를 하는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손희정_ 나는 그것과 연결해서 섹스리스 K시네마라는 부분을 생각해본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영화에 섹스가 없어졌다. 섹스가 없어지는 건 여자가 없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 상황에서 김기영 감독은 계속 여성 캐릭터와 레슬링했던 감독이다. 한국영화의 영향력 있는 남성감독들이 김기영의 작품 세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하지만, 그들이 이어가는 것은 굉장히 자극적인 스펙터클로서의 이미지에 국한된 게 아닐까. 김기영 감독처럼 이런 도전적인 겨루기를 하고 있나 하는 점에는 의심이 간다.
-남녀 관계의 시작이 항상 폭행으로 이루어진다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남성의 폭행이 있은 후 관계가 맺어지는데, 여성은 그 남자를 떠나거나 회피하는 대신 그 남자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발판으로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나가려고 한다. 페미니즘의 시선에서 이 여자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이후의 변화도 주목해볼 만하다.
손희정_ 페미니즘으로 완성된 여성 캐릭터나 남성 캐릭터는 어디에도 없다고 본다. 결국 사회적인 한계 안에서 이 캐릭터가 무엇을 돌파하느냐의 문제다. 이것이 여자가 폭력 이후 섹스에 눈을 떴다고 해석되지만은 않는 건, 시대적인 맥락에서 당시 남자와 여자가 섹스를 할 때 기본적으로 폭력이 있다는 게 어느 정도 깔려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있기 때문이다. 그 폭력의 세계에 들어가 여자들이 버틸 수 있는 건 상대를 발목잡는 것밖에 없는 것이다. 곧 생존의 수단이다.
이언희_ 이제 시집 못 가니까 다 책임지라고 말하고.
모은영_ 그러면서 결국 여자가 남자를 조종한다.
차성덕_ 흥미로운 건 <하녀>에서 여성이 강간을 당하는데, 1차적인 폭력은 절대 이 여성을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는다. 그 시대의 영화에서 강간 장면이 있은 이후 강간을 당한 여성이 자살하지 않았다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2000년대 섹스리스 영화, 남성감독들의 영화에서 여성은 박제된다. 짝사랑하는 아름다운 대상일 뿐이다. 김기영 감독의 여자들이 훨씬 더 모던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나 자고 싶어요”, “아저씨 나랑 자요” 하는 발언들이 있기 때문이다. 통쾌한 지점이다.
모은영_ 그리고 폭행에 있어서도 남자가 여자를 한대 때리고 나서는 자기를 막 때리게 하더라. 이 여성 캐릭터에게는 산다는 게 중요했다.
이언희_ 김기영 감독의 영화에서는 남자들도 섹스를 즐긴다거나 그다지 욕망을 표현하지 않는다. 남녀 모두 일반적인 방식의 욕망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피해자고. 그 사회 안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곤충 같은 것들로 묘사된다.
손희정_ 그런 점에서 남녀 관계를 두고 다른 영화에서 포착하지 않았던 아주 일상적인 여성의 노동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이 흥미롭다. <충녀>나 <육식동물> 등에 등장하는 본처와 하녀의 관계를 보면, 본처가 하녀에게 요구하는 바가 있다. 이 관계의 유지를 위해서는 일종의 계약이 필요하고 거기서 하녀가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남자가 몸무게를 유지할 수 있게 관리하고, 이를 본처에게 보고하는 등의 일이 하녀의 노동으로 나온다. 하녀는 그러한 일들을 하면서 본처에게 용돈을 받는다. 요즘 말하는 꽃뱀이나 김치녀 프레임에서 ‘예쁜 여자들은 남자한테 빨대 꽂아서 섹스를 판다’고 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언희_ 섹스 이후 여자들이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내가 계급이 높아질 수 있다는 만족도 때문이었던 것 같다.
차성덕_ 본처와 하녀 두 여자 사이의 욕망의 삼각관계가 흥미롭다. 하녀는 사실 이 본처처럼 되고 싶었던 거다. 일종의 복제를 하고 싶은 거다. 잘 배워서 똑같이 시집가서 잘 살고 싶었는데, 남자의 폭력 때문에 무너진 거다. 그럼에도 관계를 다시 정립해 잘 살아보려고 했는데, 그런데 뭐가 그녀를 미치게 하냐면, 제대로 된 피드백이 없다는 점이다. 겁탈을 당했고 호소를 했고, 그것에 대해 어떤 보상을 약속했는데 이행하지 않고 방치한다. 그러다보니 광기에 사로잡히게 되고 파국이 온다. 여성의 연대도 이루어지지 않지만, 이 과정에서 남성 폭력은 오히려 이 여자에게 일말의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는다.
모은영_ 이미 60년대 이후 사회적으로 계급이 정해진 상황이었다. 하녀가 그렇게 하는 건 가고 싶은 계급으로 가기 위한 절차다. 중산층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기존의 폭력과 김기영 감독의 폭력이 상당히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이런 상징적인 것들이 바탕이 되어서가 아닐까 싶다.
이언희_ 하녀뿐만 아니라 중산층의 본처도 결국 원하는 건 그거다. 일을 하든 투기를 하든 해서 좀더 잘 살고 싶은 것.
손희정_ 그런 의미에서 김기영의 세계에서는 누구도 연대하지 않는다.
모은영_ 각자도생!
이언희_ 모두가 이득이 되어야 서로 도울 수 있는 건데, 그렇다고 악의를 가지지도 않는다. 각자도생이기 때문에, 내 이익에 문제만 되지 않는다면 남자건, 여자건 관계하고, 또 해칠 수도 있다. 정말 계속 곤충이야기가 되네. (웃음)
-김기영 감독 사후 11년이 되는 변화한 2018년의 서울. CGV아트하우스에서 김기영 헌정관을 만든다고 했을 때, 김기영 감독은 어떻게 반응할지도 궁금하다.
차성덕_ 저승에서 웃고 계실 것 같다. 후배들이 작품 이야기, 또 당시 이야기를 하는 걸 들으시면.
손희정_ 장르를 통해 대중과 맞닿아 있는 감독을 재조명한다는 점에서 헌정관이 생긴다는 게 어울리고 좋은 일인 것 같다.
차성덕_ 오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김기영 감독보다 그분의 아내를 뵙고 싶다. 여기 함께 계셔야 우리가 읽지 못한 것들이 맞춰질 것 같다.
모은영_ 원래 같이 극회를 하기도 하셨고, 늘 감독님과 함께 일한 제작자셨고, 또 화재로 두분이 한날한시에 돌아가셨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이언희_ 어쩌면 이 많은 대사들이 사모님에게서 나왔을 수도 있고….
손희정_ 아니면 그 대사들에, 조강지처 자리에서 지갑 들고 휘두르는 사람으로 묘사됐을 때 또 어떻게 반응하셨을지도 궁금하다.
모은영_ 김기영 감독은 거의 동시대 감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트하우스에서 헌정관을 만들 때도, 너무 과거의 감독이 아니라는 점에서 지금의 관객과 호흡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불균질하고 그래서 더 이야기되는 감독을 만났고, 그래서 그에 대해 지속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관객으로서 너무 즐거운 일이다.
이언희_ 감독님이 <악녀>를 준비하다가 32편의 작품을 남기고 타계하셨는데, 그 안에서 이렇게 많은 읽을 거리를 남기셨다. 나도 더 많이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