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 시리즈의 차사 덕춘 역을 맡으며 원작과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로 꼽혔던 배우 김향기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부모를 잃고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 <영주>의 영주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철부지 동생을 챙기며 살아야 한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서 처음 공개된 차성덕 감독의 데뷔작 <영주>는 배우 김향기의 얼굴로 시작해 얼굴로 끝나는 영화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주라는 인물이 지닌 내면의 복잡함을 얼마나 다양하게, 또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배우에게는 큰 숙제임과 동시에 또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기대도 갖게 하는 영화다. “올 한해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좋은 기억들로만 채워져서 기쁘다”라고 말하는 김향기에게 <영주>는 어떤 영화일까.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수시 합격을 축하한다.
=합격 기사를 보고 나서야 내가 대학생이 되는구나, 라고 실감했다. <우아한 거짓말>(2013)과 최근 <증인>을 함께 작업한 이한 감독님이 예전부터 한양대에 관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그 학교에 들어가고 싶었다. 대학 생활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거라서 긴장도 된다.
-<영주>의 시나리오를 읽고 어떤 영화가 될 것 같았나.
=<신과 함께> 시리즈를 찍고 있을 때 촬영장 숙소에서 처음 받아 읽었다. 영주가 처한 상황이 자극적일 수도 있는 강렬한 이야기인데 이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점이 좋았다. 무엇보다 영주 주변의 사람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내가 연기할 영주만이 아니라 영화 자체로 오래 기억될 것 같았다.
-전작에서도 대부분 사형수의 딸(<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2015))이거나 핍박받던 여진족 고아(<신과 함께> 시리즈)거나 심지어 어떨 땐 죽은 아이(<우아한 거짓말>)로도 등장한 적 있는데 또 이런 무거운 캐릭터를 맡게 된 데 대한 부담은 없었나.
=<신과 함께>의 덕춘을 연기하고 있어서였는지는 몰라도 마냥 기분이 좋을 때 읽어서 그런 생각은 전혀 안 해봤다. (웃음) 오히려 한달 안에 촬영을 끝내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과연 내가 이렇게 감정선이 중요한 영화를, 심지어 양가적인 감정을 오가는 연기를 한달 동안 집중해서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차성덕 감독을 처음 만나 완성될 영화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나.
=감독님과 만나 시나리오를 쓴 계기와 영주뿐만 아니라 가해 부모인 향숙(김호정)과 상문(유재명)의 입장에서 시나리오를 쓸 때의 느낌이 어땠는지도 얘기해주셨다. 정말 누구보다 영주를 잘 이해하고 있으며, 이 작품에 대한 확고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보자마자 믿음이 갔다.
-차성덕 감독도 김향기 배우를 보자마자 영주와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던데.
=<눈길>(2015)을 보시고는 나를 만나고 싶었다고 하셨다. 나를 굳게 믿고 있다는 어떤 확신이 느껴졌다. 촬영할 때에도 그 믿음이 그대로 전달되어, 매번 많은 걸 제시해주기보다 늘 먼저 연기해보라고 말씀해주셨다. 영화에 대해 서로가 원했던 느낌이 잘 맞았던 것 같다. 또 감독님은 시나리오가 담고 있는 내용 그대로 영화로 옮겨지길 바라셨다.
-완성된 영화는 언제 처음 보게 됐나. 직접 보고 나니 어떻던가.
=부산에서 영화를 보는 내내 나 스스로 떨리고 설레는 이 감정이 부담감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영화를 보자마자 이런 게 감독의 영화구나,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의 그 느낌이 영화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영화가 담고 있는 위로의 메시지, 보편적으로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메시지가 잘 담긴 영화라고 생각했다.
-촬영에 들어가기에 앞서 영주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나. 연기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터라 중요하게 고민했을 것 같다.
=내가 연기하는 영주가 마냥 착한 누나로만 비쳐지지 않길 바랐다. 영주는 스스로를 고생시키면서까지 동생에게 헌신한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영주가 착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받고 싶어 했던 사랑을 영인(탕준상)에게 표현하고자 했던 것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영주는 스스로 내가 부모 없이도 이만큼 가장으로 잘해내고 있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누구도 영주에게 “가장이니 열심히 살아야 된다”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어른스럽지만 후반부 고조되는 부분을 관객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감정 변화를 잘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영인도 마냥 철부지처럼 보이다가도 누나가 위기에 처하자 순간적으로 누나를 보호하는 행동을 보인다.
=영인도 누나의 사랑이 부담스러울 수 있고 힘들 수 있다. 그런데 남들이 보기에는 영인이만 말 안 듣고 철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다 자기도 확실히 자기 마음을 알지 못하는, 우리 마음속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그런 감정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주>는 어느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영화다. 자신을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혹은 아직 바라보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영화다.
-함께 연기한 영인 역의 탕준상 배우와는 현장에서 어땠나.
=최종 오디션장에서 연기를 받아주는데 그때 말은 안 했지만 눈빛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준상이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감독님이 뭔가를 제안하면 그걸 너무 잘 받아들이고 금방 바꿔가며 연기하더라. 영인의 모습과 달리 한없이 착한 친구다. (웃음)
-<영주>는 영주라는 인물의 감정선을 잘 표현해야 하는 영화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깊고 복잡한 감정을 잘 드러낸 것 같다. 클로즈업도 많은 이 영화가 연기에 대한 부담을 주지는 않았나.
=연기 외에 이미지도 중요한데,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나는 마냥 해맑은 배우로 인식될 때가 있는 것 같다. 잘 웃는 내 얼굴을 좋아하는 관객도 많겠지만 다른 톤의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다. 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있으면 좋겠고 지치지 않고 잘해내고 싶다.
-연기에 대해 고민할 때나 다른 조언을 듣고자 할 때 주변의 누구와 주로 대화를 나누나.
=엄마와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한다. 어릴 때부터 엄마와 광고 촬영장, 드라마 현장을 함께 다니면 늘 내게 “힘들면 언제든 연기를 그만둬도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데뷔하게 된 계기도 처음에 오빠의 촬영장을 따라다니다가 자연스럽게 현장을 접하고 캐스팅이 되면서 시작했는데 도중에 오빠는 그만두겠다고 했고 나는 어린 데도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하더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2), <늑대소년>(2012) 출연할 때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는데 자꾸만 촬영장에 가고 싶었고, 내가 연기를 좋아한다는 걸 느꼈다.
-<신과 함께-인과 연>에서는 덕춘이 떠나는 자홍 어머니를 보며 ‘헤어진 사람은 언젠간 반드시 돌아온다’라는 뜻의 ‘거자필반’을 이야기한다. 평소에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말이나 좌우명 같은 게 있나.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라는 뜻의 ‘인향만리’(人香萬里)라는 표현이 좋다. 이름인 향기와 관련된 말이기도 해서. (웃음)
-올해 촬영을 끝낸 신작 <증인>은 어떤 영화인가.
=이한 감독님 특유의 따뜻한 감성이 느껴지는 영화다. 살인사건 변호를 맡게 된 변호사(정우성)가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소녀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사회적인 메시지도 담고 있어 많은 관객이 봤으면 좋겠다. <영주>와 <증인>이 나의 10대 시절이 담긴 마지막 작품인데 앞으로도 열심히 하고 싶다. 대학 생활과 연기 생활을 잘 병행하면서 이어나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