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2월 3일. 대한민국은 IMF(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550만달러의 긴급자금을 지원받았다. IMF측이 요구한 긴축정책, 시장개방, 구조개혁 등으로 인한 대량실업, 비정규직 생산, 청년실업 등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경제적 악습, 이른바 ‘헬조선’의 뿌리가 확립되었을 바로 그날. 하지만 정작 이후 21년 동안 우리는 그 근간이 된 IMF에 대해서 올바른 성찰과 판단을 하고 있었을까. <국가부도의 날>은 IMF 기구가 “IMF 구제금융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구조조정”이라고 평가하는 사례인 1997년 어느 겨울, 협상 체결이 되기까지 일주일간의 상황을 긴박한 리듬감으로 그려낸 영화다.
<씨네21>과 CGV용산아이파크몰이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GV) 프로그램 용씨네 PICK의 다섯 번째 영화로 <국가부도의 날>이 선정됐다. 11월 20일 진행된 <국가부도의 날> 시사는 따끈따끈한 신작에 대한 궁금증으로 400명 이상의 관객이 자리를 찾았다. 이화정, 장영엽 기자가 영화상영 후 <국가부도의 날>의 의미와 흥미 요소들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들을 관객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실제 연상되는 인물들을 모델로 한, 불과 21년 전의 역사라는 점에서, 시대극이지만 우리가 겪어온 가까운 과거라는 점에서 반추해볼 만한 지점이 많은 작품이다. IMF 이전 민주화의 성과와 국가경제 활성화로 GDP(국내총생산) 성장률 우위,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돌파 등 경제성장이 수치로 드러났고, ‘아시아의 용’이라는 수식하에 신흥 경제강국으로 평가받던 대한민국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그때. 기업이 도산하고, 은행이 문을 닫고, 한 집안의 가장이자 작은 회사의 사장들의 자살 소식이 들려오던 그때 “고용 불안정, 취업난, 국민들의 허리띠 졸라매기”를 체감했다는 이화정 기자는 “이 영화는 21년 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21년간 우리의 과오를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고 했고, 장영엽 기자는 “그래서 장르영화지만 마치 다큐멘터리와 같은 기시감이 들 정도로 사실로 다가왔다”며 영화가 가진 사실적인 터치에 대해 평가했다.
이화정 기자는 “외환보유액, 어음, 여신, 뱅크런, 롤오버 등 골치아픈 경제용어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대중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지점들을, 일종의 ‘재난영화’라는 틀로 흥미롭게 소화해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영화”라고 평가했다.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이 ‘제 판단으로 국가부도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입니다’라고 탕 하고 총을 쏘듯 선고를 내린 순간부터 영화의 시간이 마치 촌각을 다투는 재난영화처럼 급박하게 흘러간다.” 애초 기획부터 태풍, 지진 같은 재난처럼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경제위기도 재난으로 판단해 그 위기에 처한 인간 군상이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지켜보는 플롯을 구성한 결과다. 두 기자가 모두 영화의 강점으로 꼽은, 각 인물들의 판단과 결정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편집의 묘미야말로 한정된 시간 안에서 스릴을 배가시키는 장치로 활용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장영엽 기자는 “그간 투자 등을 소재로 다룬 충무로 영화들이 많았지만, 주로 한 범죄 스릴러의 형식을 띤 작품들이 많았다”면서 <국가부도의 날>은 “총이나 사기 사건 없이 소재를 가공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고 전했다. 특히 ”할리우드에서는 <빅쇼트>(2016), <마진콜: 24시간, 조작된 진실>(2011)같이 경제위기를 소재로 한 ‘이코노믹스 필름’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았는데, 한국도 현재 위기상황에서 이같은 작품들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국가부도의 날>은 1997년 당시 IMF 협상에 앞서 비공개로 움직인 협상팀이 있었다는 한줄 뉴스에서 착안한 시나리오다. “실제 경제학을 공부한 엄성민 작가의 디테일한 시나리오가 있었기에 가능한 영화”였다고 평가한 장영엽 기자의 말처럼, 잘 짜인 시나리오는 기획,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취재해온 두 기자가 모두 인정한 이 영화의 훌륭한 뼈대다. 특히 흥미로운 시나리오를 넘어 완성된 영화의 파워가 더 커진 데 대해 배우들의 적절한 캐스팅과 활용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아끼지 않았다. 이화정 기자는 “모두가 ‘Yes’라고 할 때 소신을 굽히지 않고 ‘No’를 외칠 수 있는 사람, 당당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가진 인물을 캐스팅해야 한다면 누가 떠오를까. 1순위는 단연 김혜수다”라는 말로 배우의 막강한 영향력을 평가했다. 장영엽 기자는 “위기의 순간 역베팅을 하는 윤정학(유아인) 역시 주류에서 벗어났지만 자기만의 방식을 가진 입체적인 캐릭터”라고 평가했다. 이 밖에도 재정국 차관으로 단순히 주인공을 억압하는 장치로서의 안타고니스트가 아니라, 당시 ‘실무진’의 판단을 유추하게 하는 디테일한 연기를 펼친 배우 조우진, IMF 총리를 연기한 배우 뱅상 카셀의 원숙한 카리스마가 만들어낸 존재감 등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한편 놓치지 말아야 할 명장면에 대해 이화정 기자는 IMF 최종 선고를 앞두고 가진 비공개 회의에서 “이 협상 엎으세요”라며 강대국의 이권을 대변하는 IMF 총재에 당당하게 맞선 한시현의 활약을 꼽았다. “<변호인>(2013) 이후 소위 ‘스피치’ 장면이 많아 매번 주목하게 되는데, 김혜수 배우의 노련함이 만들어낸 이 장면의 압축된 파워는 명불허전”이며 “영화에서 가장 끓어오르는 지점이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평가했다. 장영엽 기자는 “그 장면에서 깃든 분노와 무력감이 21년 후로 이어지면서, 일말의 희망으로 제안되는” 후반부를 명장면으로 꼽았다. “한시현을 이어받은 후배의 등장이 인상적이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는 어떤 사람을 필요로 하나에 대한 답변을 해주는 엔딩에서의 해법과 처리가 인상적이었다”라고 전했다. 승리의 서사가 아닌 명백한 ‘실패의 서사’를 새롭게 재조명하는, 한국영화의 다양한 시도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