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밤의 세상, 빛 한줌 들지 않는 상품들의 소우주.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에 맞춰 부드럽게 유영하는 지게차의 안무와 함께 영화의 최면적 시간이 열린다. 이력이 모호한 청년 크리스티안(프란츠 로고스키)은 창고형 슈퍼마켓에 견습사원으로 입사한다. 선임자 브루노의 가르침하에 그가 애써 배워야 할 일은 물류 운반용 지게차를 운전하는 일. 우연히 일터에서 마주친 여직원 마리온(산드라 휠러)에게 첫눈에 반한 크리스티안은 휴게실과 복도에서 그녀 주위를 배회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창문 하나 없는 창고에서 진행되는 야간근무자들의 일상을 담는다. 행동과 대화의 미니멀리즘, 속내를 알 수 없는 과묵한 주인공, 군더더기 없는 서사. 감독 토마스 슈투버의 스타일은 한껏 템포 느린 자크 타티 혹은 멜랑콜릭한 정서에 젖은 아키 카우리스마키를 연상시킨다. 곳곳에 배치된 코믹한 설정의 바탕엔 근원적 비애감이 깔려 있지만 영화는 사회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는 부적응자들의 초상을 더디고도 온정 어린 시선으로 묘사해간다.
작품은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어 에큐메니칼 심사위원상을 수상했으며, 배우 프란츠 로고스키는 2018년 독일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독일 신예 프란츠 로고스키는 미하엘 하네케, 테렌스 맬릭의 작업에 얼굴을 비추며 국제적 배우로 발돋움하는 중이며, <토니 에드만>(2016)의 뮤즈 산드라 휠러도 굳건히 제몫을 다한다. 영화는 동독 출신자의 경험을 작품에 녹여낸 클레멘스 마이어의 단편을 원작으로 삼았는데, 감독과 작가의 공동 각본에 의한 영화는 <헤르베르트>(2015)에 이어 두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