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만나 금세 사랑에 빠진 파스(마리아 발베르데)와 세자르(질 를루슈)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 임신과 동시에 파스는 자신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나직이 고백하지만, 세자르는 그 구조 요청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다. 갓난아이를 남겨 두고 홀로 예멘으로 떠나버린 파스를 뒤쫓는 세자르의 이야기인 <다이빙: 그녀에 빠지다>에서 파스의 사라짐은 오래전부터 예고된 비극이다. 이 영화에서 둘 사이를 갈라놓는 것은 유랑을 즐기는 사진작가 파스의 예술적 정체성일 수도, 혹은 준비되지 않은 임신과 출산의 후유증일 수도 있지만 <다이빙…>은 이보다 심원한 질문을 향해 나아간다.
프랑스 남자인 세자르가 깊이 빠진 스페인 여자 파스는 돌로레스와 파스라는 두개의 이름으로 살아간다. 그처럼 세자르에게 파스는 영원한 이국(異國)이면서, 가질 수 있거나 가질 수 없는 상태로 매 순간 분열되는 존재다. 세자르가 예멘의 바다에서 다이빙에 몰두하는 행위는 불가해한 상대를 향한 매혹과 집착, 만남의 유한성을 조금씩 체감하려는 무의식적 노력처럼 보인다. 자신의 감각과 욕망을 위해 탈주하는 여성의 서사이기 보다는, 남성 인물의 시선으로 타자의 심연을 이해하는 드라마이기에 한국어 부제 ‘그녀에 빠지다’는 꽤 적절한 부연설명이다. 환경 오염에 관한 다큐멘터리 <내일>(2015)과 더불어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서 멜라니 로랑의 존재감을 더이상 의심하지 않게 만드는 완성도가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