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人]
<천당의 밤과 안개> 양근영 촬영감독 - 다큐멘터리스트의 본능을 깨닫다
2018-12-03
글 : 김소미
사진 : 오계옥

“정해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매 순간 마주하게 되는 것, 찍을 수 있는 것을 찍자는 마음뿐이었다.” 이전까지 극영화 촬영 경력만 있었던 양근영 촬영감독이 정성일 감독을 만나 다큐멘터리의 세계로 진입했다. 중국 인민의 생활상과 소외계층의 진실을 응시하는 왕빙 감독의 영화 현장을 엿보는 <천당의 밤과 안개>, 그리고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 제작을 기다리는 풍경을 담은 <녹차의 중력>이 그것이다. “왕빙 감독이 영화 촬영 중일 때는 물론이고, 이동하고 밥 먹고 쉬는 모습까지 샅샅이 찍었다.” 2012년 중국 베이징을 시작으로 윈난성을 거쳐 남부 국경지대를 오고 간 <천당의 밤과 안개> 촬영 현장엔 양근영 촬영감독과 정성일 감독 둘만 있었다. 2003년 중국 베이징전영학원에 진학한 양근영 촬영감독은 “유일한 중국어 가능자로서 촬영감독이면서 현장 진행도 동시에 맡았다”. 왕빙 감독과 친밀감을 쌓기 위해 택한 방법은 그의 촬영조수를 자처하는 일이었다. “왕빙 감독을 포함해 총 3명이었던 왕빙팀은 그 와중에 카메라를 두대나 돌렸다. 눈치껏 일손을 도울 수밖에. (웃음) 내가 가진 장비를 ‘조공’하기도 했다.” 양 촬영감독의 노력은 어느덧 “그들과 나 사이에 일종의 동료의식이 형성된 것처럼 느끼게 해줬다”. 그 덕분일까. <천당의 밤과 안개>는 피사체로서 일말의 거리낌이 없는 왕빙의 인간적 면모를 맞닥뜨리는 놀라움을 던진다. 이들은 왕빙의 과거 작품 <세 자매>(2012), <아버지와 아들>(2014)에 등장했던 인물들을 다시 만나고, 당시 준비 중이었던 왕빙의 신작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2013) 촬영을 위해 정신병동에 잠입한다. 때때로 왕빙은 “인터뷰이가 눈물을 흘리거나 감정적 동요를 느끼면, 자신의 카메라를 포함해 관찰자들의 카메라도 꺼달라고 요청”했고 양근영 촬영감독은 기꺼이 따랐다.

베이징전영학원에서 돌아와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수학한 그는 이후 미국에서 4년간 유학을 마치고 올해 귀국했다. 내후년쯤에는 장편영화 연출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왕빙과 정성일, 그리고 임권택 현장을 모두 오가는 사치를 누려본 이는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서 체화한 순수와 광기, 집요한 싸움, 그리고 피로와 두려움이 양근영 감독의 영화에 어떤 우연으로 깃들지 벌써부터 섣부른 호기심을 참기 힘들다.

모자

“햇볕이 매우 뜨겁고 피할 데가 없는 미국, 중국 촬영을 다니다보니 모자가 필수품이 되었다. 얼굴이나마 조금 지켜야 하니까. (웃음) 특히 미국 유학 시절 햇살 강한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야외 촬영을 할때 모자는 더없이 소중했다.”

촬영 2018 <녹차의 중력> 2015 <천당의 밤과 안개> 2010 <심도> 2009 옴니버스영화 <사사건건> 중 <남매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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