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노라 에프런 / 출연 톰 행크스, 멕 라이언 / 제작연도 1993년
영화에서 주인공인 샘(톰 행크스)과 애니(멕 라이언)가 만나는 장면은 단 두 차례다. 그것도 한번은 길 위에서 만나서 “Hello” 한마디하고 마지막 엔딩에서 만나 “It’s you!”, “It’s me” 그리고 “Shall we?” “It’s nice to meet you” 같은 초급 회화 기초편에 나올 법한 대사를 나누고 끝이 난다. 이게 뭐라고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 마치 애니가 라디오 사연에서 나오는 샘의 이야기를 듣던 중 눈물을 흘리다 본인도 모르게 “It’s like a magic”이라고 읊조리듯. 이 영화는 사랑의 이유와 개연성과 리얼리티를 떠나서 운명을 믿는 사람의 마법 같은 이야기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보고 운명적인 사랑을 믿었더란다. 고등학생 때 우연히 보게 된 동창생이 멕 라이언의 입꼬리와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좋아하기도 했고, 대학생 때 첫 소개팅 자리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4시간이 훌쩍 넘게 대화를 했어서 ‘이건 운명이야’라고 믿고 좋아하기도 했다. 물론 다 실패로 끝난 이야기지만. 그땐 그랬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좋아하기도 하고 정성스럽게 쓴 편지의 손글씨를 보고 사람이 좋아지기도 했다. 소개팅 나가기 전 사진을 확인할 방법도 없었고 단 5분만에 누군가의 취향이나 취미, 라이프스타일을 파악할 수 있는 SNS도 없었다(영화에서 애니는 샘의 얼굴이 궁금해서 실제로 흥신소에 사진을 찍어올 것을 부탁한다).
이 영화에서 애니의 인생 영화로 나오는 흑백영화는 <어페어 투 리멤버>(1957)로 <러브 어페어>(1939)의 리메이크작이며 워런 비티가 주연을 해서 1994년에 세 번째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엇갈리는 플롯은 이 영화에서 주요한 설정이기도 하며,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이든 만나게 된다는 운명의 주제를 심플하고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영화 전반에 흐르는 90년대의 미국 감성이다. 마치 추운 겨울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듣기만 해도 아늑해지는 재즈와 따뜻한 조명과 은은하게 퍼지는 커피 향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처럼. 영화를 보다보면 왠지 모르게 미소짓게 되고 마음이 편해진다.
특히 영화의 O.S.T는 백미로 꼽을 수 있다. <When I Fall in Love> <As Time Goes By> <Stand by Your Man> 등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음악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흐른다. 아마 크리스마스를 앞둔 요즘과 특히 잘 어울리는 음악과 영화가 아닐까 싶다. 만약 당신이 운명의 상대를 궁금해하고 운명 같은 인연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는 당신에게 강력한 지지를 보낼 것이다. 멕 라이언과 톰 행크스의 리즈 시절을 볼 수 있는 점 역시 영화가 주는 또 하나의 덤이다.
양성민 캐스팅 디렉터. 연기 동영상 공유 애플리케이션인 ‘셀프테이프’(selftape)를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 제작사 ‘Bsize’를 설립했다. 신인 연기자들을 위해 책 <배우를 찾습니다>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