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후 숱한 수군거림이 있었지만 더없이 끔찍한 말 중 하나는 “내년 대학입시 경쟁률이 낮아져서 좋겠네”라는 것이었다. 그해 여름 인터넷 포털엔 “지금 단원고로 전학 가면 대입 혜택을 받을 수 있나요?”라는 질문도 올라왔다. 대학에 갈 수만 있다면 인간이길 포기해도 된다는 걸까. 괴물의 말임에 틀림없지만, 뒤집어보면 ‘좋은 대학 못 가면 인간대접 못 받는다’라는 인식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남을 밟아야 밟히지 않을 거라는 현실감. 현재 비정규직이 받는 대접이나 ‘을’의 처지를 떠올려보면, 이 현실감을 비난만 하고 넘어가는 건 사태 파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개인이 아닌 사회적 괴물이기 때문이다.
IMF 금융위기와 세월호 참사
<국가부도의 날>을 놓고 세월호 이야기부터 꺼낸 건 한국 현대사를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두번의 재앙이 IMF 금융위기 사태와 세월호 참사라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잠자고 있던 괴물은 비참한 일이 벌어졌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곤 한다. 이를 키우는 건 앞날에 대한 불안 혹은 시스템을 향한 불신이다. 자라난 괴물은 어떤 사안의 피해자들을 그룹으로 묶은 다음 혐오함으로써 자신을 심리적 안전지대에 배치한다. 자칫 나까지 피해자가 될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혐오에 밥을 준다. 혐오의 시대라 할 만큼 여기저기서 그것이 자라나는 데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으나, 내 안에 저 괴물이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1 대 99의 세상에서 학부모와 취업준비생들은 기도한다. 나와 내 자식만큼은 99의 편에 들어가지 않기를. 힘없는 자일수록 벼랑 끝에 몰린 다음 ‘나만은 아니길’ 기도하는 처지에 놓인다.
<국가부도의 날>이 1997년 실제 상황과 얼마나 다른가를 따지는 일에 의미가 커 보이지는 않는다. 영화는 오늘날의 양극화와 비정규직 양산의 뿌리에 IMF가 있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협상 조건이나 과정을 극적으로 각색했다. 나쁘다기보다 무능했던 당시 관료들은 무능한 데다 나쁘기까지 한 쪽으로 밀어붙여졌다. 인물이 전형적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으나, 일종의 캐릭터 무비인 이 영화에 대한 평으로 삼기에는 핵심을 벗어나는 듯 보인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21세기에 더욱 모호한 형태로 불어닥친 사회계약의 부재. 이를 담기 위해 4명의 인물로 기둥을 세운 다음 상업적인 설계로 벽을 채운 것이 이 영화다. 그 집의 한가운데에 ‘나만은 아니길’ 혹은 ‘나만 아니면 돼’라는 2018년의 시대 정서가 있다.
이같은 시대 정서를 모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게임에 따라 “나만 아니면 돼”라고 일컫는 경우를 봤는데 이것만으로는 정확한 표현이 안 될 것 같다. 지금 나만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 또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 절벽 아래로 떨어진 자를 눈 뜨고 바라봐야 하는 안타까움, 옆 사람이 나 때문에 추락한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까지, 모두 벼랑에 내몰린 약자의 몫이다. 의자놀이의 주최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한정된 자원을 얻는 자가 있으면 그렇지 못한 자도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논리가 미국식 자본주의의 근간이니까(국제통화기금(IMF)은 브레턴우즈 협정에 따라 세계은행(IBRD)과 함께 1946년 설립돼 미 달러화를 세계 통화로 격상시키고 미국 자본주의의 20세기 주도권을 공고히 만든 조직이다.-편집자).
자본이 집어삼켜버린 살풍경
극중 재정국 차관(조우진)이 당시 가해자이고, 소기업 사장 갑수(허준호)가 피해자이며 한국은행 통화정책팀 팀장 한시현(김혜수)이 현실에 없던 판타지라면, ‘나만은 아니길’의 현재성을 지니는 인물이 금융맨 윤정학(유아인)이다. 돈 놓고 돈 먹는 금융자본주의가 땀 흘려 돈 버는 산업자본주의(갑수)를 코웃음치며 압도하는 형세도 간명하게 표현됐다. 윤정학은 사태를 직감하고 나만 아니면 된다며 종금사에 사표를 낸다. 그가 개최한 투자 설명회에서 이를 믿지 못한 이들이 자리를 빠져나간 뒤, 나만은 아니길 바라는 두 사람(송영창·류덕환)이 슬그머니 되돌아온다. 로또 당첨금을 제대로 받으려면 1등이 적어야 하니까. 이들은 “나라가 망해야 돈을 벌 수 있는” 풋옵션을 만들어 거액을 베팅한다. 아득한 절벽 밑으로 떨어지는 이가 많을수록 이들은 부자가 된다. 윤정학이 “대한민국이 망했어! 우린 부자야!”라며 쾌재를 부르는 투자자를 때리는 장면은, ‘나만 아니면 돼’와 ‘나만은 아니길’의 사이를 오가는 정서적 혼란이다.
한국에서 ‘나만은 아니길’의 풀리지 않는 숙제를 던지는 대표 과목은 누가 뭐래도 부동산일 것이다. 그래서 영화도 많이 나왔다. <숨바꼭질>(2013)부터 올해 <7년의 밤> <목격자>로 이어지는 모티브는 아파트로 상징되는 중산층으로의 편입, 서민층으로부터의 탈출을 욕망하는 데서 비극을 출발시킨다. 국민 다수가 자신을 중산층으로 생각한다는 보도를 전하며 시작하는 <국가부도의 날>은, 이후 한국 중산층이 어떻게 급전직하했는지 깔끔한 편집을 통해 보여준다. 나만은 저 경우가 아니길. 믿고 기다리면 정 사장(정규수)처럼 희생당할 뿐. 우리 국민들이 이를 똑똑히 학습한 결과가 지금이라고 영화는 말하는 중이다. 아파트 값이 폭락하길 기다려 싹쓸이 매입한 윤정학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집주인을 보고도 이렇게 말한다. “내가 왜 나가. 이제 내 집인데.” 유혈 입성한 점령군, 즉 IMF의 형상화이기도 한 이 장면은 자본보다 소중한 수많은 것들을 자본이 집어삼켜버린 살풍경이다. 삼켜진 것들 가운데에는 ‘믿음’도 있었다.
앞서 말한 두 차례의 재난 가운데 세월호 참사가 시스템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렸다면, IMF 사태는 기성세대에 대한 신뢰를 없앴다.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공부하고 노력해도 일자리는 없다. 정규직을 움켜쥔 윗세대는 다음 세대에 비정규직을 강요한다. IMF 이전 세대가 늘어놓는 ‘명문대 졸업장보다 실력과 자신감이 중요하다’라거나 ‘대학 때는 좀 놀아야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다’라는 등의 충고에 지금 청년들이 뀔 수 있는 건 콧방귀밖에 없다. 영화에선 “진짜야?” 혹은 “진짜입니까?”라는 대사가 5차례 나온다. 당시 상황이 당최 믿어지지 않기도 했지만 이 영화의 핵심 질문이 믿음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부터 개인까지 신용의 정도가 자본주의 논리로 등급 매겨진다. 사람 사이의 믿음이 자본 논리로 대체되면, 돈에 균열이 생긴 순간 공동체는 무너지게 마련이다. 달리 붙들 것이 없어진 약자들은 기도한다. ‘나만은 아니길.’
“왜 하필 접니까.” 토머스 홉스가 구약성경의 하나인 욥기의 이 질문에서 출발해 쓴 저서 <리바이어던>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중재하기 위한 시스템을 말하고 있다. 이 질문은 영화 <리바이어던>(2014)에 그대로 차용됐다. <내일을 위한 시간>(2014)에서도 마땅히 시스템이 해결해야 할 고용 과제가 개인에게 내던져져 인물끼리 투쟁한다. 전 지구적 현상이다. <국가부도의 날>이 공개되자 영화계에선 ‘20여년 전 우울한 이야기’에 관객이 와줄지 걱정했지만, 개봉 첫 주말 150만명을 돌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