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의 날>은 같은 위기 앞에서 인물들 각자 발 딛은 자리가 판이하게 다른 광경으로부터 시작된다. IMF행을 막아보려는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을 중심으로, 기회를 이용해 권력 구조를 재편하려는 재정국 차관(조우진), 나라가 망하는 데 돈을 걸어 계층 이동을 꿈꾸는 금융맨 윤정학(유아인), 그리고 무엇도 알지 못한 채 부도어음을 손에 쥔 중소기업 사장 한갑수(허준호)가 그 주인공이다. <국가부도의 날>로 첫 장편 시나리오 데뷔를 한 엄성민 작가는 “1997년의 종이 신문들이 핵심 자료”였다고 밝힌다. 그는 신문을 탐독하고, 사람을 수소문해 IMF 시기에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은 평범한 이들을 만났다. 영화 속 갑수의 마지막 대사인 “아무도 믿지마”는 그들에게 직접 들은 말이다. 엄성민 작가에게 좋은 캐릭터란 “우리에겐 누가 필요한가? 어떤 사람을 보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통해 나온다. 그는 캐릭터들에 각자의 딜레마를 부여하려 노력했다. “한시현은 국가부도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정작 자기 가족의 아픔은 모르고 있었다. 정학은 자기 욕망을 실현하지만 그 뒤에서 허무를 느낀다.” IMF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인물 중 하나지만, 자신을 믿고 기다려준 사람에게 부도어음을 날리는 갑수도 있다. “이런저런 모습 모두 IMF라는 사건이 우리에게 준 영향에 대한 다양한 표현이길 바랐다.” 엄 작가는 여성 인물로서 한시현의 도전과 실패를 집요하게 다루기도 한다. “남들과는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 실패할 확률이 다분한데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워보려는 사람”에 대한 매혹이 동력이 되었다. 제한 시간 내에 전문 용어가 포함된 경제 상황을 브리핑해야 하는 설정에 관해서는 “짧은 시간을 다루기에 필연적으로 대사량이 많을 수밖에 없었지만, 단어 하나하나가 이야기의 고조에 기여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강렬한 단어를 택했다”.
엄성민 작가는 “한겨레문화센터 등에서 영화 워크숍을 수강하던 중 이야기를 쓰는 작가의 일이 천직임을 깨달았다”. <국가부도의 날>은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시나리오 전공으로 입학한 그가 졸업작품으로 쓴 시나리오다. 영화사 집의 오효진 프로듀서가 시나리오 선집에 담긴 초고를 알아보고 엄작가를 발굴했다. 현재 그는 “언론을 소재로 사회에 강하게 닿아 있는 이야기”를 차기작으로 준비 중이다.“앞으로도 현실에 뿌리를 둔 이야기들을 취재하고 공부하며 상상력을 더하고 싶다.”
노트북
디지털 시대의 모든 작가에게 노트북은 필수품이겠지만 엄성민 작가에게는 조금 남다르다. “본격적으로 시나리오작가 생활을 하겠다고 선언했더니, 누나가 노트북을 장만해줬다. <국가부도의 날> 집필까지 5년째 쓰고 있다. 계속 이 노트북과 함께했기 때문에 선뜻 바꿀 마음이 들지 않는다.”
2018 <국가부도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