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로부터]
‘다움’의 함정
2018-12-19
글 : 이동은 (영화감독)
일러스트레이션 : 정원교 (일러스트레이션)

몇년 전 한 지방법원의 국민참여재판에 그림자배심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80대 남성 피고인이 10대 여성 피해자의 신체 일부를 손으로 만진 혐의로 진행된 재판이었다. 피고인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중 피해자에게 길을 물어보려다가 잠시 팔이 피해자의 신체 일부에 닿았을 뿐, 어떻게 많은 이가 오가는 한낮 8차선 대로변에서 체구가 작은 노인이 성추행을 했겠느냐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의 변호인은 피해자가 시험을 앞두고 예민한 상태였을 거라며, 피해자가 오해를 했을 수 있다고 했다. 또한 피해자가 사건 후 바로 현장에서 신고를 하고 경찰이 오자, 평소처럼 학원과 예약했던 병원 치료를 갈 만큼 피해 사실이 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유일한 증거는 피해자 진술뿐이었다. 수사 과정에서 피고인이 사건현장에서 자주 학생들을 성추행한 것을 본 목격자가 있었지만 증거로 채택되지는 못했다.

법정 공방이 끝난 후 배심원들이 평결 전 평의를 거치는 동안 그림자배심원들도 모의 평의를 진행했다. 그림자배심원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특히 피고인의 무죄를 찬성하는 쪽에서 주목한 사실은 피해자의 사건 후 행동이었다. 10대 고등학생 피해자가 성추행 사건을 신고한 당일,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을 했냐는 것이었다.

영화 <당신의 부탁> 관객과의 대화 행사에 참석했을 때다. 한 관객은 우울증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주인공 효진(임수정)의 심리를 주연배우가 섬세하게 표현해낸 것을 칭찬하면서도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눈썹이었다며,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눈썹을 그리지 않는데 극중 효진의 민낯엔 눈썹이 그려져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두 사례는 우리가 타인을 약자로 판단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무지한 전형성의 예다. 왜 피해자는 당당하고 떳떳하면 안 되는가. 특히 성범죄 관련 피해자는 왜 눈물로 얼룩진 일상을 살 것 같고, 이후의 삶이 그늘지고 나락으로 떨어져야 한다고 여기는가. 성범죄 피해자가 어엿하게 피해사실을 주장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다고 여기는 일은 곧 성범죄 피해자는 당당하고 떳떳하지 않아야 한다는 편견이 드러난 것이다. 우리가 섣부르게 우울증이라고 판단하는 바탕 안에도 우울한 피해자의 그림이 있다. 우울증의 발현에는 의욕을 과시하고, 매사에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태도를 보이려고 애쓰는 정반대의 사례도 있다. 우울증이 아니더라도 소극적이거나 내향적인 성격과 태도는 누구에게나 그 시기에 따라 타당하고 자연스럽게 존재한다. 누구나 몸과 마음이 아플 수 있지만 징후는 모두 다 같지 않다.

최근 영국영화협회(BFI)는 얼굴에 흉터가 있는 악당이 등장하는 영화에는 더이상 제작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다스 베이더와 <라이온 킹>의 스카처럼 우린 얼마나 오랫동안 안면장애나 신체손상을 쉽게 악과 연결시켜왔던가. 편견과 전형성은 늘 쉽다. 표현하는 데도, 받아들이는 데도 에너지가 덜 든다. 하지만 딱 그만큼 다른 곳에서 누군가는 그 비용을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은 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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