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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패밀리> 마민지 감독 - 도시, 부동산, 가족… 이야기의 근원
2018-12-27
글 : 이주현
사진 : 최성열

셀카라는 단어도 없던 시절부터 셀카를 찍으며 우아하게 중산층의 삶을 누렸지만 지금은 부동산 텔레마케터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엄마(노해숙). 한때는 중소 건설회사의 사장님이었지만 지금은 “무능하고 권위만 남은 전형적인 가부장”이 돼버린 아빠(마풍락). 잠실의 아파트 키드로 자랐지만 지금은 학자금 대출과 월세조차 버거운 딸 마민지. <버블 패밀리>는 부동산으로 흥하고 망한 가족의 역사를 마민지 감독이 직접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버블 패밀리>가 마민지 감독에게 데뷔작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건 “오랫동안 세상에 가졌던 의문들,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뿌리를 다 건드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큰 숙제를 어렵게 마친 느낌”이라는 마민지 감독을 만났다.

-<버블 패밀리>를 만들게 된 최초의 동기는 무엇인가. 도시 개발사와 부동산으로 흥망성쇠를 경험한 가족의 이야기 중 어느 것이 우선했나.

=최초의 심적 동기는 개인적인 것이었다. 영화 초반 내레이션으로도 나오지만, 아버지와 교류 없이 타인처럼 지내다 우연히 종로 지하철역에서 아버지를 보게 됐다. 그날, 부모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장사를 했던 부모님의 역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시 개발사 이야기가 들어왔다. 부모님의 이야기를 통해 서울의 도시 개발사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부모님도 그러한 영화의 기획의도에 동의해 촬영에 협조해주었다. 촬영하면서 가족의 이야기가 더 중심이 돼 버렸는데, 한 가족의 이야기를 내밀하게 들여다볼수록 도시 개발사 또한 더 잘 보이겠다고 생각했다.

-<버블 패밀리>의 가장 큰 매력이자 미덕은 사적 다큐멘터리로서의 솔직함이라고 생각한다.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가족의 모습이나 집안 형편 등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용기가 있다.

=내 기준으론, 충분히 솔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촬영한 영상 중에서 부모님이 싫어하는 것,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고 판단되는 것, 내가 보기에 불편한 것들은 많이 걷어냈다. 예를 들어 부동산 텔레마케터로 일하는 어머니의 구체적인 업무 내용 같은 건 어머니가 공개를 원하지 않아서 뺐다. 나름대로 정제된 작업물이다. 너무 솔직한 건 때로 불편하니까.

-어머니가 과거에 찍은 홈비디오 영상이 영화의 중요한 재료로 쓰인다.

=10년 넘게 장롱 안에 있던 테이프를 그야말로 유물 발굴하듯 발굴해냈다. (웃음) 8mm 테이프를 디지털로 복원했는데 다행히 영상이 그대로 남아 있더라. 이번에 영화 만들면서 나도 영상을 처음 봤다. 어머니의 취미가 사진 찍기다. 내가 20살이 될 때까지 1년에 영상 테이프 하나, 사진 앨범 하나씩을 만들어 선물하려 했다는 얘기를 밥 먹듯이 하셨다. 그런데 IMF 외환위기 이후 가세가 기울면서 12살이 된 이후로 그 기록이 끊겼다. 그때부터 과거에 찍은 테이프는 장롱에서 잠자고 있었고.

-어머니를 따라다니면서 사회생활을 카메라에 담는다. 어머니가 일하면서 겪는 곤란, 회사에서 해고당하는 순간까지 가까이서 목격하는데, 감독이자 딸로서 그 상황을 기록해야 하는 감정은 복잡했을 것 같다.

=영화를 찍기 전에 각오를 많이 했다. 비정규직 여성의 이야기나 가족의 관계에 대한 극영화 시나리오를 쓴 적이 있어서 마음의 준비가 조금은 됐던 것 같다. 가족 문제 때문에 감정적으로 상처를 많이 받았던 건 20대 초반이었다. 이번엔 거리두기가 많이 돼 있어서 촬영할 때 담담했다. 스탭들이 나보고 독하다 그러더라. 독한X이라고. (웃음)

-거리두기가 마음먹는다고 쉽게 되는 게 아닌데.

=만약 카메라 없이 그 상황을 목격했다면 힘들었을 거다. 카메라가 좋은 매개가 됐다고 생각한다. 카메라가 있어서 아버지와 외출도 많이 하고, 어머니가 일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어머니가 서울머니쇼에서 쫓겨나는 장면은 어머니가 같이 가면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찍으러 간 거다. 카메라가 존재하기 때문에 솔직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있었고, 카메라 앞에서 드러내는 솔직함이 있었다.

-아버지의 경우는 어땠나. 영화 촬영을 하면서 발견한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이 있었나.

=아버지는 끝까지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비자금을 보여주지 않았나. (웃음)

=비자금은 보여주셨는데. (웃음) 이야기를 나누기는 까다로웠다.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예전에 아버지가 지었던 건물을 구경하러 다니는 일은 즐거우셨던 모양이다. 나중에는 왜 더 찍으러 가지 않냐고 섭섭해하셨다. 영화 찍기 전과 후 아버지와 나 사이에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통화 시간이 길어진 거다. 예전엔 30초 만에 전화를 끊었는데 지금은 2분이나 통화를 한다.

-아버지 캐릭터를 보면서 쉽게 극복하기 힘든 세대차를 목격했다. 말도 통하지 않고 결코 사랑할 수도 없지만 이해하고 살아가야 하는 가족이 결국 아버지다.

=이 영화가 가족주의로 봉합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아빠 힘내세요’의 문화 속에서 아버지들에 대한 동정은 있었지만 고생한 어머니들에 대한 이해는 얼마나 있었던가 싶다. 정당화하기 어려운 시간을 지나왔는데, 영화를 찍으면서 ‘우리 이제 화해했어요’라고 쉽게 말할 순 없었다. 한편으론 부모님의 과거사를 듣고 한국의 도시 개발사 속에서 부모님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부모님이 왜 이렇게 살 수밖에 없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것 같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견지하고 있는 삶의 방식이 문제가 아닌 건 아니다. 얼마 전에도 어머니가 땅에 투자하셨다. 영화는 끝나도 삶은 계속된다는 걸 느끼고 있다. (웃음)

-가족주의로 봉합되는 것을 경계했다고 했는데, 가족사진을 찍고 삼겹살을 먹고 일출을 보러 가는 장면들로 엔딩을 구성했다. 어떻게 이 영화를 결론내야 할지, 언제 다큐멘터리의 촬영을 끝내야 할지 고민이 깊었을텐데.

=새해에 해돋이를 보러 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희망찬 다짐을 하며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데 날이 흐려 해가 잠깐 비치고 구름 사이로 사라졌다. 그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고, 이게 영화의 마지막이 되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부모님은 계속해서 희망할 것이고,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변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엔딩의 내레이션에 담았다.

-도시의 역사와 공간에 대한 관심 외에 최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주제가 있다면.

=우울증과 여성주의와 도시 개발을 엮어서 무언가 이야기해보고 싶다. 아직은 막연하게 생각만 하는 중이다.

-차기작 계획은 어떻게 되나.

=프랑스에서 기획한 다큐멘터리의 연출자로 고용됐다. 의사가 되는 게 꿈인 몽골 유목민 마을의 한 소녀가 홀로 도시 울란바토르에 와서 적응해가는 이야기다. <피의 연대기>의 오희정 프로듀서가 공동프로듀서로 참여하는 작품이다. 제목은 <회색 도시로 가는 길>이고, 촬영 때문에 2월에 몽골에 간다.

-독립영화의 경우 상영관 확보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현재 <버블 패밀리>의 배급 상황은 어떤가.

=좋지 않다. 독립영화를 개봉하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체감하고 있다. 심지어 <버블 패밀리>는 인천다큐멘터리포트에서 CGV아트하우스 극장개봉지원상(CGV아트하우스 2주 상영 보장)을 받았는데, 언제 상영을 해준다는 건지 모르겠다. (웃음) 사람들에게 많이 보여주고 싶은데 상황이 내 마음 같지 않다. 이렇게까지 독립영화 개봉이 어려운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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