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의 레전드, 퀸의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의 삶과 음악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나는 솔직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예전에도 퀸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고 앞으로도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어렸을 때, 나는 퀸에 대해 아는 바가 그리 많지 않았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나는 <월간팝송>의 열독자도 아니었다. 나는 ‘전영혁’보다는 ‘황인용’의 애청자였다. <Bohemian Rhapsody>는 금지곡이었다. 퀸은 내한공연을 하지도 않았다. 당시 한국에서 히트를 친 퀸의 노래는 마니아들에 따르면 ‘범작’에 가까운 <Radio Ga Ga>나 <I Want To Break Free> 등이었다.
그럼에도 세운상가를 들락거리며 백판을 수집하던 ‘쿨한 음악광’ 친구들은 퀸을 치켜세웠고, 그 멋진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과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어설픈 감탄사로 맞장구를 치며 맹목적인 퀸 숭배의식에 동참해야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 멋진 녀석들과 헤어진 이후 퀸을 잊고 살았다. 퀸에 다시 빠지게 된 건 30대 이후였다. 영화나 광고에 삽입된 퀸의 음악들을 접하면, P2P 서비스를 통해 파일들을 다운받아 반복해서 들었다. 최근에는 유튜브를 통해 오래전 퀸의 공연 영상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프레디 머큐리가 영국이 아니라 잔지바르 출신 동양인이라는 사실을 안 것도 인터넷 덕분이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고백하자면 나는 프레디 머큐리가 백인이라고 여겨왔던 것이다! 인터넷 덕분에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퀸 노래는 <Seaside Rendezvous>야. <Bohemian Rhapsody>랑 같은 앨범에 있지만 다소 유쾌하고 가벼워서 잘 언급이 안 되는 곡이지”식으로 뻐기며 퀸 덕후 흉내를 낼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내 또래(1960~70년대생)와 함께 퀸 덕후 놀이를 벌여왔다. 그 놀이는 우리에게 지극히 회고적이면서 적당히 경쟁적인 방식으로, ‘그거 알아? 우리에게는 퀸이 있었잖아’ 하는 식의 공감을 불어넣어줬다. 그래서 퀸을 듣고 이야기한 이후의 뒷맛은 늘 애틋함과 아련함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이후 퀸 덕후 놀이의 양상은 달라졌다. 영화를 본 젊은 친구들에게 퀸과 프레디 머큐리 이야기를 하자 그들의 눈은 반짝이기 시작했다. (착각일 가능성이 크지만) 그들은 내가 퀸의 음악과 동시대에 살았다는 사실에 부러움을 표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반응에 감격한 나머지 나는 차라리 더 늙었으면 싶었다. 프레디 머큐리와 동갑일 정도로 늙지 않은 게 아쉽기까지 했다. 그랬더라면 “프레디는 말이지”라고 말해도 자연스럽게 들릴 테니 말이다.
여기서 솔직해져야겠다. 이제껏 우리 세대를 청년 세대와 연결시켜주는 게 무엇이 있단 말인가. 우리의 지식은 낡았고 우리의 경험은 그들의 것이 될 수 없다. 꼰대 취급을 받지 않는 게 그저 최선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퀸이 나타나 두 세대를 이토록 가깝게 만들어준 것이다. 그러니 퀸은 영원해야 한다. 적어도 당분간은, 영원해야 한다. “우리에겐 퀸이 있잖아!”의 “우리”가 세대를 가로질러 공통의 상징과 열정으로 다시 묶일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솔직해지자. 그날은 얼마나 요원한가. 그날에 대한 이 환상의 뒷맛은 얼마나 서글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