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더 파티>, 샐리 포터의 작가적 스타일이 정점에 오른 영화
2019-01-03
글 : 조혜영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위선을 직시하며 용감하게 웃는 법

영화가 시작되면 현관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카메라를 향해 총을 겨눈다. <더 파티>는 이 강렬한 오프닝부터 제어장치가 없는 폭주 기관차처럼 70여분 동안 숨도 쉬지 않고 빠르게 달려간다. 그리고 집이라는 하나의 한정된 공간에서 리얼 타임으로 달리며 모두를 파국으로 몰고 갈 비밀을 폭로하고 복잡하게 얽힌 갈등을 증폭시킨다. 파티에 초대된 어느 누구도 이로부터 숨을 수 없다. 마지막까지 등장하지 않는 마리안조차 말이다. 카메라는 경쾌하고 빠르게 움직일 뿐만 아니라 2.35:1의 클로즈업으로 우정, 사랑, 헌신, 배신, 회한, 의심, 위기, 투쟁을 가로지르는 그들의 표정을 현미경처럼 가까이에서 관찰한다. 그것은 냉철하면서도 친밀하고, 지적이고도 열정적이며, 세련되면서도 원초적이고, 비극적이면서도 웃긴 시점이다. 샐리 포터는 이 시선을 ‘법의학적 친밀성’(forensic intimacy)이라 부른 바 있다.

검은색과 흰색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새삼 황홀하게 느끼게 해주는 이 흑백영화는 그래서 빠른 리듬 속에서 춤을 추는 것 같은 우아함을 자랑한다. 카메라와 관객이 있는 제4의 면과 춤의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연극적 장치와, 과장된 얼굴 클로즈업을 통해 가장 영화적인 기법을 섞어 연출하는 독특한 미학은 과거 안무가이기도 했던 샐리 포터 감독만의 작가적 스타일이다. 그리고 <더 파티>는 포터의 작가적 스타일이 가장 우아한 방법으로 정점에 오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포터의 대표작 <올란도>(1993)의 촬영감독인 알렉세이 로디오노프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배우들의 캐스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배우들의 신체와 얼굴 근육의 사용은 거의 교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The Party’ 단어가 의미하는 것

영화의 서사는 단순하다. 보건부 장관으로 승진한 자넷(크리스틴 스콧 토머스)과 그의 남편 빌(티모시 스폴)을 축하하기 위한 파티에 친구들이 참석한다. 에이프릴(퍼트리샤 클라크슨)과 남자친구 고트프리드(브루노 간츠), 마사(체리 존스)와 연인 지니(에밀리 모티머), 늦게 도착하기로 되어 있는 마리안과 남편 톰(킬리언 머피)이 그들이다. 그리고 영화는 파티가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좇는다. 아니, 파티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들이 얼마나 내외적 모순과 실존적 위기에 처해 있는지를 폭로한다. 자신이 시한부 인생임을 고백한 빌이 말한 것처럼 “한때는 그랬지만” 이제 더이상 그때의 빌이 될 수 없다. 파티는 그저 쌓여왔던 위기의 기폭제일 뿐이다.

여기서 제목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The Party’는 승진 축하 ‘파티’를 가리키지만 또한 진보와 변화를 믿는 이상주의자 자넷이 헌신한 의회 민주주의의 ‘정당’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녀가 보건부 장관인 건 우연이 아니다. 영국의 보건의료체계는 90% 이상이 국영병원으로 부와 계급에 상관없이 무료 지원된다. 이 제도는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영국식 민주주의 정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빌이 진단을 받기 위해 사립병원을 이용하면서 자넷의 정치적 신념이 내부로부터 무너지고 그녀의 정치 경력도 위험해진다. 심지어 둘은 모두 다른 이와 불륜 관계에 있다. 자넷과 빌만 모순을 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친구들은 모두 각자의 망상에 빠져 자신을 들여다보지도 서로의 이야기를 듣지도 않는다. 자넷의 가장 친한 친구인 에이프릴은 독설을 내뱉는 현실주의자로서 관료적이고 느려터진 의회 민주주의보다는 직접 행동하는 게 낫다고 믿는다. 60년대 영국 좌파 지식인과 예술가 그룹에 둘러싸여 살며 반핵운동에 참여한 10대 소녀의 성장을 다룬 샐리 포터의 전작 <진저 앤 로사>(2012)의 진저(엘르 패닝)가 자랐다면 아마 에이프릴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역설적이게도 대체의학을 믿고 아무 데서나 명상을 하며 비현실적인 낙관주의를 전파하는 아로마 치료사 고트 프리드와 사귀는 중이다. 대학교수이자 전투적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인 마사는 어떤가. 마사는 지니가 ‘가족’이라는 단어를 쓰자 ‘그룹’이라고 정정한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은 가족주의를 비판하는 정치적 신념의 실천이라기보다는 지니가 임신한 세 쌍둥이와의 삶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으로 판명난다.

진보 지식인은 왜 웃음거리가 되었나

한때 세계를 더 낫게 만드는 데 헌신해왔던 좌파 지식인과 정치인들은 도대체 왜 이 모양이 된 걸까? 의회정치와 젠더정치, 민주주의와 페미니즘, 반자본주의와 진보적 가치에 대한 헌신 같은 것은 이제 그저 위선에 지나지 않는 폐기 대상이 된 걸까? 이 영화를 그렇게 본다면 그건 한참 잘못 본 것이다. 촬영 중 브렉시트 투표가 진행됐기 때문에 이 영화가 투표 결과를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 투표에서 이기기 위해 사용하는 노동당과 보수당의 정치적 수사가 구분되지 않고(제목은 의도적으로 어떤 당을 가리키는지 밝히지 않는다), 페이크 뉴스와 팩트 체크가 판을 치며, 좀비가 들끓는 디스토피아 이외의 자본주의 외부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냉소주의를 믿는 시대적 분위기를 영화가 반영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포터의 인터뷰에 따르면, 촬영 중 브렉시트 투표 결과를 들은 배우와 스탭 일부가 울음을 터트렸으며 내전에 준하는 공포와 비상상태의 분위기가 영화의 표현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로써 영화는 미래를 선취하고, 세계는 영화를 비추고 증폭한다. 포터는 데뷔작 <스릴러>(1979)에서 영국 영화사에서 최초로 흑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기용했으며, 기득권 문화와 자본에 대항하는 운동방식인 ‘무단점거’(squatting) 중이던 집에서 촬영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성공으로 금융 자본주의와 여성 스타를 착취해 돈을 버는 영화산업 모두를 비판하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 미스터리 뮤지컬” <골드 디거>(1983)를 만들었다. 포터 스스로가 진보적 대항문화의 한복판에서 영화를 만들어온 실천가이며, <더 파티>의 캐릭터는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모습을 투영한 결과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을 포함해 진보적 지식인들을 웃음의 대상으로 삼으며 맹렬하게 비판한다. 이는 결코 냉소주의가 아니며, 그들 내부의 실패, 모순, 위선을 용감하게 대면하라는 요구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문밖으로 나갈 수 없을 것이다.

비극을 둘러싼 코미디는 그 자체로 시대를 반영하는 장르가 된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웃음마저 없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나 포터는 그들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지 않는다. 특히 카메라를 바라보는 얼굴 클로즈업은 실제로 세계의 변화를 이끌어온 그들을 대면하고 존중하는 동시에 그들이 겪고 있는 혼란에 감정적으로 연계하게 만든다. 그들은 때때로 무해하게 웃기고 사랑스럽다. <베를린 천사의 시>(감독 빔 벤더스, 1987)에서 천사 다니엘을 연기했던 브루노 간츠가 치료사와 라이프 코치를 자처하는 고트프리드를 연기하는 걸 보고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언제나 우아하고 강직한 역할로 나왔던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가 애인의 구애 전화에 아이처럼 들떠 있는 모습은 어떻고. “이성적으로 나는 모두에게 최악을 기대해”, “민주주의는 끝났어”라며 불평하지만 “빌이 네 정치 경력에 조금이라도 악영향을 미친다면 살인도 불사할 거야”라고 말하는 에이프릴을 연기하는 퍼트리샤 클라크 역시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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