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장편애니메이션에 찾아온 단비 <언더독>
2019-01-10
글 : 송경원 |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에 찾아온 단비 <언더독>

2011년 <마당을 나온 암탉>은 220만 관객의 사랑을 받으며 한국영화, 특히 장편애니메이션 분야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 이후 7년, 오성윤 감독의 차기작이 나오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릴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지만 길어진 시간만큼 한층 성숙하고 튼실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언더독>은 유기견들의 모험담이라는 독특한 오리지널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국적인, 한국만의 애니메이션이 무엇인지 그 길을 제시한다. 한국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니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외적인 요소를 다 제외하고서도 이 작품은 확실히 잘 만든 장편 상업 애니메이션이라 할 만하다. 거기에 한국인이라면 좀더 깊고 넓게 공감할 수 있는 요소들을 알차게 집어넣어 한층 풍성해졌을 따름이다. 오랜 침묵을 깨고 드디어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새로 쓸 기회가 왔다.




개들은 먼저 죽으면 천국에서 주인을 기다린다고 한다. 다들 그 말을 듣고 위로받듯 가슴이 따뜻해진다고 했지만 나는 덜컥 겁이 난다. 만약 먼저 떠난 반려견을 다시 만난다면 어떤 표정을 해야 할까. 어린 시절 아버지가 예고 없이 데려온 강아지 해피와의 첫 만남은 낯설었다. 녀석은 이름처럼 발랄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내가 어딜 가나 따라다녔지만 갑작스러운 살가움이 부담됐던 나는 녀석과 늘 거리를 뒀고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했다. 돌이켜보면 아마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 채 끌려가는 상황에 대한 치기어린 불만이었던 것 같다. 녀석을 떠나보내고 한참이 흐른 뒤 타이밍 놓친 사랑의 열병을 앓는 소년처럼 그리움이 차올랐다. 녀석 역시 스스로 나를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내 곁에 머물러주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개들의 애정은 대체로 마르지 않는 샘물 같아 메마른 마음마저 흠뻑 적신다.



개들을 소재로 한 영화는 정서적인 측면에서 반칙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그 무조건적 애정을 마주하면 살갑지 않은 사람이라도 절로 무장해제되고 개를 좋아하지 않는 마음마저 죄스러워지기 마련이다. 한데 속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개를 전면에 다룬 이야기 중 정작 개들의 시점과 입장에서 풀어낸 이야기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보다는 우리가 상상하고픈 모습대로 쉽게 의인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언더독>은 그 반대지점에서 출발한다. 이 작품은 사랑을 듬뿍 받는 반려견이 아닌 유기견의 시선에서 자신의 길을 스스로 결정하는 개들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에 대한 개들의 무한한 애정에 기대지 않고 대상을 이해하고자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다. 어쩌면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음에도 상대를 제대로 알기 위해 내딛은 용기 있는 행보. 그리하여 주어진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행복을 찾아나가는 모든 이들을 위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보편적인 이야기에 한국적인 디테일을 품다



<언더독>은 2011년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220만 관객의 사랑을 받은 오성윤 감독이 7년 만에 내놓은 신작 애니메이션이다. 애니메이션의 제작기간이 본래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제작에만 꼬박 6년의 세월의 필요했던 건 한국 장편애니메이션 산업의 척박함을 우회적으로 증명한다. 제대로 된 장편애니메이션이 없다는 것은 아동을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꾸준히 제작되고 틈새를 노린 수입 애니메이션들이 늘어나는 것과는 대조적인 상황이다. 애니메이션은 여전히 아이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디즈니 픽사 등 일부 대형 스튜디오의 작품을 제외하곤 아동 시장에만 집중하는 상황에서 오성윤, 이춘백 감독이 선택한 것은 반복이 아닌 도전과 확장이다. 유기견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언더독>은 대상을 아동에 국한시키지 않고 그야말로 가족 관객이 함께 생각해봄직한 주제를 던진다. 전작에 비해 넓어진 시야와 성숙해진 주제의식이라고 하면 듣기엔 좋지만 목표와 결과는 또 다른 문제다. <언더독>이 이를 위해 선택한 길은 단순하지만 확실하다. 한층 단단해진 이야기와 높아진 완성도로 승부하는 것이다. 6년의 제작기간 중 시나리오에만 꼬박 2년을 투자한 것은 보편타당하면서도 정서적으로 친밀한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한 취재와 숙고의 과정이었다.



사람들이 반려견을 지속적으로 유기하는 한 장소가 있다. 어느 날 뭉치(도경수)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곳에 남겨지고 하염없이 주인을 기다린다. 그런 뭉치에게 선배 떠돌이 개들이 다가온다. 그룹의 리더 짱아(박철민)를 중심으로, 기억을 잃었지만 믿음직한 개코(강석), 치와와 부부 아리(전숙경)와 까리(박중금), 까칠하지만 속깊은 봉지는 개발로 인해 사람이 떠난 폐건물에서 자신들만의 삶을 꾸리고 있다. 수시로 개 사냥꾼의 위협을 받지만 서로 위로하며 지내는 떠돌이 개 그룹에 뭉치도 차츰 적응하며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던 중 폐가 마을 바로 옆 숲속에서 또 다른 떠돌이 개 집단을 마주한다. 밤이(박소담)와 토리(연지원), 그리고 믿음직한 토리의 엄마와 아빠는 사람들과 거리를 둔 채 사냥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밤이에게 첫눈에 반한 뭉치는 떠돌이 개들에게도 숲속 생활을 제안하지만 육체적인 조건도 삶의 방식도 확연히 달라 갈등을 겪는다. 한편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터전을 위협해 들어오고 이들은 그나마 남은 폐가와 숲속 보금자리에서도 쫓겨날 처지에 놓인다. 뭉치는 떠돌이 개들과 숲속 개들이 함께 살 수 있는 개들의 낙원,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길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개코의 희미한 기억에 의지해 길을 떠난 이들의 여정을 개 사냥꾼이 집요하게 추적하며 위기가 계속된다.



흔히 한국적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곤 하지만 정작 무엇이 한국적인지에 대한 고민이 묻어나는 작품은 드물다. 요컨대 한국적인 상황을 표방은 하되 실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 <언더독>은 떠돌이 개들의 모험을 보편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는 가운데 사이마다 한국적인 디테일을 튼실하게 채워 정서적인 교감을 시도한다. 우선 102분의 상영시간 동안 위기가 반복되고 상황이 해소되는데 이 호흡이 실로 교과서적이라 할 만하다. 뭉치는 주인에게 버려져 낯선 환경에 처했다가 새로운 동료들을 만난다. 새로운 환경에서도 위기가 찾아오고 여기에 적응할 때쯤 또 다른 동료들인 숲속의 개들이 등장해 또 다른 동기를 제공하고 모험을 이어간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상황의 연결은 모험물이라는 장르 아래 많은 관객이 받아들이고 편하게 따라갈 수 있는 틀을 제시한다. 동시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들, 재개발 중인 폐건물촌, 야트막한 언덕과 산의 풍광 등 디테일한 요소들을 통해 친숙함과 설득력을 더한다. 가령 개들의 낙원으로 설정된 DMZ 비무장지대는 지극히 한국적이면서도 극의 흐름에서 납득 가능한 공간이다. 그곳으로 가기 위한 여정 중 펼쳐지는 자유로 일대의 모습들은 익숙한 이미지인 동시에 로드킬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기도 한다. 떠돌이 개들을 챙기는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에서 이이야기를 단순히 개들의 모험담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로 내몰린 이들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이야기로 확장시킬 여지도 남기고 있다. 그렇게 유기견이 바라본 세상 곳곳에는 우리가 공감할 만한 서민들의 애환이 녹아 있다. 한국이란 공간과 사회상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접근 방식은 오성윤 감독이 강조하는 ‘사실주의 애니메이션’의 기본이라 할 만하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즐길 동화



애니메이션이 정서적 교감의 통로를 설계하는 방식은 결국 표현력이다. <언더독>은 작화와 목소리 연기, 2가지 측면에서 이전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에서 보기 힘들었던 탁월한 성취를 선보인다. 오성윤 감독의 표현을 빌리면 <언더독>은 ‘보는 맛’이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말 그대로 한국을 그린 이번 작화는 한국화 기법을 바탕으로 하여 한국의 풍광을 재현해나간다. 기존의 2D애니메이션이 선명한 형태와 명암으로 빛과 그림자의 레이어를 확실히 나눈 데 반해 <언더독>의 배경들에서는 뚜렷한 음영을 찾기 어렵다. 대신 산봉우리의 봉곳한 형태와 윤곽을 하나의 덩어리처럼 묘사해나간다. 부드러운 곡선의 야트막한 산들을 그린 완만한 그림체는 우리 주변을 둘러싼 지형의 온순함을 닮았다. 또한 명암을 살릴 때도 색의 온도차를 선명하게 그려낸 일본 셀애니메이션과 달리 파스텔 톤의 뭉근하고 부드러운 색채로 주변을 감싸 정서적 친밀도를 높였다. 이러한 섬세한 배경 작화를 위해 연필로 스케치하고 그 질감을 고스란히 스캔하여 컴퓨터로 옮기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했다. 14만5440장이 투입된 프레임, 5050장의 작화들은 그 피땀 어린 노력을 가늠케 하는 숫자들이다. 부감으로 잡아낸 한국의 산세와 풍광들이 한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지면 그것만으로 가슴의 빗장이 열리는 부분이 있다.



정적인 배경 묘사가 정서적 거리를 좁힌다면 개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3D로 구현됐다는 게 핵심이다. 개들의 낮은 시점에서 좁은 골목과 우거진 산속을 질주하는 장면들은 <언더독>이 구사하는 액션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개들의 디자인은 3D로 진행하여 자유분방한 움직임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물론 주변 배경과 이질감이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캐릭터의 라인을 살려내고 배경과 어울리는 색을 통해 자연스럽게 하나의 톤으로 정리했다. 2D와 3D의 조화에만 꼬박 1년을 투자할 만큼 일체감 있는 연출에 신경을 썼고 이 높은 수준의 작화는 곧장 캐릭터의 감정 표현과 생동감 있는 동작 묘사로 이어진다. <마당을 나온 암탉>처럼 손맛이 살아 있는 정겨운 그림체를 유지하되 거기에 역동적인 움직임과 푸근한 색감을 조화시켜 한 단계 나아간 작화력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개들의 캐릭터에 생동감을 더하는 것은 녹음을 먼저 하고 이에 맞춰서 캐릭터 작화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의인화된 동물인 만큼 감정 연기를 통한 전달이 쉽지 않은데 <언더독>은 대사와 표정의 일체감을 통해 이를 해결한다. 흔히 애니메이션은 완성된 그림에 목소리 연기를 입히는 개념이지만 <언더독>은 그림이 연기를 하는 쪽에 가깝다. 애니메이터들은 배우들이 먼저 진행한 목소리 연기를 바탕으로 캐릭터를 구체화하고 얼굴의 표정과 캐릭터의 디테일한 묘사들을 잡아나가는 것이다. 단순히 기계적으로 작화와 목소리 연기의 순서를 바꾼 것이 아니라 목소리 연기 후 그림을 그리고 여기에 다시 목소리 연기를 재녹음하면서 조정하는 과정을 여러차례 거쳐 마치 실사 배우의 연기를 조정하듯 그림 연기를 만들어나갔다. 덕분에 도경수, 박소담, 박철민 등 우리에게 익숙한 배우들의 캐릭터가 각각의 개들에게도 자연스레 반영되어 사실감을 높였다. ‘액터로서의 애니메이터, 연기로서의 애니메이터’라는 오성윤 감독의 목표는 아이들만의 전유물로 가두지 않고 함께 온 어른들과 같이 즐길 수 있는 가족영화로 확장시키는 기반이 되는 셈이다.



<언더독>은 잘 만든 동화다. 적당한 과장과 의인화를 활용하되 누구나 보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드라마가 바탕에 깔려 있다. 여기에 정서적 일치감에 바탕을 툰 디테일한 상황들을 거치고 나면 막연한 동화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거듭난다. 개들의 모험담에는 사회적 약자로 내몰린 우리 사회의 초상과 어두운 면이 녹아 있어 사유의 지점도 넓혀준다. 무엇보다 롱숏으로 잡아낸 한국의 아름다운 풍광들은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왜 애니메이션을 사랑하고 그림을 통해 위안을 얻는지를 새삼 일깨운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각자가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이야기와 폭넓게 교감할 수 있는 결이 풍성한 영화. 동시에 한국적인 정서와 작화, 배경을 바탕으로 하되 누구나 이해하고 즐길 만한 보편타당한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 이후 오랜만에 찾아온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의 단비 같은 영화가 반갑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