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다 마모루의 작품 세계를 크게 두 갈래로 분류했을 때, 분기점은 아마 두 가족의 충돌을 다룬 <썸머 워즈>(2009)가 될 것이다. 결혼 이후 사적 경험을 영화에 적극 반영하기 시작한 그는 <늑대아이>(2012)에서 어머니가 죽은 이후 어머니란 존재에 대해, <괴물의 아이>(2015)에서 자식을 얻은 후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4살 아들이 여동생이 태어나면서 부모의 관심이 동생에게 쏠리자 한껏 질투하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미래의 미라이>는 아예 자녀들을 실제 프로덕션 과정에 참여시켰다. 하지만 개인적인 이야기에 집중한 호소다 마모루의 세계는 협소해지기는커녕 전보다 더 보편성을 획득하며 전세계로 뿌리내리는 중이다. 4살 꼬마 쿤(가미시라이시 모카)이 첫눈 오던 날 집에 갓 입성한 동생 미라이(구로키 하루)의 중학생 모습과 조우한다는 설정은 소박해 보이는 세팅으로 인생의 순환이라는 거대한 테마를 은유하며, <미래의 미라이>는 아시아 최초로 골든글로브 시상식 장편애니메이션 후보에 노미네이트되는 쾌거를 이뤘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에 이어 또 한번 한국을 찾아 빼곡한 스케줄을 의욕적으로 소화 중인 호소다 마모루 감독을 만났다.
-큰아들의 사연에서 시작된 영화다. 하지만 감독 본인의 경험과 상상의 결과물도 함께 반영되었을 텐데.
=일반적으로 부모와 자식이 함께 시간을 보내면 어른이 아이를 교육하고 성장하게 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는 좀 다르다. 아이들의 나이에 맞춰서 어른도 그 시절을 다시 체험하게 된다. <미래의 미라이>를 만들면서 나 역시 4살 아이가 되어 그 시절을 다시 경험했고, 그 결과가 영화에 녹아 있다. 새해에 첫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데, 요즘 내가 초등학생이 된 것처럼 설렌다.
-제작 과정에 실제 아이들을 동원했다고.
=애니메이션에 어린이가 등장하는 건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상상 속의 이미지만 갖고 있다. 때문에 애니메이터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 이를 통일시키기 위해 아이들을 여러 번 현장에 데려와 직접 체험하게 했다. 스케치를 하고 데생이나 크로키를 하는 등 그림을 직접 그리고, 실제로 아이들을 만지면서 어느 정도 무게가 나가는지, 피부는 얼마나 부드러운지, 머리카락이 얼마나 가늘고 섬세한지 느낄 수 있게 했다. 때문에 <미래의 미라이> 속 아이들의 존재감은 다른 영화에서 보이는 것과 좀 달랐다고 본다.
-기승전결이 있기보다는 5개의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구성을 택했다.
=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은, 특히 모험을 다룬 이야기라면 기승전결보다는 3막 구성을 채택한다. <미래의 미라이>는 어떤 모험이 펼쳐지기보다는 아이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에 3막 구성이 어울리지 않는다. 스토리텔링에는 5막 구성이라는 기법도 있다. 소설로 치면 단편소설을 모아둔 앤솔러지 같은 건데, 짧은 에피소드를 엮어서 큰 테마를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이라 이번 영화에 적절했다.
-프로덕션 디자인 담당자가 아닌 건축가 다니지리 마코토에게 집 디자인을 맡겼다. 계단 등에 의해 단차가 생기는 집의 이미지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의 비탈길도 연상시킨다.
=실제 아이들을 모델로 한 영화에서는 집 디자인도 실제 디자이너에게 맡기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집뿐만 아니라 영화에 나오는 오토바이는 오토바이 디자이너에게, 동화책은 동화 작가에게, 신칸센은 열차 디자이너에게 부탁했다. <미래의 미라이>는 집 안에서 거의 모든 일이 벌어지고,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모두 집으로 귀결된다. 때문에 벽을 쓰기보다는 통유리로 된 문이라든지 계단의 단차를 이용해 공간을 구분하는 등 변화를 줬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비탈길은 성장에 있어 중요한 포인트였는데, <미래의 미라이>의 단차 역시 아이들의 ‘스텝 업’을 의미하는 장치다.
-할리우드가 실사 같은 애니메이션을 추구한다면 일본은 아날로그 감성의 애니메이션이 주를 이룬다. <미래의 미라이>를 비롯한 당신의 작품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미국에서는 전부 CG로 애니메이션을 작업하지만 일본에서는 수작업을 중요시한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은 그 비율이 반반인 것 같다. 직접 손으로 그리는 작화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정체성이다. 미국에서 CG가 유행한다고 그것을 따라가면 일본 고유의 스타일을 잃어버리게 된다. 가령 전통 일본화를 유럽에서 쓰는 유화 도구를 이용해서 그린다면 이도 저도 아니고 그저 일본화를 부정하는 것밖에 안 되는 것처럼. 요즘 일본에도 새로운 기법을 도입하려는 사람들도 있고, 각자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나 같은 경우 CG애니메이션을 시도하려고 해도 그게 그거인, 누가 만들었는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고 느껴져서 내가 원하는 길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애니메이션은 특별한 사람들이 모여 특별한 작품을 만드는 작업이니까.
-반면 영화 후반부 특정 장면은 스톱모션애니메이션풍의 비주얼을 시도했다. 당신의 작품 세계에서는 아주 이질적으로 다가온 시퀀스였다.
=쿤에게 넌 누구냐고 정체성을 묻는 이는, 그 질문을 할 만한 자격이 있고, 그 역시 아이덴티티와 관련 있는 인물이어야 했다. 역무원 캐릭터는 본인이야말로 자신이 누군지 모를 것 같은, 이상한 존재감을 가진 존재로 각인돼 위화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고민 끝에 종이로 만든 듯한 스톱모션애니메이션 느낌을 선보였다.
-CG애니메이션이 할리우드의 주류가 된 시대에 손으로 그린 애니메이션이 더 잘해낼 수 있는 영역은 무엇이라고 보나.
=디즈니·픽사의 CG애니메이션은 좀더 과장된 표현을 실제처럼 보여주는 데 적절한 방식이다. <미래의 미라이>는 과장된 표현보다는 아이들의 실제 피부의 부드러운 느낌이라든지 머리가 무거워 뒤뚱뒤뚱 걷는 데서 오는 귀여움을 보여준다. 좀더 따뜻한 촉감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차가운 느낌의 CG보다 손으로 직접 그린 그림이 어울리고 가족이라는 테마에도 더 적절하다.
-결혼 이후 사적 경험이 영화의 소재가 되면서 <시간을 달리는 소녀> <썸머 워즈> <늑대아이>의 각본을 쓴 오쿠데라 사토코도 작품에 참여하지 않게 됐다. 아티스트로서 중요한 분기점을 맞이한 것 같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SF 장르 영화다. 그 당시에는 어떻게 이것을 세련되게 표현하느냐를 중점적으로 생각하며 만들었기 때문에 공동 각본가가 필요했다. 하지만 <썸머 워즈>부터는 결혼해서 친척이 2배로 늘어났다든지 하는 내 실제 이야기가 반영됐다. 나의 체험을 녹여내면서 제3자에게 각본을 맡기기가 힘들었고, 점점 장르영화에서 벗어나게 됐다. 대신 그 속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겪고 변화하는 나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풀어내는 데 집중하며 새로운 표현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대표적인 일본 영화감독이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호소다 마모루라 할 수 있는데, 최근 들어 두 감독 모두 가족 이야기에 집중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고레에다 감독과 나는 일본영화계의 주류가 아니다. “쟤네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같은 말을 듣고 있다. (웃음) 둘 다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테마가 ‘가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연히 소재의 공통점으로 묶이는 것 같다. 일본만 타깃으로 하는 작가들의 경우 오히려 가족을 제외한 다른 쪽의 테마를 찾는 것 같고. 그게 일본의 다른 감독과 우리 둘의 차이점이다. 개인적으로는 고레에다 감독과 내가 일본 안에서도 좀더 높은 평가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