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이자 기회’라는 표현처럼 빤한 말이 없다. 대부분 전자의 ‘위기’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습관적으로 쓰는 표현이다. 이번 호에서는 CJ, 롯데, 쇼박스, NEW, 메가박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등 투자·배급사 및 직배사에서 한국영화 투자를 책임지는 사람들을 만나 최근의 산업 상황에서 무엇을 고민하는지 물었고, 그 특집 제목에서 기회라는 말을 빼고 ‘한국영화 위기인가’라고만 달았다. 다들 ‘위기이자 기회’라는 표현을 쓰길 주저한 것이다. 한국영화계에 한두해 몸담고 있던 사람들이 아니기에 지난 1년간의 동향을 살펴보면, 섣불리 ‘기회’라는 희망적 표현을 습관적으로라도 덧붙이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특집의 메인 기사를 쓴 김성훈 기자도 ‘위기의 전조일까, 아니면 우연의 연속일까’라는 말로 우회했다. 그만큼 지난해 추석 명절과 연말 겨울 극장가에서 한국영화 대작들이 연달아 흥행에 실패한 것을 둘러싸고 영화계 안팎에서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최근 여러 신생 투자·배급사들이 산업에 뛰어들었고, 네이버웹툰과 카카오M 같은 공룡 ICT 기업들도 영상 콘텐츠 제작을 시작했다.
시장은 커졌지만 경쟁은 더 격화되고 있다. 역시 김성훈 기자가 쓴 표현처럼, 신생 회사와 자본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활력이 넘친다’는 말보다 ‘업계가 어수선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이유다. 2013년을 기점으로 6년 연속 극장 관객수 2억명을 돌파하고, 1990년대만 해도 많은 영화인들이 ‘꿈의 숫자’라고까지 불렀던 한국영화 점유율 50%를 7년 연속으로 넘긴 뒤, 2019년 대망의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은 시점에 이러한 ‘한국영화 위기론’이 빳빳하게 고개를 드는 이유가 뭘까. 지난해 추석 명절에는 100억원 이상을 투입한 <안시성> <명당> <협상> <물괴> 4편 중에서 <안시성> 1편만 수익을 냈다. 연말의 경우 2017년 12월 <신과 함께-죄와 벌> <1987> <강철비> 3편으로 한국영화 점유율이 무려 78.2%까지 올랐던 것과 비교해, 지난해는 엇비슷한 물량으로 <마약왕> <스윙키즈> <PMC: 더 벙커>가 나란히 개봉했는데도 12월 한국영화 점유율로 보자면 7년 만의 최저라고 할 수 있는 47.2%선에 머물렀다. 이제 시선은 설 연휴 극장가로 향한다.
지난 두번의 대목 극장가에서 참패했을 때, 차라리 많은 영화인들이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영화 트렌드와 시장 상황은 주기에 따라 돌고 돈다’는 그 실체 없는 ‘주기론’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었다. 10년 전인 지난 2008년을 보면, 2003년부터 2007년까지 5년 연속 한국영화 점유율 50%를 돌파했다가 다시 42.5%로 추락했다. 그러다 2012년에 다시 과반 점유율을 돌파했으니 이러한 위기론을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마음으로 버틸 요량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의 위기론이 과거의 상황과는 사뭇 다름을 느낀다. 지나친 비관적 전망에 경도되고 싶진 않지만, 분명한 것은 연초마다 거의 동일한 포맷으로 진행하고 있는 투자·배급사 및 직배사 관계자 인터뷰에서, 올해처럼 자신감 넘치는 기대와 포부를 발견하기 힘들었던 때가 있었나 싶다. 이번 호 특집 인터뷰에 귀 기울여주시길, 그리고 그 위기론에 대한 연속기획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