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장벽이 붕괴된 지 30주년 되는 올해, 시의적절한 영화가 나왔다. 동독 출신 중견 작가 잉고 슐체의 소설 <아담과 에블린>(국내 2012년 번역 출간)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역시 동독 출신인 안드레아스 골트슈타인 감독의 데뷔작이다.
영화는 1989년 동독 어느 시골의 한여름 낮, 파스텔톤 하늘과 구름, 풀벌레 소리, 새소리, 들꽃이 제멋대로 무성히 자라고 있는 정원에서 시작된다. 수천명의 동독 여행객들이 헝가리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 서독대사관으로 탈출하고 있음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배경음으로 알 수 있다. 여성들에게 아름다운 옷을 만들어주는 재단사이며 취미는 사진 찍기인 아담은 일상에 만족하지만 여자친구 에블린은 틀에 박힌 웨이트리스 생활에 불만이 많다. 에블린이 먼저 동유럽으로 떠나고 그 뒤를 아담이 좇는다. 이들이 길을 떠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영화를 채우고 있다. 고정된 카메라에 담긴 동유럽의 아름다운 여름 풍경과 느릿한 진행, 코믹하지만 진지한 대화 장면은 밝고 경쾌하다. 독일 일간지 <디벨트>는 “원작 소설과 비슷한 분위기를 지닌 영화”라고 평했다.
<아담과 에블린>은 타이틀이 암시하듯 성경 우화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아담과 에블린(이브)이 동독이라는 파라다이스를 떠나는 로드무비이자 성장영화다. 철의 장막 안쪽에서 꾸었던 달콤한 꿈조차 사실은 불확실한 미래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영화 <아담과 에블린>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