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2013)로 폴란드영화의 저력을 보여준 파벨 파블리코프스키의 신작. 냉전시대 유럽을 배경으로 15년에 걸친 두 남녀의 러브 스토리가 스크린에 펼쳐진다. 1949년 폴란드, 민속음악단 마주르카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빅토르(토마시 코트)는 오디션장에서 만난 줄라(요안나 쿨리크)에게 첫눈에 반한다. 두 사람은 곧 연인이 되지만, 빅토르는 음악을 정치적 선전도구로 이용하려는 상부의 태도에 염증을 느껴 1952년 베를린 순회공연 중 프랑스 파리로 망명을 계획한다. 그러나 함께 떠나기로 했던 줄라는 약속 장소에 오지 않는다. 그 뒤 10여년간 두 사람은 파리, 유고슬라비아, 폴란드에서 시간차를 두고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조우한다.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만날 때마다 서로가 함께할 수 없는 이유만 늘어가는 한 커플의 관계 변화가 4:3 흑백 스크린에 담긴다.
오랜 시간을 두고 만남과 이별을 거듭하는 연인의 이야기에서 ‘비포 3부작’이나 <라라랜드>를 떠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의 관심은 정교하게 직조한 미장센을 통해 연인을 갈라놓는 시대의 엄혹함을 탐구하는 데 있다. 특히 음악은 동구와 서구의 여러 차이를 내포하는 중요한 요소다. 영화의 초반부 폴란드 민속음악 버전으로 연인이 함께 부르고 연주하던 테마곡 <심장>은 1950년대 파리의 재즈 신에서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편곡돼 흐른다. 노래를 직접 소화한 폴란드 배우 요안나 쿨리크의 공허한 표정이 긴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