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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 김중현 감독 - 그럼에도 살아남는 사람의 이야기
2019-02-14
글 : 김소미
사진 : 오계옥

단절된 관계와 경제적 궁핍 속에 놓인 남자의 이야기였던 <가시>(2011)로 데뷔한 김중현 감독은 <이월>에서도 혹독한 가난에 처한 여성을 그린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만둣가게에서 돈을 훔치다 쫓겨난 고시생 민경(조민경)에겐 작은 상자 안에 모아둔 현금 몇푼이 가늠할 수 있는 근미래의 전부다. 한때 자신만큼 현실이 우울하고 고통스러웠던 친구 여진(김성령)은 시골에서 요양하며 안정을 되찾고, 가끔 섹스를 하고 돈을 쥐여주던 진규(이주원)는 차라리 같이 살자고 한다. 이토록 암담한 세계에서도 인물의 복잡한 감정과 시적인 상상을 펼쳐낸 김중현 감독은 “민경이 이렇게 살아가다간 죽어버릴 것 같다는 불안감이 커서, 그녀가 살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이월>은 그것이 어떤 감정이든 관계든, 한 사람이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의 영역이 너무 비좁아진 상태에 주목한다.

=나는 그게 결국 가난에서 생긴다고 봤다. <가시> 때부터 그렇게 생각해왔다. 항상 궁금한 건 다 같이 가난한데 누구는 더 가난해 보이고 어떤 사람은 덜 가난하고 행복해 보인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가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한국영화아카데미 재학시절에 말하고 다니면 다들 너무 진부하다고 했다. 소재만 보면 진부한 건 사실이다. 결국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 가난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견디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면 괜찮을 것 같더라.

-고시생 민경 캐릭터는 김훈의 소설 <영자>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적 있다.

=그렇다. 그 소설에서 가난한 고시생이 어떤 혹독한 시기를 견디는 모습이 민경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줄곧 하면서도 절대 죽지는 않는다.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영자>를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어른이 바라보는 아이 같다는 인상도 받았다. <이월>을 쓰면서 어떻게든 나 자신이 민경이 돼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경은 타인에게 모진 말을 내뱉거나 악의와 거짓을 일삼으며 생존하기도 한다. 쉽사리 미워할 수도 그렇다고 동정할 수도 없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존엄하다. 캐릭터를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했나.

=종종 내게 정서적으로 어떤 두려움이나 화를 남긴 사람들의 얼굴이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다시 떠오를 때가 있다. 내 감정에 휩싸여 있다가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실체가 서서히 인지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도 그들과 비슷하기 때문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혐오하고 싫어하는 모습을 내게서 발견했을 때의 충격을 떠올리면서 시나리오를 썼다. 가급적 조민경 배우에게는 이런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민경의 친구 여진이 자기 집 앞 작은 웅덩이 앞에서 그곳에 빠져 죽은 증조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준다. 민경은 그 웅덩이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나중에는 큰 돌들을 던져넣기도 한다. <이월>은 민경이 자기 마음의 웅덩이를 메꿔보려 하는 과정의 이야기 같았다.

=실제로 어린 시절에 작은 웅덩이를 보면서 한번 빠지면 절대 못 나올 것 같아 공포를 느낀 적 있다. 나중에 커서 보니까 참 작고 초라하더라. 웅덩이를 대하는 민경의 태도가 그녀의 상태를 잘 말해줄 것 같았다.

-물에 비친 민경의 얼굴 인서트가 나온다. 대개 건조한 시선을 유지하는 영화 톤에 비해 이질적인 장면이다.

=문명환 촬영감독의 아이디어였다. 사실 나는 담백하게 찍고 싶었다. 감정이입을 많이 한 채 쓴 시나리오라 영화가 감정에 젖은 채로 나올까 봐 걱정을 많이 했다. 가능한 한 건조하게 거리감을 두고 찍으려 했는데 문 촬영감독이 이러다 영화에 감정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고 몇개라도 찍어두자고 권하더라. 나중에 안 쓸 요량으로 일단 찍은 건데 편집하면서 이런 이미지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걸 절감했다. (웃음)

-월세 낼 돈이 없어 이곳저곳 전전하는 민경의 여정이 펼쳐지지만, 공간을 이동하는 과정을 담은 장면이 거의 없다. 마치 순간 이동을 하는 것처럼 다른 공간들이 툭툭 연결된다.

=어떤 면에서 <이월>은 민경의 로드무비이기도 해서 처음엔 이동하는 장면을 몇개 찍기도 했다. 근데 내게는 이 이미지들이 마치 생각할 여유나 감정을 강요하는 듯한 느낌을 주더라. 그래서 빼버렸다. 어딘가를 응시한다거나 걷는다거나 하는 이동 장면이 쓸데없이 감상적이 될 거라는 걱정이 있었다.

-사람의 충동적 감정에 관심을 둔다. 진규의 아들 성훈(박시완)을 두고 갑자기 도망가는 민경의 행동은 그녀의 버거운 심리 상태를 환기시키기도 했다.

=경험에서 온 관심사인 것 같다. 나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던 나 자신이나 주변 사람의 행동을 곱씹었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대체 왜 그랬을까 하고 생각에 빠지게 된다. 아마도 무서워서,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어떤 일 앞에서 내린 선택이 아니었을까. 나 역시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빠졌을 때 비슷한 상태였던 것도 같다. 누군가 진심으로 나를 위해줄 때도 혼란스럽고 버거운 적이 있었다. <이월>의 제작사 무비락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준 이한 감독님(<증인>)도 내게 인간적으로 너무 잘해주셨는데, 그때도 불쑥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서더라. 그 호의에 대한 책임감을 고려하게 되니까 마음이 너무 무거워지는 거다.

-민경의 위악적인 태도는 실은 그보다 훨씬 더 모진 세상에 대한 역설일까.

=어릴 땐 세상 탓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나이를 먹었는지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분명히 민경과 똑같은 처지에 있으면서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전작 <가시>에 비해 조금은 밝아졌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답이 없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무언가 희망적인 부분을 보여주는 게 거짓말 같다는 생각을 늘 했는데, 이번엔 결말에서나마 조금 여지를 주면 어떨까 싶었다. 물론 마음 한편에는 비극적인 생각이 더 많았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처음 공개했을 땐, 관객과의 대화(GV)에서 어두운 결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객석에서 당황하는 반응도 나왔다. 지나고 생각해보니까 처음 쓸 때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더라. 어떻게든 제발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한편으로 <이월>은 집필 당시의 감독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같다.

=일기처럼 써나간 시나리오였다. 쓴 일기 중에선 그나마 가장 그럴듯한 일기랄까. 스탭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영화제 수상 등의 결과가 얼떨떨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 자신을 민경과 많은 부분 동일시했다.

-준비 중인 차기작은.

=<이월>의 제작사 무비락과 새 영화를 진행 중이다. 미스터리가 결합된 드라마 장르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내 얘기를 쓰는 건 편하지만, 이제는 만족시켜야 할 대상이 있다고 생각하니 확실히 부담감이 크다. 쉽게 말하면 잘 못 쓰는 거지. (웃음) 내게 잘 맞는 옷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사이의 괴리를 좁혀가는 일은 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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