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타: 배틀 엔젤>은 다양한 지점에서 도전적인 영화다. 웨타 디지털이 만들어낸 CGI 캐릭터 알리타의 생김새는 만화 속 이미지가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생함과 비인간적인 이질감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한편, 일본 만화를 할리우드에서 영화화한 사례로는 드물게 원작의 만화적 상상력을 충실하게 재현하기 위해 노력한 작품이다. 저예산 독립영화 감독으로 시작해 어느덧 할리우드 최대 규모의 블록버스터영화를 연출한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과 처음으로 SF영화의 주연을 맡게 된 배우 로사 살라자르의 조합 또한 이 영화가 얼마나 많은 실험과 도전을 했는지 보여준다. 지난 1월 24일, 영화 홍보차 한국을 찾은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 배우 로사 살라자르를 만나 새로운 도전의 설렘과 험난했던 과정에 대해 들었다.
-원작 만화 <총몽>을 알고 있었나? 언제 처음 접하게 됐나.
=로사 살라자르_ 만화책보다 애니메이션을 먼저 접했다. 두편의 단편애니메이션은 꽤 오래전에 유튜브에서 본 기억이 난다. 존 랜도 프로듀서와 캐스팅 이야기가 오갈 때는 아무래도 책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아 이베이 등 각종 사이트를 뒤지며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결국 연재가 완료된 1부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낱권을 따로 구매해서 볼 수 있었다.
=로버트 로드리게즈_ 2000년 즈음에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연출한다고 이야기가 돌 때 궁금해서 읽어볼까 하다가 한동안 잊고 지냈다. 만화는 대본을 읽고 나서 공부하는 마음으로 찾아 봤다. 보자마자 원작자 기시로 유키토의 팬이 됐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구상한 기획 방향과 완성된 영화 사이에 차이가 있나. 혹은 영화화 방향에 대해 제작자와 연출자 사이의 의견 차이는 없었나.
로버트 로드리게즈_ 이 영화의 모든 것은 제임스의 밑그림에서 시작됐다. 그가 구상한 시나리오와 아트워크 등 프리 프로덕션 단계의 작업이 갖춰져 있었다. 예를 들어 알리타의 눈 크기나 신체 디자인 같은 것 등등. 캐스팅이나 현실감을 주기 위한 코스튬 제작 같은 과정상의 방향이 필요했을 뿐이다. 내가 고민한 것은 거대한 액션 스펙터클 안에서 본심을 잃지 않는 것이었다. 언제나 관객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인간적인 캐릭터란 걸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처음부터 원작 만화의 이야기 중 시작점인 1~3권을 바탕으로 영화화해야겠다고 결정한 건가. 감독으로서 그 이야기에 살을 덧붙이거나 변형할 의향은 없었나.
로버트 로드리게즈_ 원작 만화 전체의 스케일은 제임스에게 영감을 주기는 했을 것이다. 다만 영화는 2시간이라는 시간 안에 풀어나가야 하기 때문에 영화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여기서 제임스가 주목한 것은 어린 여성이 고철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되어 새로운 세상에 눈뜨는 과정이었다. 스스로 자신이 하찮은 여성이 아니라 중요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자아를 찾는 과정과 구조가 마음에 들었고 나도 동의했다. 그래서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이어 붙일 기회의 문을 열어두게 됐다.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이 연출을 맡는다고 결정됐을 때 이 영화의 방향이 어떻게 갈지 예상이 되던가.
로사 살라자르_ 실은 오디션 보기 전에 로버트를 만났는데 컨셉아트를 내게 살짝 보여주었다. 그런데 내 얼굴과 너무 똑같아서 깜짝 놀랐다. (웃음) 보자마자 무척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테스트 촬영을 하면서 존 랜도 프로듀서가 보여준 프리비즈 영상만 봐도 어떤 영화가 될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내 연기가 실제로 CGI 캐릭터인 알리타를 통해서 어떻게 스크린에 비쳐질지는 연기하는 내내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알리타의 감정 변화를 연기하는 데 있어 원작의 캐릭터 ‘갈리’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거나 혹은 원작 캐릭터와 차이를 두기 위해 고민한 지점은 없었나.
로사 살라자르_ 이미 만화를 좋아하는 팬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했다. 나도 그 과정에서 갈리의 팬이 되었다. 원작의 갈리와 차이를 두려고 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그 반대로 내가 해석한 알리타가 원작자인 기시로 유키토가 상상한 그 인물이기를 바라며 연기했다.
-알리타는 ‘기갑술’이란 액션 기술을 선보이는데 이를 위해 엄청난 연습을 거쳤다고 들었다. 스턴트 배우만 9명이 전담했는데 직접 연기한 액션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로사 살라자르_ 5개월 넘게 하드 트레이닝을 받았고, 앞으로 또 언제 쓰일지 몰라 지금도 훈련하는 중이다. 술집에서 라운드킥을 날리는 장면은 내가 직접 선보인 액션이기도 한데 내가 어느 정도 액션을 만들면 스턴트 배우가 살을 덧붙이고, 중력을 거스를 수밖에 없을 때는 CG의 도움을 받는 식이었다. 알리타 역의 스턴트 배우 중에는 곡예사나 스케이팅 선수도 있는데 그중 미키 파치넬로는 아주 어릴 때부터 스턴트 배우로 활동한 터라 그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퍼포먼스 캡처 연기를 할 때는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 혹은 일상적인 연기와 다른 점도 있을 것 같다.
로사 살라자르_ 슈트와 헬멧이 편해지도록 적응하는 과정이 어려웠지 연기하는 건 똑같다. 디지털로 구현된 내 모습은 굉장히 초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완벽한 기술과 내 연기가 만나 무언가 만들어진다는 것. 기술이 내 연기와 감정을 증폭시켜준다는 점이 중요하다. 모든 바탕에는 연기가 있고 CG는 하나의 수단으로 존재하는 것이기에 나는 그저 자연스럽게 평소처럼 연기할 수 있었다.
-저예산 독립영화 영화감독의 상징적인 위치에 있다가 어느덧 할리우드에서 가장 거대한 블록버스터영화를 연출했다. 이번 영화가 당신의 다음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 것으로 생각하나.
로버트 로드리게즈_ 잘 알겠지만 나는 내일 당장에라도 이런 영화를 작업할 수 없는 처지가 될 수 있다. 사실 난 큰 규모의 영화에 별 관심이 없었다. 이번 작업은 내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재미있게 작업하면서도 이렇게 많은 예산이 투입될 수 있다는 것을 할리우드에 보여준 셈이다. 대개 거대 자본이 투입되면 감독의 연출권을 사방에서 간섭하기 마련인데,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작업했기 때문에 마치 독립영화를 만드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예산보다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는 예술가의 삶의 질이 더 중요하다는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물론 배우로서도 감독 못지않게 이번 작업이 중요한 기점이 될 것 같다.
로사 살라자르_ <알리타: 배틀 엔젤>은 내게도 많은 기회를 열어줬지만 무엇보다 나와 같은 히스패닉계 여성들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줬다. 현재 많은 라틴계 배우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중요한 시리즈 영화의 주연을 맡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이제는 꼭 인간 캐릭터만 연기할 필요가 없다. 신체 활용의 다양한 기회를 열어줬다고 생각한다. 감독님과 평소에 대화하면서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언제 일이 끊길지 모르니 잘 살아남아보자, 라고 말이다. 우린 늘 잘될 거라는 기대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