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제작을 맡고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이 연출한 <알리타: 배틀 엔젤>은 <아바타> 시리즈가 아니었다면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직접 연출을 맡았을 작품이다. 그만큼 감독으로서 오랫동안 기획 개발을 붙들고 있었던 것. 이제는 원작 만화 속 세계를 구현할 기술적 여건이 갖춰진 시기가 왔다는 판단이 있었을 텐데, 할리우드에서 일본 만화의 실사화 프로젝트가 계속해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총몽> 원작의 프로젝트를 과감히 밀어붙인 이유가 궁금해진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오랜 동료로 현장에서 함께하고 있는 존 랜도 프로듀서를 만나 <알리타: 배틀 엔젤> 제작에 관해 자세히 물었다.
-제작자로서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타이타닉>(1997)부터 <아바타>(2009)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왔다. <알리타: 배틀 엔젤>은 어떤 이유에서 다시 뭉쳐야겠다고 생각했나.
=이번 영화는 부모로서 느끼는 감정이 앞섰다. 스스로 하찮은 존재라고 느끼던 작은 체구의 여성이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고 주변의 세계마저 바꾸게 되는 자아 발견의 과정을 영화에 한번 담아보자는 데 서로 마음이 통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 영화를 기획할 때 600페이지에 달하는 설정집을 만들어놨다고 하던데 그 방대한 자료에는 주로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나.
=600페이지 노트는 전체 자료의 일부에 불과했다. (웃음) 그 노트에는 캐릭터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사연이 담겨 있다. 제임스는 제대로 된 캐릭터를 만들려면 그의 과거와 미래까지도 모두 구상해야 한다고 믿는 감독이다. 속편을 만들지 않더라도 그 세계관 안에 미래에 대한 방향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트에는 기능이 추가된 인간으로서의 사이보그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도 적혀 있고, 영화 속 모터볼 경기, 공중도시 자렘에 대한 디테일 등이 담겨 있다. 영화에는 자세히 묘사되지 않지만 공중도시가 진짜로 존재한다면 적도 가까이에 존재할 거라는 나름의 계산도 자료와 함께 적혀 있었다. 공중도시와 고철도시를 연결하는 스페이스 엘리베이터에 대한 설명도 있고.
-원작 만화 <총몽>은 그로테스크한 캐릭터 디자인을 비롯해 폭력적인 액션이 등장하며 그 자체로 작품의 스타일이 되었다. 그런데 영화는 온 가족이 명절에 볼 수 있는 블록버스터영화를 지향하면서도 원작에 충실한 폭력 묘사가 꽤 자주 등장한다.
=원작에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장면이 많이 담겨 있지만 보다 다양한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폭력성을 오히려 액션으로 승화시키려고 했다. 비주얼적으로는 사람의 피를 직접 보여주지 않으면서 파란색 혈흔을 쓴다든지 하는 식으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셔터 아일랜드>(2010), 넷플릭스 드라마 <얼터드 카본>(2018) 등을 집필한 작가 리타 캘로그리디스도 공동 각본가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각색 과정은 어떻게 분담해서 이뤄졌는지 궁금하다.
=제임스와 나는 영화 판권을 산 시점에 다른 작업 때문에 굉장히 바빴다. 그래도 이 영화는 포기할 수 없어 리타에게 초안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제임스와 그녀가 대략 4년 동안 함께 초고를 썼다. 물론 최종 시나리오로서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그때부터 제임스 혼자 다시 수정을 거듭했다. 원작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길다고 느껴졌는데 그때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이 등장했다. 로버트가 180페이지에 달하던 시나리오를 130페이지까지 줄여 가지고 왔다. 그런데 분량만 줄었을 뿐 빠진 게 하나 없이 잘 표현되어 있었다. (웃음) 불필요했던 서브 플롯을 중심으로 없앴는데 로버트가 제임스의 글을 적절하게 편집한 셈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실사영화가 대부분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그런 영화들과 비교해서 <알리타: 배틀 엔젤>은 어떤 점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기시로 유키토의 만화는 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아니고 캐릭터도 아시아인이 아니다. 이 작품에는 미국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나 인종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래서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실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차이는 이전의 많은 실사화 프로젝트들이 관객과 캐릭터 사이의 관계를 소홀히 설계했다는 점이다. 시나리오에서부터 캐릭터에 감정이입할 수 있는 여지를 허용하지 않은 영화들이 많았다. 관객이 알리타를 보며 눈물 흘릴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실제로 알리타가 우는 장면이 많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관객과 알리타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
-흔히 웨타 디지털은 메커닉 디자인보다는 정글 같은 자연이나 괴수 크리처 디자인을 훨씬 잘 다루는 집단이라고 알려져 있다. 제임스 카메론과는 <아바타>를 작업하기도 했는데 어떻게 다시 뭉쳤나.
=제임스와 내가 보기에도 웨타 디지털보다 크리처 디자인을 더 잘할 수 있는 곳은 없다고 생각한다. 웨타 디지털은 영화라는 매체는 와이드 숏보다 클로즈업 숏이 더 중요하다고 이해하는 회사다. 게다가 웨타의 또 다른 장점은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는다는 거다. <아바타>를 만들 당시에도 퍼포먼스 캡처를 통한 페이셜 애니메이션을 작업해주기를 원했는데 그 덕에 이 영화에서는 훨씬 더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었다. 웨타 디지털은 <아바타>와 <혹성탈출> 시리즈 이후에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었다. 웨타 디지털은 미래 지향적인 회사다.
-<알리타: 배틀 엔젤>의 기술적 성과가 향후 ‘아바타 프로젝트’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아바타> 시리즈를 준비하는 것이 이 영화 제작에 좋은 영향을 끼칠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알리타: 배틀 엔젤>이 <아바타> 속편에 훨씬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이 영화를 기반으로 <아바타> 시리즈가 성공할 거라 확신한다. (웃음)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과의 협업은 <알리타: 배틀 엔젤> 영화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나.
=우선 로버트는 연령을 불문하고 모든 관객이 이 영화를 매력적으로 보게끔 만들었다. 아마 제임스가 연출했다면 R등급 영화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로버트가 연출하면서 그만의 센스를 적용해 미국에서 PG13 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예상과 반대되는 답변이다.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연출할 때 오히려 수위가 강한 폭력 묘사가 많을 거라 예상했다.
=기획 초기에 로버트와 이런 이야기를 한 적 있다. “이 영화는 당신의 필모그래피를 통틀어 최대 예산 규모의 영화다. 그래서 당신은 최대한 많은 관객을 아우를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책임이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때 이미 제임스와 나는 영화 등급을 사실상 결정했다. 그리고 로버트에게 한 가지 더 부탁한 게 우리가 협업하려면 감독의 업무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잘 알겠지만 로버트는 촬영, 편집, 음악 등의 작업을 혼자 다 한다. 이번에는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영화이니 감독은 연출에만 집중하고 역할에 맞는 스탭과 함께 협업하자고 말했다. 그래서 <매트릭스> 시리즈를 촬영한 빌 포프 촬영감독과 <아바타>를 편집한 스티븐 리브킨 감독, 음악감독에 정키 XL을 기용한 거였다. 로버트는 감사하게도 이 모든 것을 다 수용했다.
-이미 기획 단계에서 많은 사전 작업을 했기 때문에 시리즈를 이어나가는 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관객이 원한다면 제임스와 로사 살라자르, 원작자인 기시로 유키토까지 속편을 만들 준비가 되어 있다. 기시로의 만화에는 방대한 역사가 담겨 있다. 이번 영화는 그 세계의 극히 일부분만 보여준다. 알리타가 자라면서 겪는 개인적인 성장 스토리도 있다. 그런 이야기를 추가로 이어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