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언더독> 오성윤·이춘백 감독, "새로운 스타일과 미래적인 메시지, 포기할 마음은 없다"
2019-02-14
글 : 김소미
사진 : 오계옥
이춘백, 오성윤 감독(왼쪽부터).

모든 것이 진일보했다. 전작 <마당을 나온 암탉>(2011)에 비해 캐릭터의 움직임이 더 유려하고, 한국적 색채가 돋보이는 배경 작화는 더 세밀하고 서정적인 감각으로 스크린을 물들인다. 자유를 찾아 떠나는 개들의 사랑스러운 모험담 안에 유기견 문제, 도시 재개발, 한반도 평화에 이르는 많은 주제도 알차게 여물었다. 하지만 오성윤·이춘백 감독을 만난 건 6년 만에 돌아온 오돌또기 애니메이션에 대한 정담을 주고받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영화시장에서 ‘언더독’인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의 처지를 알기에 개봉을 앞두고 감기몸살을 호되게 앓았다는 두 사람은 자리에 앉자마자 “오늘 다 쏟아내고 싶다”며 한숨부터 쉬었다. 1월 16일에 출발해 개봉 3주차에 접어든 <언더독>은 현재 약 18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상태. <마당을 나온 암탉>이 220만 관객을 모은 데 비하면 두 감독뿐 아니라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을 응원하는 업계 전체가 걱정할 만한 현상이다. 어디서부터 말을 시작해야 할지 착잡한 마음도 들었지만, 흥행과 별개로 <언더독>의 뛰어난 성취는 여전히 꼼꼼히 짚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두 감독과 대화를 나눴다.

-<언더독>을 경쟁력 있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완성하기 위해 여러 부분에 공을 들였는데, 무엇보다도 동물 캐릭터들의 감정 표현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썼다고 들었다.

=이춘백_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실사 영화배우들에 뒤지지 않는 연기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업계의 3D 애니메이터들은 그동안 경제적으로 일을 처리해야 하는 아동용 TV애니메이션에 익숙해 정형화된 스타일이 있더라. 놀랄 때 하는 동작, 슬플 때 하는 동작 등등 특유의 모션이 있다. 잘 보면 캐릭터들이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런데 사실 감정 표현이라는 건 때에 따라서 아주 절제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미동도 없는 채로 내면의 상태를 섬세하게 드러내야 하는 경우다. 작업자들로서는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가야 했고, 우리 입장에서는 일일이 설명하고 원하는 걸 관철해야 하니 초반엔 많이 힘들었다. 중반을 넘어서면서 3D 애니메이터들도 새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된 점을 만족스러워하더라.

=오성윤_ 처음엔 2초짜리 컷 하나 수정 지시 보내는데 A4용지로 1장에 문서를 작성해 보냈다. 거의 소설을 쓴 거지. (웃음) 나중엔 서로 접점을 찾아가면서 점점 문서 분량이 줄어들었다. 화학작용이 일어난 거다. 나는 콘티를 놓고 연출 브리핑을 할 때 자꾸만 직접 연기를 하게 되더라. 이후에는 회의 때마다 내가 연기하는 모습을 촬영해서 작업자들에게 참고용으로 나눠주었다.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과정이 꽤 복잡하다고 알려진 선녹음 후작화 방식(완성된 그림에 맞춰 더빙하는 후시녹음 방식이 아니라 시나리오 단계에서 미리 녹음을 하고 그에 맞춰 애니메이션을 만든다.-편집자)을 택했다. 목소리 캐스팅이나 연출 면에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은.

오성윤_ 배우가 직접 스크린에 나타나는 게 아니라 가상의 그림에 사람의 성질이 잘 묻어나야 하는 작업이라 일반 영화와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 캐스팅 원칙 중 하나가 캐릭터의 나이를 가성으로 표현하지 말자는 거였다. 배우가 가진 본래의 성질을 바꿔서 인위적인 소리를 만들면 좋은 결과가 나오기 힘들다. 진짜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비로소 캐릭터에 생명감이 훅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도경수, 박소담 배우 이야기는 워낙 많이 해서 강석 선배를 특별히 언급하고 싶은데 사람으로 치면 환갑이 넘은 들개 개코 캐릭터를 무게감 있게 만들어주셨다.

이춘백_ 토리 캐릭터는 만약 성우가 했다면 주로 여성 성우가 남자아이 목소리를 내는 식으로 작업했을 확률이 크다. 우리는 실제 아이의 목소리를 원했기 때문에 아역 오디션을 했다. 토리 캐릭터와 연지원 배우가 만나는 순간 무척 좋은 시너지가 일어났다.

-성별, 나이. 계급 등에 맞춰 개들의 캐릭터를 정형화하지 않으려고 애쓴 점도 돋보인다. 주인공 뭉치가 좋아하는 암컷 밤이를 단단한 골격을 지닌 검은 개로 그렸다.

오성윤_ 우리도 고민을 많이 했다. 처음엔 둘 사이에서 새끼가 태어나는 설정이 있었다. 강아지는 관객에게 쉽게 어필할 테니까. 그런데 그 설정을 넣으니까 밤이 캐릭터가 의도치 않게 점점 소극적으로 변하더라. 뭉치는 리더로 점점 더 영웅화되고 밤이는 시나리오에서 역할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목표 지점은 한참 남았는데 어딘가 편협해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강아지는 대중을 끌어들일 수 있는 굉장한 매력적인 요소지만 그냥 포기하자 싶었고 밤이를 살리는 데 주력했다.

-시장성을 위해 욕심을 부렸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과장되게 귀엽거나 화려한 캐릭터 표현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이춘백_ 과장된 카툰 스타일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으로 다가가길 바랐다. 그렇다고 극사실주의는 아니고, 모델로 삼았던 것이 <라이온 킹>(1994) 스타일의 룩이다. 사실적인 느낌을 추구하되 오돌또기만의 스타일에 맞게 굉장히 여러 번 변형하는 과정을 거쳤다.

-3D 애니메이팅을 통해 캐릭터를 만들면서 2D 배경과 잘 조화되도록 신경 썼다. ‘2.5D’라는 표현을 썼는데, <언더독>을 통해 작화 스타일에서 노하우나 작업 시스템을 갖춘 것이 있다면.

이춘백_ 이와 관련한 연구 개발에만 1년 정도 걸렸다. 3D이긴 하지만 최대한 2D처럼 보이도록 아우트라인이 살아 있기를 바랐다. 캐릭터가 평면적인 배경과 잘 어울리게 하려고 그림자와 조명을 부드럽게 만든 것이 효과적이었다.

오성윤_ 기계적인 카툰렌더(3D를 2D처럼 평면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효과)가 아니고, 숏의 크기에 맞춰 직접 선을 다 만들었다. 매핑의 정도가 중요했는데 김기표 촬영감독이 굉장히 잘해주셨다. 라인값을 설정할 때 아주 약간의 차이로 3D처럼 보이거나 너무 플랫해 보이는 현상이 생기기 때문에 최적의 지점을 찾아내는 게 어려운 숙제였다.

-영화 전반적으로 사이즈가 넓은 풍경 숏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영화에 정서적으로 녹아들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였다.

오성윤_ 사람의 손으로 그린 멋진 자연 풍광이 해외의 제작비 2천억원짜리 풀 3D애니메이션과 다른 우리만의 관람포인트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주제적으로도 중요한 지점이었다. <언더독>은 개들이 갇혀 있는 철망의 이미지가 점점 커지며 공간이 확장되는 영화다. 개공장의 작은 철망에서 시작해 입산 금지 철망을 지나고 농장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어서 영화 말미에는 이전보다 훨씬 높은 장벽을 뚫는다. 그래서 스크린X 상영에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현재까지 약 18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다소 아쉬운 흥행 성적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오성윤_ 개봉 전에 맘 앤드 키즈 시네마 상영 등을 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 엄마와 아이가 모두 즐길 수 있는 가족 관객을 노리는 영화로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었는데 실제 티케팅에서는 조금 다른 현상이 나타나더라. 여러 분석이 가능할 텐데 우선 관객의 눈높이가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완전히 고정된 것 같다.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이 폭넓은 관객층을 모으며 제대로 성공한 사례가 <마당을 나온 암탉> 이후 7~8년간 없지 않았나. 한국 애니메이션의 존재감이 점점 줄어드는 사이에 미국과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기대감은 상승해 갭이 더욱 커졌다. 디즈니를 선택하면 적어도 실패할 확률은 적다는 믿음, 그걸 깨부수기 힘들다고 생각하니 깊은 좌절감이 밀려왔다. 앞으로는 우리 브랜드의 가치와 이미지가 잊히지 않도록 최소 3년에 1편씩은 나오게 하자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상영 시간대에 대한 관객의 불만도 감지된다. 아침 상영이 많아서 애초에 노린 가족 관객을 잡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오성윤_ 유통구조 자체가 한국 애니메이션에 호의적이지 않다. <언더독>은 초등학생 이상의 아이들이 있는 가정에서 가족끼리 저녁에 외식하고 영화 볼 때 고를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하고 만든 영화다. 그런데 그 시간대에 우리 영화는 극장에서 자취를 감춘다.

-여러모로 <언더독>뿐 아니라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의 적신호로 느껴지는 결과다.

오성윤_ 비단 시장 상황만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적 가치의 한 부분이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늘은 <언더독>을 일단 TV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조언도 들었다. TV애니메이션으로 인지도를 쌓은 다음 극장으로 넘어가야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것이 시장의 세태니까 타당한 조언이고 고마운 이야기이긴 한데,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미학을 지켜온 우리로서는 괴롭다.

이춘백_ 지금 존재하는 수많은 대학의 애니메이션학과 졸업생을 수용할 산업적 구조가 그만큼 취약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동용·유아용 애니메이션 시장으로 가거나 독립적으로 자기 작품을 만들거나 두 갈래 길밖에 없는 거다.

-한국영화와의 경쟁에서는 배우가 마케팅 전면에 나서는 실사영화를 대적하기 힘들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배급, 마케팅 등의 산업적 문제든 요즘 관객의 소비 취향과 기호의 문제든 오돌또기가 추구해온 스타일에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문이지만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타협점을 찾을 것 같나.

오성윤_ 알게 모르게 벌써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절대 잃지 않아야 할 점은 우리 애니메이션이 다루는 이야기가 건강하고 미래적인 가치를 담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작품의 톤이 조금 바뀌더라도 이 부분만큼은 지킬 것이다.

이춘백_ 우리 주변 것을 소재로, 한국 사람의 정서에 호소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번 일을 경험 삼아 앞으로 지금보다 훨씬 밝은 연출을 지향하게 될 것 같기도 하다. 아트 스타일도 조금 더 가볍고 경쾌하게 하는 등 살아남으려면 대중이 원하는 방향을 고려해야 하겠지.

-남은 상영 기간 동안의 계획은.

오성윤_ 아직 종영하지 않았다. 장기상영의 방식도 있고, 북한 상영도 추진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꿈 같은 얘기지만 <언더독>이 남북 영화 교류의 시발점이 될 만한 좋은 영화라고 자부한다. 따뜻한 봄날에는 야외상영 기회도 모색하고 싶다. 돗자리 영화관 프로그램에서 상영한 적 있는데 가족이 다같이 앉아서 웃고 이야기하는 그 풍경이 우리 영화와 참 잘 어울리더라.

-<언더독2>의 제작 의지도 드러냈는데.

오성윤_ 뭉치 일행이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들개들을 만나면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그리고 싶고, 진정한 자연아로 거듭난다는 건 어떤 의미일지 고민해보고 싶은 게 많다. 우리 인간의 문제를 우화적으로 표현하면서 밝고 희망찬 미래의 이야기를 그릴 것이다. 작품에 대한 자부심도, 우리가 추구하는 영화적 가치도 여전하지만 어쨌든 제작과정의 미래는 험난해 보인다. 투자 문제가 여전히 가장 두렵고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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