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봅시다]
<크리드2>, <록키> 시리즈의 역사를 알고 보면 더 재밌다
2019-02-20
글 : 김현수
<크리드2> 전통의 재해석

<크리드2>(2018)는 <록키> 시리즈를 부활시켰다는 평가를 받은 전편 <크리드>(2015)에서 바로 이어지는 속편이다. 주연배우인 마이클 B. 조던과 테사 톰슨, 실베스터 스탤론 등이 전편에 이어 등장하는 가운데 원작 시리즈에서 록키의 중요한 적수였던 드라고 역의 돌프 룬드그렌도 등장해 지난 시리즈를 기억하는 오랜 영화 팬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1976년부터 이어져온 방대한 8편의 시리즈이기에 이야기를 모두 따라가려면 어느 정도의 역사 공부가 필요하다. 이번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부분만이라도 간략하게 알고 보면 좋을 것이다. 지난 시리즈와의 연결점을 짚어봤다.

‘크리드’는 누구인가

아폴로 크리드(칼 웨더스)라는 이름을 기억하는가. 그는 <록키> 시리즈에서 록키 발보아의 라이벌이면서 절친했던 유일한 캐릭터로 록키 발보아를 프로 무대에 데뷔시킨 인물이었다. 록키에게 메달을 넘겨주기 이전에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그는 록키에게 패하고 난 뒤 은퇴하지만 그와의 대결 이후 헛헛한 마음을 달래지 못해 방황한다. 그는 <록키4>(1985)에서 러시아 선수 이반 드라고(돌프 룬드그렌)와 접전을 벌이다 링 위에서 끝내 숨을 거둔다. 라이언 쿠글러 감독이 연출한 <크리드>는 자신이 아폴로 크리드의 혼외 자식이라는 걸 알게 된 아도니스(마이클 B. 조던)가 록키를 찾아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권투를 배우게 된다는 이야기를 다룬다. <크리드> 연작이 새로운 <록키> 시리즈의 부활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이유는 주인공이 투지를 불태우며 끝내 챔피언 벨트를 거머쥐는 스포츠 드라마의 공식을 잘 살려냈기 때문이다. 특히 주인공과 노련한 트레이너의 관계가 원작 시리즈의 관계를 새롭게 재해석함으로써 시리즈의 전통을 이어나간다. 한편, 이 시리즈가 오랫동안 주제로 다뤄왔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도 서브플롯으로 이어지는데, ‘크리드’는 바로 이러한 록키 인생의 모든 관계가 함축된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아폴로 크리드 역을 맡은 배우 칼 웨더스는 뉴올리언스 출신의 운동선수였다. 대학에서 풋볼 선수로 활동하다가 배우로 전향한 뒤 <록키> 시리즈 출연을 계기로 굵직한 역할을 맡으며 자리잡았다. <록키> 시리즈는 실베스터 스탤론과 칼 웨더스의 실제 성장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영화에서처럼 현실에서도 종종 잡음은 있다. 칼 웨더스는 <록키 발보아>(2006)의 플래시백 장면 출연을 제안받고는 자신을 다시 살려낼 것을 요청했지만, 실베스터 스탤론이 이를 거절하며 출연이 불발됐다.

‘크리드’ VS ‘드라고’

<크리드2>에서 가장 중요한 갈등은 크리드와 드라고의 대결이다. 전편에서 아도니스는 아버지의 성을 당당히 밝히면서 라이트헤비급 세계 챔피언 리키 콘란(토니 벨류)과의 대결에 임했다. 비록 판정패했지만 15회전 끝 무렵에는 그가 거의 이길 뻔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리고 결국 <크리드2>의 첫장면에서 아도니스는 헤비급 챔피언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그는 가슴속에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남아 있음을 느낀다. 이때 등장하는 이반 드라고와 그의 아들 빅터 드라고(플로리안 문테아누)는 아도니스의 권투를 향한 열정에 기름을 붓는다. 이반과 빅터 역시 자신들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트린 록키에 대한 복수심이 불타는 중이다. 아도니스와 빅터의 싸움은 1985년에 치렀던 아버지들의 싸움을 잇는 한편, 아도니스가 자신의 이름을 찾는 과정이었던 <크리드>의 고민에서 한발 더 나아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싸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묻는다. 진짜 자기 자신을 찾는 과정을 보여줬던 1편의 가치를 이어나가는 고민이 <크리드2>의 방향이다.

실제 선수들이 만들어낸 장면

빅터 드라고 역의 플로리안 문테아누(왼쪽)는 루마니아 출신의 아마추어 헤비급 선수다.

<록키> 시리즈는 생생한 권투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실제처럼 찍는 까닭에 실베스터 스탤론이 촬영장에서 다치고 위험한 상황에 처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특히 <록키4>(1985)의 마지막 대결 장면을 찍다가 돌프 룬드그렌의 실제 주먹에 가슴을 맞고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크리드> 연작 역시 경기의 리얼리티를 위해 실제 선수들이 대거 참여했는데 전편의 상대였던 리키 콘란 역은 영국의 WBC 크루즈웨이트 챔피언인 토니 벨류가 맡았고 헤비급 선수 대니 윌러 역은 미국의 라이트헤비급, 슈퍼미들급 선수인 안드레워드가 맡았다. 안드레 워드는 프로 복싱 코치인 패트리스 부기 해러스라는 인물과 마이클 B. 조던의 훈련 코치까지 도맡았다. <크리드2>에서 빅터 드라고 역의 플로리안 문테아누는 루마니아 출신으로 68승10패(6무승부)의 기록을 보유한 아마추어 헤비급 선수다. 과거 이반 드라고 역의 돌프 룬드그렌도 당시에는 스웨덴과 유럽 등에서 활동하는 가라테 챔피언이었다.

‘크리드’가 ‘크리드’와 싸운다

<크리드2>는 스포츠 드라마로의 카타르시스보다는 챔피언의 고통을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이는 영화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챔피언의 무모하리만치 과격한 도전 이후, 그에 뒤따르는 씁쓸한 패전 풍경 같은 것을 주목한다는 뜻이다. <록키> 시리즈가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90분 분량의 이야기에 선수의 도전과 좌절, 재기와 성공의 짜릿함이 모두 들어가 있기 때문인데 1편이 도전에 관한 테마를 다뤘다면 2편은 좌절에 관한 테마를 부각시킨다고 할 수 있다. 챔피언 자리에 오른 뒤 이어지는 아도니스의 고민을 <록키4>에서 그의 아버지인 아폴로 크리드가 드라고와 싸우기 직전에 했던 고민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람법이다. 결국 크리드가 크리드와 맞붙어 싸우는 이야기인 셈. 한편, <크리드2>는 아버지가 되는 아도니스의 개인사도 다루고 있는데 시리즈의 적통을 잇는 전략의 일환으로 록키가 애드리언과 결혼하면서 벌어지는 <록키2>의 플롯을 그대로 옮겨와 재해석했다.

음악도 세대교체

<크리드2>는 전설적인 <록키> 시리즈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새로운 트렌드에 발맞추기 위해 음악에도 큰 변화를 꾀했다. 작곡가 빌 콘티가 만든 주제곡 <Gonna Fly Now>와 <록키3>의 대표적인 삽입곡인 록밴드 서바이버의 <Eye of the Tiger> 같은 곡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스웨덴의 작곡가 루드비그 예란손이 이들 노래를 바탕으로 새로운 감각을 덧입혔다. 루드비그 예란손은 라이언 쿠글러 감독과 <크리드>를 비롯해 <블랙팬서>(2018)도 작업했고 최근에는 루벤 플라이셔 감독의 <베놈>(2018)에서 음악을 담당했다. 리한나, 릴 웨인, 시에라, 마일리 사이러스 등의 앨범을 프로듀싱했던 마이크 윌 메이드 잇 프로듀서가 함께 참여한 사운드트랙에는 페럴 윌리엄스, 켄드릭 라마, 본 이베어 등의 곡이 실려 있다. 영화에서 록키가 매 경기에 임하기 직전 무대에 등장할 때마다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노래도 흥미로웠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청력을 잃어가는 아도니스의 연인 비앙카 역의 테사 톰슨이 직접 부른 노래 <I Will Go to War>가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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