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기꾼인 오광(이철민)은 어느 시골 국도를 달리다가 사고를 낸다. 그런데 오광의 차에 치여 쓰러진 건 사람이 아니라 허수아비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시 차에 탄 오광은 무리한 재개발 사업으로 길거리에 나앉은 어느 가엾은 농부의 전화를 받고 화를 내다가 이번에는 진짜 사고를 낸다. 산비탈에 처박힌 차에서 의식을 잃은 그를 가까스로 구해준 사람들은 산골짜기에 사는 어느 이상한 가족이다. 평생 못된 짓만 하고 살아온 오광은 장씨(오광록)와 그의 아내 연희(김윤지), 그리고 아들 현석(신원호)과 딸 소희(배수경) 일가족 네 사람의 호의에 고마워하기는커녕 외려 조용했던 이 가족의 일상을 조금씩 망가뜨리기 시작한다. 누가 피해자고 누가 악인인지 구분이 모호한 상황에서 오광은 문득 자신이 어딘가에 갇혀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영화는 다른 국면으로 전환된다. 게다가 오광이 처음 마주친 허수아비의 실체와 ‘로드킬’이란 제목에 숨겨진 의미, 이상한 가족의 정체에 반전을 심어두었다. 하지만 주제와 구조 외에 상당한 요소가 불필요하게 전시되고 만다. 가령 조난에 가까운 위기 상황에서 오직 주변 여성의 육체에만 눈길을 두는 오광의 욕망이 느껴지는 장면 같은 것은 반드시 필요한 설정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영화의 완성도가 자극적인 것에 한눈팔다가 사고를 낸 오광의 마음과 닮아 있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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