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잘 사랑하고 있습니까? 브라이언 크라노 감독의 <퍼미션>은 안정적인 관계를 꿈꾸는, 혹은 이미 그런 관계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키스와 연애, 잠자리를 오직 한 사람과 지속해온 커플을 극의 중심에 놓는 이 영화는 사랑과 행복의 정의를 집요하게 탐구하고, 관계에 대한 사려 깊은 고찰을 담았다는 점에서 가볍지만은 않은 로맨스영화다. <퍼미션>의 제작과 주연을 맡은 이는 <아이언맨3>의 마야 한센,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의 빅키 역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영국 배우 레베카 홀이다. 최근 연출, 각본, 제작 등 영화인으로서 활동 반경을 넓혀가는 그에게 <퍼미션>은 가장 잘 알고 믿음직스러운 동료들과 협업해 완성한 의미 깊은 작품이다. 레베카 홀과의 서면 인터뷰 내용을 전한다.
-<퍼미션>에 출연한 계기는 뭔가. 이 영화의 어떤 점이 당신을 사로잡았나.
=영화의 각본·감독을 맡은 브라이언 크라노와 20년간 알고 지냈다. 그동안 그가 새로운 작업을 할 때마다 작품을 읽고 의견을 나눠왔고, 단편을 몇번 같이 작업하기도 했다. 브라이언이 처음 <퍼미션>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 ‘딱 내 영화다’ 싶었고, 아주 자연스럽게 함께하게 됐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모든 캐릭터를 진정성 있게 그려내는 것이었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당신이 연기하는 애나는 오랫동안 만난 연인과 결혼을 앞두고 자신의 마음을 시험하고 싶어 한다. 실제로 결혼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애나와 같은 감정을 느낀 적 있는가. 그녀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했나.
=요즘 세상이 아무리 자유로워졌다고 해도 사람들은 ‘당연히’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결혼하기 시작하는 시점이 있는데, 그때가 되면 자기가 결혼을 ‘못’ 했다고 생각하는 여성들도 생겨난다. 확실히 말하는데 그런 생각은 잘못됐고 부당하다. 모두가 누군가와 결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통계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결혼을 하는 이유는 누구나 해야 해서가 아니라 본인이 정말 원해서라는 걸 말이다. 애나는 바로 이런 시사점을 던지는 인물이다. 그녀는 결혼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한다. 사회적 기대 때문이 아니라 이 결혼이 자신을 위한 것인지, 스스로 결혼하기 원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애나는 주체적으로 자신의 성적 자유를 누리는 인물이다. 대중매체에서 이런 여성 캐릭터는 대개 악녀나 팜므파탈로 그려져왔는데 애나는 다르다.
=나는 이 영화가 애나를 이런 인물로 묘사한다는 점이 정말 좋았다. 악녀 혹은 성적 대상이 되는 ‘전형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구와 욕망이 있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보통 여성을 대담하게 그렸기 때문이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과 애나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음을 느낄 것이다.
-영화 제목처럼, 애나는 어떤 행동을 하기 전 상대방의 허락을 받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동시에 상대방이 자신에게도 그래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애나에게 ‘허락’(permission)이란 무엇인가. 이런 애나의 심리를 어떻게 이해했나.
=애나가 허락을 구한 것은 스스로를 알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아직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에서 덜 자란 성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성장영화라고 볼 수 있다. 애나가 주변 모두의 기대를 배반하더라도 자기 자신의 욕구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허락’해준다는 의미가 가장 클 것이다.
-롱테이크 촬영이 많은 현장이었다고 들었다. 상대배우와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했을 것 같다. 애나의 연인 윌을 연기한 댄 스티븐스와 절친한 사이로 알고 있다. 당신이 댄의 딸의 대모이기도 하다고 들었는데, 혹시 상대역으로 댄 스티븐스를 추천했나. 연인을 연기하기 위해 댄과 어떤 준비를 하고 무슨 이야기를 나눴나.
=사실 따로 준비한 것은 없다. 댄과 알고 지낸 지는 10년이 넘었다. 대학도 같이 다녔고. 그래서 그런지 거의 친형제 같다. 애나와 윌은 사귄 지 10년 됐고 어떻게 보면 연인보다는 남매 같다. 그런 면에서 댄과 함께 연기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당신의 남편인 배우 모건 스펙터도 이 영화에 출연한다. 실제 남편인 그와 부부를 연기할 생각은 없었는지. 모건이 게이 커플 중 한명을 연기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제작자로서 그의 캐스팅을 추천했나.
=사실 오래전에 오프브로드웨이의 한 연극에서 모건과 부부를 연기한 적 있다. 감독 브라이언과 그의 남편 데이비드(극중 모건의 파트너를 연기한)도 다들 가까운 친구 사이다. 브라이언이 처음부터 그를 염두에 두고 각본을 쓴 부분도 있다.
-<퍼미션>은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애나의 선택을 확신할 수 없는 영화다. 어떤 결말을 택할지에 대해 제작자로서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을 법하다.
=맞다.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결론은 영화의 결말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거였다. 많은 면에서 이 영화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에 역행한다. 보통의 해피엔딩이 아마 이 영화에서는 새드엔딩이었을 것이다.
-<퍼미션>은 당신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첫 작품이다. 프로듀서로서의 경험은 배우와 어떻게 다른가. 프로듀서로서 어떤 고민을 했는지도 궁금하다.
=프로듀서 업무는 배우와는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제작의 실제 과정에 대해 훨씬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내 뇌의 전혀 다른 부분을 사용해야 하는 힘든 일이지만 정말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다.
-올해 당신이 연출과 각본을 맡은 영화 <패싱>이 개봉한다. <퍼미션>으로 프로듀서에 도전했고, 이제는 연출, 각본까지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최근 몇년은 당신에게 배우 이외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을까.
=늘 연출을 하고 싶었다. 많은 작품에 배우로 출연할 수 있었던 점은 운이 좋았지만 그 덕에 연출에 대한 욕심은 잠시 접어두어야 했었다. 하지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우선순위를 두고 시간을 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올해 도전하게 됐다.
-<퍼미션>에 등장하는 모두가 행복을 원한다. 당신에게 있어서 행복의 조건은 무엇인가.
=행복의 유일한 조건은 억지로 행복을 좇지 않는 것이다. 삶의 유일한 진리는 늘 변한다는 것이다. 살다 보면 정말 행복한 순간들이 있지만 내가 원한다고 해서 그 행복이 늘 유지되지 않고 또 내게 그럴 권리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훨씬 행복할 수 있다.
-2019년의 계획은.
=일이 많지만 가족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