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바하> 장재현 감독, "정보는 짧게, 감정은 길게, 중요한 정보는 두번씩 반복했다"
2019-02-28
글 : 김성훈
사진 : 백종헌

*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전작 <검은 사제들>(2015) 같은 영화를 기대하고 <사바하>를 보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더라.” 장재현 감독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검은 사제들>이 구마(驅魔)의식이라는 낯선 소재를 흥미롭게 풀어내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 모두 잡은 만큼 자신의 두 번째 영화인 <사바하>에 거는 기대가 많은 현실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만큼 부담감도 크다는 사실을 넌지시 내비쳤다. 2월 20일 개봉하는 그의 두 번째 장편영화 <사바하>는 신흥종교의 비리를 파헤치는 종교문제연구소 소장 박 목사(이정재)가 요셉(이다윗), 해안스님(진선규)의 도움을 받아 사슴동산이라는 불교 계열의 신흥종교를 조사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미스터리 스릴러다. 미스터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서스펜스를 차곡차곡 구축하는 까닭에 관객을 붙드는 힘이 있다. 종교 ‘오덕’ 감독답게 이야기 곳곳에 불교, 무속신앙, 심지어 기독교 세계관까지 심어놓아 각 종교의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 연결하는 재미 또한 있다. 개봉을 앞두고 장재현 감독과 주고받은 대화를 전한다.

-언론 배급 시사회가 끝난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울컥했던데. (웃음)

=그날은 촬영이 끝난 뒤 오랜만에 배우들을 만난 자리이기도 했다. 후반작업이 오래 걸려 영화를 배우들에게 보여주지 못해 마음이 무거웠다. 배우들이 영화를 처음 보고 너무 좋아하고 고생했다고 격려해줘서 눈물이 났다. (웃음)

-시사 전날까지 걱정을 많이 했나 보다.

=잠도 못 잤다.

-후반작업은 왜 오래 걸렸나.

=편집이 여러 갈래였던 까닭에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이 많았다. 누구의 드라마에 더 중점을 둘지,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지, 관객에게 얼마나 친절하게 설명할지 등 고민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결국 시나리오에 답이 있더라. 또 우리영화는 사슴, 뱀, 코끼리, 쥐, 새, 지네 등 시각특수효과(VFX) 난이도가 높은 동물이 많아 작업 시간이 오래 걸렸다.

-촬영 초반, 진행했던 인터뷰에서 무기력한 신에 대한 원망을 다루어야겠다고 밝힌 바 있다.

=27살 때 비정부기구(NGO) 단체에 취업해 아프리카에 간 적 있다. 당시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 갈까 고민했는데 영화와 관련 없는 일을 하고 싶었다. NGO 단체에서 한 선교사와 친하게 지냈는데 그는 빈민을 구제하는 일을 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의 가족이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었고, 선교사는 무척 괴로워했다. 내가 믿는 신이 어떻게 내게 괴로움을 주는가. 유신론자인 나 또한 그때 신이 되게 원망스러웠다. 당시 느낀 감정을 정리해보니 우리는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데, 세상이 돌아가는 걸 보면 참 불합리하고 원망스러워서 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그때 느낀 감정을 박 목사 캐릭터에 반영하려고 했고, 이 영화를 통해 신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기독교 신자로 알고 있는데 불교 세계관을 다룬 계기가 뭔가.

=전작을 마무리할 때쯤 자연스럽게 무속신앙과 불교를 공부하게 됐다. 우리나라 무속신앙은 불교와 교집합이 많다. 불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고, 우리 주변에 절이 많아 일반인에게 친근한 종교다.

-이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이야기에서 출발한 작품인 것 같다. 하나는 헤롯왕이 아기 예수에게 왕위를 잃을까 두려워 예수 또래 아기들을 모두 살해하라고 지시한 마태복음의 아기 예수 탄생 설화(마태복음에 따르면 동방박사들은 헤롯왕에게 예수가 왕이 될 거라고 말한다. 헤롯왕은 왕위를 지키고 싶어 병사들에게 베들레헴과 그 근처의 아기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했다.-편집자)고, 또 하나는 불교의 사천왕인데.

=맞다. 헤롯왕이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 자신의 병사들을 보내지 않나. 병사들도 헤롯왕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그 병사들을 불교의 사천왕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사천왕은 고대 인도 종교에서 숭상한 귀신들의 왕이었으나 불교에 귀의한 뒤로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불교가 매력적인 건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다고 보는 세계관이다. 선과 악이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데 그게 되게 묘하다. 절대 악이 없는 까닭에 시나리오를 처음 쓸 때 힘들었다. 절대적으로 나쁜 존재가 이야기에 있으면 서사를 풀어내는 게 오히려 수월하다. 어쨌거나 선과 악은 계속 변한다는 사실을 이 이야기에 녹여내고 싶었다.

-불교에서 굳이 악을 찾자면 인간의 집착이나 욕망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게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더라.

=불교에서 악을 포식자라고 표현한다. 왜 포식자인가. 불교에서는 모든 현상이 다 원인이 있다고 본다.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다. 욕망이 생기면 집착이 생기고 그러면 생태계의 균형이 깨진다. 이 영화도 하나가 툭 튀어나오니 그걸 제어하기 위해 또 다른 하나가 튀어나오는 거다. 그래야 균형이 맞으니까.

-박 목사가 조사하는 신흥종교인 사슴동산은 무엇을 모티브로 구상했나.

=실제로 인도의 녹야원(鹿野苑, 사르나트)이 영화 속 사슴동산 같은 곳이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뒤 다섯 제자를 데리고 설법하고 경전을 만든 곳이다. 영화에서 동방교를 해체하고 경전을 쓰기 위해 잠적했던 김제석(정동환)처럼 말이다. 녹야원의 한자를 한글로 풀이하면 사슴동산이다. 사천왕을 사슴동산을 지키는 존재로 연결하고자 했다. 현재 우리나라에 사천왕을 모시는 절은 한 군데도 없다. 1940년대까지 한국에서 유일하게 사천왕을 모신 곳이 경주 총지사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그곳을 없앴다. 한국과 일본에서 사천왕은 호국을 상징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영화의 세계관을 구축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을 것 같다.

=트리트먼트를 쓰기까지 1년가량 걸렸고 시나리오는 한두달 만에 써나갔다. 시나리오 작업 방식에서 전작과 다른 건 등장인물별로 이야기를 다 썼다는 사실이다. 금화, 나한, 박 목사 등 주요 인물의 사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각각 다 쓴 뒤 전체 이야기에 적절하게 배분했다. 배분하는 과정이 좀 힘들었다.

-<사바하>에서 오컬트는 맥거핀일 뿐, 정작 이야기는 박 목사가 요셉, 해안스님 등 주변 인물의 도움을 받아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스릴러에 더 가깝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가 미스터리다. 극장에서 넋을 놓고 영화를 보는 순간이 이야기의 단서가 궁금할 때다. 집에 소장하는 책의 90%가 미스터리물이기도 하고.

-대사가 불교 세계관을 설명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사건을 푸는 단서 역할을 한다. 대사의 양이 많은 까닭에 대사를 지루하지 않게 전달하는 게 중요했을 것 같다.

=모든 신이 톱니바퀴처럼 연결돼 있어 대사 하나도 빠져선 안 됐다. 이야기 초·중반의 대사 대부분이 정보다. 정보를 설명하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재미있게 전달하려고 했다. 신마다 러닝타임을 정확하게 계산했고, 그 길이에 맞게 찍으려고 했다. 그래서 배우들에게 애드리브나 즉흥연기를 하는 대신 대사를 최대한 간결하고 정확하게 전달해달라고 주문했다. 특히 정보는 짧게, 감정은 길게 전달하려고 했고, 중요한 정보는 두번씩 반복해 강조했다. 중요한 정보를 한번만 알리면 관객이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으니까.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레퍼런스로 참조한 영화가 있나.

=종교라는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나 서사를 풀어가는 방식을 참고한 <다빈치 코드>(2006) 말고는 없다. 아,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본 영화 <스포트라이트>(2015)를 무척 좋아한다. 영화를 보고 시나리오를 필사했을 정도다. <스포트라이트>는 특정한 주인공 없이 여러 인물이 서사를 이끌어가는데도 이야기가 강렬하다. 되돌아보니 <스포트라이트>가 <사바하>의 구조를 구축하는 데 굉장히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정재 배우가 연기한 박 목사의 모델이 된 인물이 있나.

=실제로 종교 비리 문제를 파는 사람이 있다. 박 목사는 그를 모델로 만든 인물이다. 그는 되게 재미있는 사람이다. 적이 많아서 사무실 간판도 안 달고 조사해 후원받은 돈으로 생계를 해결하며, 종교에 굉장히 해박하다. 관객으로서 이정재씨가 <태양은 없다>(1998)나 <오! 브라더스>(2003)에서 보여준 날라리 같은 면모를 보고 싶었다.

-사천왕 같은 역할인 나한(박정민)은 되게 불쌍한 인간인데.

=비극적인 인간이다. 이 영화는 크게 두개의 세계관으로 구분해 표현했다. 나한쪽은 미술, 인물 등 여러 면에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드러내려고 했다. 낯선 배우들을 나한 주변에 배치한 것도 그런 전략이다. 반대로 박 목사쪽은 현실적으로 보여주려고 했고, 얼굴이 알려진 배우를 주로 캐스팅했다. (박)정민씨는 얼굴에 어두운 면모를 갖추고 있고, 배우로서 총알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현실적인 연기를 하는 배우라 함께 작업해보고 싶었다.

-정민씨에게 머리카락을 탈색하라고 주문한 이유가 뭔가.

=자신의 정체를 감추기 위한 위장으로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보통은 영화 속 캐릭터가 검은 모자를 쓰고 속내를 가리지 않나. 그건 가짜 같고.

-이재인이라는 신인배우가 금화와 그의 쌍둥이 자매인 ‘그것’을 동시에 연기했는데.

=원래는 금화와 ‘그것’을 각기 다른 배우에게 맡기려고 했다. ‘그것’ 역할을 금화보다 훨씬 더 마른 배우에게 맡기려고 했는데 그런 배우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이)재인씨가 1인2역을 하고 싶어 했다. 그 또한 의미가 있겠다 싶어 1인2역을 맡겼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한 얘기를 할 순 없지만, 동수 역할을 맡은 유지태 배우의 등장은 의외다.

=영화를 본 많은 사람이 유지태가 등장하는 순간을 반전의 의미로 받아들인 것 같은데 반전을 염두에 두고 그를 캐스팅하진 않았다. 자세하게 얘기할 수 없지만, 선과 악을 함께 가진 아우라, 남성성, 육체성을 보여줄 배우가 필요했다. 유지태씨에게 가장 잘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느낌 말이다.

-김제석의 손가락은 좌우 각각 6개씩 합쳐 12개인데 왜 한손의 손가락이 6개인가.

=그와 관련해 기독교에선 육손, 불교에선 12지라고 한다. 12지는 선이든 악이든 완결 혹은 완벽을 뜻한다. 그보다 중요한 건 김제석과 그처럼 한손의 손가락이 6개인 ‘그것’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운명 공동체임을 드러내고 싶었다.

-지난해 겨울 강원도에서 고생하며 촬영한 것으로 알고 있다. 로케이션 비중이 전체 이야기에서 얼마나 차지하나.

=전체의 80%가 로케이션 촬영이었다. 시나리오에 공간 대부분 ‘밖’이라고 쓰여 있다. 너무 추워서 촬영을 포기한 날도 많고, 촬영 초반에 감기 몸살에 걸려 링거를 맞기도 했다. 차가 얼음길에 미끄러져 접촉사고가 난 적도 더러 있었다.

-전작이 흥행한 까닭에 이번 영화에 부담감이 크겠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소포모어 징크스가 있었고, 소포모어 징크스에 관한 얘기도 많이 들었다. 나 자신을 냉정하게 생각했다. 보통 영화를 기획할 때 감독은 욕망이 크다. 그때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려 하지 말고,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자 했다. 감독이 힘이 생기면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드는 경향이 있지 않나. 그보다는 내 취향은 보편적이니 예고편을 보고 개봉날 극장에 가서 보고 싶은 영화인가, 그런 종류의 톤 앤드 매너인가, 밀도인가를 많이 고민한 것 같다. 또 하나는 절대로 규모가 큰 영화를 찍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 제작비가 수백억원에 달하는 영화는 찍지 않는다, 이 두 가지만 잘 지키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점에서 <사바하>는 보고 싶은 영화인가.

=그렇지 않으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영화도 종교를 소재로 한 이야기인가.

=아직 무슨 이야기를 할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성격이 밝아서 그런지 어두운 영화를 좋아하고, 그걸 극장에서 보고 싶다는 사실이다. 밑도 끝도 없는 해피엔딩 영화의 경우, 볼 때는 재미있는데 집에 갈 때 공허하다.

-개봉을 앞두고 흥행을 기도하러 교회에 다녀왔나.

=어릴 때부터 체화돼 매주 일요일 교회에 간다. 성실한 날라리 신자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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