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이 정치하는 건 봤어도, 정치인이 영화계에 입문하는 사례는 드물다. 이탈리아 정치인 발터 벨트로니야말로 이 드문 사례의 당사자다. 그는 이탈리아 정계에서 중도 좌파인 민주당의 대표, 로마 시장, 문화복지부 장관 등 다양한 직책을 역임했다. 그는 로마 시장으로 재직할 당시인 2006년 ‘로마국제영화제’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감독한 영화 <시간은 있다>(C’ è tempo)가 최근 이탈리아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40대의 비정규직 노동자 스테파노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는 어느 날 평생 소식도 몰랐던 아버지가 13살의 이복동생 조반니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형제는 이탈리아의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과 토스카나 지방으로 여정을 떠나며 서로를 알아간다. <시간은 있다>는 수많은 고전영화들에 대한 향수와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프랑수아 트뤼포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에서는 유럽의 두 거장에 대한 존경심을 느낄 수 있다. 벨트로니는 “나는 영화 상영 30분 전쯤 영화관에 도착한다. 영화관에서는 영화의 향기가 난다. 난 그 향이 좋다. 내가 영화를 하는 이유는 그 향기를 자주 접하고 싶고, 하나 이상의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화계에 뛰어든 정치인으로서 그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은 지대하지만, 이탈리아 언론과 평단은 정치인으로서의 유명세 이상으로 그가 영화 연출자로서 사랑받을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유보적인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