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은 2014년 4월 16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한 가족의 이야기다. 아들 수호(윤찬영)의 시간은 그날에 멈춰 있다. 해외 출장 중이었던 아빠 정일(설경구)은 아들을 먼 곳에서 떠나보내야 했고, 엄마 순남(전도연)은 어린 딸 예솔(김보민)과 단둘이서 슬픔을 견뎌야 했다.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수호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다. 수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수호가 없는 수호의 생일에 모여 각자의 기억을 꺼내놓는다. <생일>은 이종언 감독이 실제 안산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고 아이들의 생일을 치르며 느꼈던 마음을 조심스레 영화에 담은 작품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마음과 상황을 “있는 그대로” 담고 싶었다는 이종언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 편집을 마칠 때까지 유가족들과 소통하며 영화를 만들었다. 그 누구도 이 영화로 상처입지 않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감독의 진심에 감응한 전도연과 설경구가 출연을 결정했고, 영화는 다가오는 4월 3일 개봉한다.
-쉽지 않은 이야기로 데뷔작을 만들었다. 어떻게 <생일>의 이야기를 구상하고 쓰게 됐나.
=2015년부터 안산에 봉사를 하러 갔다. 유가족을 돕기 위한 여러 단체들이 안산에 있는데 그중에서 내가 간 곳은 ‘치유공간 이웃’이었다. 유가족들이 오셔서 밥도 먹고 뜨개질도 하고 같이 웃다가 울다가 하는 공간이다. 아이들의 생일이 다가오면 엄마들이 무척 힘들어했는데, 생일이 되면 그 아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생일 모임을 같이했다. 나는 상을 차리고 설거지도 하고 사진 찍는 일을 했다.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월호 이야기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가능했을 텐데, 유가족의 이야기를 하게 된 건 그때의 경험 때문인가.
=2015년쯤 되자 이 문제가 자꾸 정치적 이슈로 번졌다. 세월호 피로도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했고. 피로도 얘기가 나올수록 유가족들은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 목소리가 세상에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때 든 생각이, 지금의 이 시간을 단면으로 잘라서 그대로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거였다. 많은 분들이 진실을 밝히는 싸움을 하느라 무너진 마음을 돌보지 못하는 것 같았고, 그 마음에 좀더 주목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유가족들의 마음에 더 많이 주목해주길 바랐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려면 친근한 배우들과 함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만들기로 한 이후 416가족협의회와 소통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들었다.
=안산에서 만난 어머니, 아버지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있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더니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일상을 드러내주시면서 인터뷰에도 응해주셨다. 그래서 디테일한 글을 쓸 수 있었다.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프로덕션을 준비하는 과정에선 제작자, PD와 함께 416가족협의회를 찾아갔다. 영화에 대해 말씀드리니 도리어 힘내서 잘하라고 격려해주셨다. 감사했다. 최종 편집 전에 416가족협의회 분들과 관계자를 불러서 시사회를 가졌고, 영화를 본 유가족들이 “영화 잘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말해줬을 때, 이 작업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수호네 가족이 중심인 이야기다. 실제로 여러 사연을 가진 가족을 만났을 텐데 어떻게 정일과 순남, 딸 예솔과 아들 수호로 구성된 이 가족을 구상하게 됐나.
=2015년부터 여러 차례 아이들의 생일 모임에 참석했다. 생일이 다가오면 2~3주간 한 아이를 고스란히 만나기 위해 준비한다. 그렇게 여러 명의 생일을 맞이하면서 그 아이들이 저절로 내 안에 들어왔던 것 같다. 그래서 한 아이에 대한 이야기로 쓸 수 없었다. 수호라는 아이 안에는 여러 명의 아이가 들어 있다. 엄마와 아빠도 마찬가지다. 정일에겐 여러 아빠들의 모습이 들어 있고, 엄마 순남에게도 여러 엄마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현실을 외면하고 부정하며 근근이 버티고 섰던 순남도 생일을 통해 비로소 아들의 죽음을 대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부정과 외면이 아닌 인정과 극복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나.
=오히려 반대인 것 같다. 고통스러워하는 한 인간이 상처를 극복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다기보다 너무 큰 고통을 겪고 있는 한 인간이 그 아픔을 극복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그것을 보여주는 데 더 집중했다.
-수호네 가족뿐 아니라 옆집 사는 우찬이네 가족과 수호의 친구들까지, 주변 인물들의 말 못할 고통까지 다 담아낸다.
=단원고 근처에 연립이 많다. 그 연립에는 단원고에 다니는 학생이 여럿 살았을 것이다. 당연히 여러 집에서 울음이 터져나왔을 것이다. 당사자만의 고통이 아니라 동네 전체가 함께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이었다. 커다란 참사가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도 있는 그대로 담고 싶었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덜어내야 했던 주변 인물들이 많은데, 그럼에도 이들의 이야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영화에서 감정적으로 가장 고조되는 장면은 수호의 생일 장면이다. 20분 넘는 러닝타임으로 생일 장면을 담았다.
=보통 3시간 정도 생일 모임을 하는데, 처음 갔을 땐 너무 울어서 온 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가는 줄 알았다. 그 시간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시간이라 생각했고, 그때의 경험을 고스란히 담아서 보여주고 싶었다. 그릇으로 떠서 옮기듯 그대로 담아서, 영화를 보는 분들도 그 감정을 경험할 수 있길 바랐다. 역시나 가장 힘든 촬영이었다. 30분 정도 되는 분량을 카메라 3대를 놓고 롱테이크로 찍었다. 컷을 나누지 않고 한번에 쭉 가면서 배우들이 그 순간 느낀 실제 감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렇게 3일 정도 촬영했다.
-영화를 만들며 개인적인 해석이 개입되지 않도록 거리 두기에 신경을 썼다고 했는데.
=정확히 표현하자면, 한 걸음 물러서서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고 싶었다. 나의 해석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오해일 수도 있기 때문에 내 해석을 담는 것이 조심스러웠다고 할까. 작가는 세상에 나의 시선으로 말을 건네는 사람인데, <생일>에서 나의 시선을 찾는다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 아닐까 싶다. 있는 그대로를 보면 공감하지 않기가 어려울 테니.
-전도연, 설경구 배우와 함께할 수 있어 큰 힘이 됐겠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일이니 배우들도 출연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전도연 선배 입장에선 <밀양>(2007)에서도 비슷한 역을 연기한 적이 있어 한번 고사를 했다. 재차 부탁을 드렸고 결국 참여해주셨다. 설경구 선배도 다른 촬영을 하고 있을 때라 일정이 여의치 않았을 텐데 함께해주었다. 프로덕션 과정에서 느낀 감사함은 프리프로덕션 때의 감사함을 훌쩍 뛰어넘었다. 감탄과 감동의 연속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인물이 그대로 구현되는 걸 보면서 너무나 놀라웠다. 두 배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밀양>, <시>(2010)에서 연출부와 스크립터로 참여하며 이창동 감독의 현장에서 일했다. 이 영화의 제작자이자 스승이기도 한 이창동 감독은 영화에 대해 어떤 피드백을 주던가.
=작업하는 와중에는 초심을 잃지 말라는 말씀을 해주셨고, 영화를 보고 나서는 영화가 “소박하게 정직하게 잘 만들어진 거 같다”고 하셨다.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특별히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면.
=이 작품에 참여한 모든 분들이 고맙다. 제작자, 배우, 스탭 모두 용기가 필요한 작품이었을 것이다. 안산에 계신 유가족들과 그들을 도와주시는 활동가분들도 늘 존경한다. 내 소홀함을 받아준 가족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