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특집은 <컬러 퍼플>(1985)부터 <블랙팬서>(2018)까지, 1980년대 이후 블랙시네마 총정리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20편을 엄선하면서, 흑인 감독들이 연출한 영화에 주목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포함시키지 못해 아까운 영화들이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쿠엔틴 타란티노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2)와 <헤이트풀8>(2015)일 것이다. 그는 <저수지의 개들>(1992)로 데뷔한 이래 끊임없이 다채로운 장르의 여정을 이어왔다. 매번 신작을 내놓을 때마다 이전 영화로부터 멀리 달아나는 ‘탈주’의 태도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채워왔다. 그런 점에서 두 영화는 그가 두번 연이어 서부극을 만든 것이기에 의미심장하다. 실제로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종종 서부극에 느끼는 매혹에 대해 얘기한 적 있다. 단 ‘남북전쟁 이전 미국 남부의 노예사회’를 그려내고 싶어 했다. <장고: 분노의 추적자>가 그 시기에 딱 맞는 영화라면 <헤이트풀8>는 남북전쟁 직후를 배경으로 삼은 영화다. 말하자면 언제나 그 장르의 마침표를 찍겠다는 심정으로 영화를 만들던 그에게, <장고: 분노의 추적자>를 만들고서도 하고 싶은 얘기가 더 남았기에 <헤이트풀8>로 이어졌던 것일 테다. 그 중심에는 흑인 문제가 있다.
타란티노는 사실 그보다 앞서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을 작업하며 흑인 문제, 말하자면 그가 평소 좋아했던 블랙스플로이테이션 무비 이상으로 흑인 인권 문제까지 아우르는 진정한 흑인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의 세 번째 영화 <재키 브라운>(1997)은 과거 블랙스플로이테이션 무비의 단골 주인공이었던 팜 그리어가 주연을 맡긴 했지만, 그런 의미의 블랙시네마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면 그로부터 10년도 더 지나 만들어진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은 타란티노의 의도대로라면, 2차대전 당시 흑인 문제까지 담고자 했다. 애초 시나리오에는 미군 부대에서 갖은 수모와 핍박에 시달리던 흑인군인들에 대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완성된 영화에는 독일군 한스 란다(크리스토프 발츠)가 극장에 흑인 영사기사 마르셸(재키 이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극장에 흑인 직원이 있다던데, 영사기는 흑인이 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대사 정도가 남았다(그 흑인 직원 마르셸 또한 타란티노가 새뮤얼 L. 잭슨에게 특별출연을 부탁했는데, 분량이나 스케줄 문제로 최종적으로 바뀌게 된 역할이다). 그런 시각으로 보자면,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장고: 분노의 추적자> <헤이트풀8>를 남북전쟁 전과 후, 그리고 이후의 2차대전까지 이어지는 ‘타란티노의 블랙시네마 3부작’이라 불러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장고 캐릭터를 흑인(제이미 폭스)으로 탈바꿈시켜 KKK단과 노예제도를 비웃었던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 이어 북과 남, 흑과 백의 대립이 팽팽한 <헤이트풀8>에서는 남북전쟁 당시의 남부군 백인 장군이었던 샌디 스미더스(브루스 던)를 등장시켜 마커스 워렌(새뮤얼 L. 잭슨)에게 한없이 농락당하도록 만든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압도적인 쾌감을 안기는 ‘말발’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과거 시나리오작가 시절의 타란티노가 썼던 <트루 로맨스>(1993)를 떠올리게도 한다. 클리포드(데니스 호퍼)가 마피아 보스 빈센조(크리스토퍼 워컨)에게 ‘시칠리아인의 조상은 흑인’이라며 유려한 말발로 자극하던 명장면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흑인 얘기였다. 특집에 빠진 또 다른 영화들의 추억을 저마다 떠올려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