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미국 뉴 퀴어 시네마를 대표하던 그렉 아라키 감독이 첫 TV시리즈를 선보였다. 케이블 채널 <스타스>에서 방영하는 <나우 아포칼립스>가 그 작품이다. <나우 아포칼립스>는 LA를 배경으로 20대 젊은이들의 로맨스를 다룬다. 율리시스(에반 조지아)와 그의 친구인 칼리(켈리 베르글룬드), 포드(보 머초프), 세버린(록산느 메스퀴다)이 주인공으로 사랑과 성 그리고 명성을 좇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섹스 앤 더 시티>풍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1990년대 언더그라운드, 퀴어 문화의 대표 주자였던 그렉 아라키 고유의 세계관은 <나우 아포칼립스>에서도 여전하다. 그는 “퀴어 버전의 <섹스 앤 더 시티>가 외계인이 등장하는 <트윈 픽스>를 만났을 때”라는 말로 이 작품을 설명한다.
미국 하위문화의 저변을 넓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창작자가 TV로 진출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2014년작 <버진 스노우>를 마지막으로 장편영화를 연출하지 않은 아라키 감독은 지난 몇년간 <리버데일> <루머의 루머의 루머> <아메리칸 크라임> <헤더스> 등 TV시리즈의 일부 에피소드를 연출했다. 아라키 감독에 따르면 그는 이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크레이지 그렉 아라키 월드’를 담은 자신만의 시리즈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나우 아포칼립스>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도움을 받아 스타스 채널에서 제작할 수 있었으며, 시리즈의 각본을 맡은 칼리 시오르티노가 작가인 동시에 섹스와 섹슈얼리티를 이슈로 다루는 웹사이트 ‘슬럿에버’를 개설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