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11:11
2019-04-17
글 : 김혜리

*<어스>의 결정적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스>

전작 <겟 아웃>의 프롤로그에서 납치의 배경음악으로 <도망가 토끼야, 도망가>(Run Rabbit Run)를 사용한 조던 필은 <어스>에 무수한 살아 있는 토끼와 토끼 인형, 토끼 프린트를 등장시켜 본인의 토끼 공포증을 널리 알렸다. <어스>의 모든 요소가 그렇듯 영화 속 토끼의 의미는 하나가 아니다. 토끼는 인간 복제 음모 초기에 실험으로 희생된 동물이며 프로젝트가 실패한 이후 지하에 방치된 복제인간들의 은유이자 유일한 식량이다. 어린 애들레이드(매디슨 커리)가 미지의 지하세계와 조우하는 경험은, 토끼의 인도로 출발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여정에 빗댈 만하다.<도니 다코>(2001)와 <월레스 & 그로밋: 거대토끼의 저주>(2005)를 잇는 스크린의 불길한 토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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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필을 단박에 중요한 차세대 미국 감독으로 부상시킨 <겟 아웃>(2019)은 인종주의가 반사회적 혐오로, 적어도 쿨하지 못한 구습으로 공인된 이후, 미국의 중산층 백인이 흑인 동료 시민에게 품는 이중적 의식을 파고든 신체 강탈 스릴러다. 뭐, 골든글로브상은 이 영화를 코미디로 분류하고, 혹자는 다큐멘터리라고 여겼지만. <어스>의 장르는 누가 봐도 호러이고 이번에 조던 필이 다루는 일차적 이슈는 인종이 아니라 계급이다. 유산자와 무산자, 특권을 누리는 시민과 애초에 계층 이동의 가능성이 봉쇄된 언더클래스의 관계다. <어스>는 지상에 사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거나 우리가 보려 하지 않는 박탈당한 사람들을 ‘테서드’(the tethered)라고 부른다. 이들은 시민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는 권력에 의해 창조된 클론이다. 말하자면 부두교의 인형과 비슷하다. 영혼까지 복제하지 못하고 실험이 실패로 돌아가자, 테서드들은 미국 전역에 존재하는 지하 공간(폐쇄된 지하철과 폐광 등등)에 버려진다. 지상의 본체와 그들의 연계(tethering)는 불완전하게 작동하여, 테서드는 자기와 묶여 있는 지상인의 행동을 의지와 무관하게 열등한 판본으로 모방하며 연명한다. 지하인의 삶은 물질적 결핍에 더해, 존재의 목적과 방향성, 일체의 의미 있는 상호관계를 박탈당한 채 목숨을 부지하기에 참혹하다. 관객에 따라서는 테서드를, 우리가 의식의 지하에 가둬놓은 추하고 서툰 자아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웹 세상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심지어 테서드들의 옷 색깔을 근거로 트럼프를 선출해 역공을 날린 공화당 지지자로 보는 시각까지 존재한다. 어쨌거나 주인공 애들레이드(루피타 니옹고)의 테서드인 레드(루피타 니옹고)가 지하인들을 규합해 혁명을 꾀하면서 조던 필 스타일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시작된다. 게이브(윈스턴 듀크)와 결혼해 조라(샤하디 라이트 조셉)와 제이슨(에반 알렉스) 남매를 둔 애들레이드는, 30여년 전 어느 밤 샌타크루즈 유원지에서 길을 잃었다가 거울 집에서 레드를 마주친 적이 있지만 기억은 희미해졌다. 사고 직후 앓았던 실어증은 전문가 조언에 따라 무용을 배우면서 치료됐고 현재 그가 누리는 중산층의 생활은 평온하다. 부모에게 상속받은 샌타크루즈 인근 집으로 휴가를 떠나올 때까지는. 백인 친구 조시(팀 헤이덱커)와 키티(엘리자베스 모스) 가족과 해변 나들이를 다녀온 애들레이드 가족은 그날 밤 레드가 이끄는 도플갱어 4인 가족의 방문을 받고 상견례는 영혼을 공유한 한쌍의 육체 중 하나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투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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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의 M. 나이트 샤말란급 반전은 1986년 샌타크루즈 유원지에서 애들레이드는 잠시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지상으로 올라온 레드에게 납치됐고, 이후 둘은 맞바뀐 위치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과연 이 반전이 영화에 꼭 필요할까 하는 의아함은 이내 그것이야말로 조던 필 감독의 가장 긴요한 정치적 코멘트라는 깨달음으로 바뀐다. 애들레이드가 된 레드는 테서드 가운데 유일하게 지상 사회가 허락하는 교육과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인간이다(지하의 사람들이 지상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 결계는 어처구니없게도 두 세계 사이의 하행 에스컬레이터다. 레드 외에 누구도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계단을 거슬러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즉, 30년 후 재회한 애들레이드와 레드는 동일 유전자를 가진 쌍둥이가 양극단의 환경에서 성장한 결과의 예시다. 복제인간 레드는 이를테면 애들레이드보다 불완전한 아이고 지상으로 나온 직후 언어장애를 겪지만 환경은 둘의 발달을 역전시킨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동등한 능력을 타고나지 않지만 자질은 후천적 조건에 따라 현저히 강화되거나 약화된다. 기본적 복지에서 소외된 집단의 사람들에게 동등한 또는 핸디캡을 보완하는 자원과 기회를 제공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물론 레드(원래 애들레이드)는 애초에 지상인으로 태어났기에 테서드들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는 반박이 가능하다. 그러나 설령 종족, 성별, 성 정체성에 따라 특정 능력이 높고 낮다는 가설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 우열은 오직 평균치로만 존재하기에 개인의 소속 집단을 기준으로 한 불평등한 처우는 정당화될 수 없다. <어스>는 애들레이드의 흑인 중산층 가족을 통해 일반적 죄책감을 일깨운다. 우리가 모순과 불평등이 관철되는 사회에서 운 좋은 그룹에 속한다면 기울어진 시스템의 발명에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모순을 공고히 하는 데 일조하고 있으며, 사회 전체의 인적자원을 개발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에게 해로운 행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처음 레드의 가족이 현관 앞에 손을 잡고 나타났을 때 그들은 영락없는 괴물이며 문명의 적대자로 보인다. 그러나 자신을 특권층이라고 여겨본 적 없는 애들레이드의 가족은, 아웃사이더들이 침입하자 소유한 것을 지키기 위해 빠른 속도로 적극적 킬러로 변모한다.

막판 레드의 일장 설명을 제외하면, 조던 필 감독은 스토리를 최대한 이미지와 사운드로 전달한다. 도플갱어들끼리 사생결단을 벌이는 두집은, 심사숙고된 블로킹과 촬영에 의해 미러 하우스로 변한다. 레드의 가족에게서 보듯, 테서드들은 단순히 지상인의 공포스러운 닮은꼴 이상이다. 게이브의 그림자 아브라함은 눈이 나쁘지만 게이브에게 빼앗기 전까지 안경 없이 살며 불편을 겪었다. 아직 어린 탓인지 막내 제이슨의 움직임에 좌우되는 지하 소년 플루토는 얼굴에 심한 화상 자국이 있다. 영혼이 같은 제이슨과 플루토는 둘 다 불장난을 좋아하지만, 다치고 흉터가 생기는 것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플루토뿐이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 레드가 지하 세계로 납치되기 전 마주친 홈리스 남자가 들고 있던 예레미야서 11장 11절의 내용이다(대칭(duality)에 집착하는 영화답다). 동료 테서드들과 달리 자유의지와 창의력을 소유한 소녀는 자신을 신의 대행자라고 믿는다. 현실적이라서 더 우울한 <어스>의 설정은, 레드가 일으킨 혁명의 표적이 화근인 권력이 아니라 박탈감을 준 닮은꼴 인간들이라는 점이다. 레드는 30년 전 지상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본 사건인 1986년의 자선 이벤트 ‘핸드 어크로스 아메리카’를 본떠 테서드의 존재를 알리는 시위를 실행한다. 하지만 레이건 시대 자선 열풍의 일환이었던 ‘핸드 어크로스 아메리카’는 빈곤의 정책적 해결을 회피하고 10달러로 중산층의 가책을 달랜 이벤트로 뒷날 기록됐다. 애들레이드의 남편 게이브는 붉은 띠를 이룬 테서드들의 행렬을 보며 무심코 말한다. “후진 퍼포먼스 아트야 뭐야.” 슬프게도 레드는 미처 몰랐을 것이다.

<퍼스트 리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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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칼

<퍼스트 리폼드>에는 단 하나의 환상 시퀀스가 있다. 신실한 목회자이나 깊은 회의에 빠진 톨러 목사(에단 호크)에게 환경운동가 남편을 자살로 잃은 신도 메리(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찾아온다. 둘은 남편이 죽기 전 상담 과정에서 가까워졌다. 메리는 생전의 남편과 나눈 교감의 행위를 추억하고 톨러는 다시 해보겠느냐고 제안한다. 부부가 ‘마법의 미스터리 여행’이라고 불렀던 행동은, 옷을 입은 채 두 사람이 가능한 한 신체의 모든 부위를 맞대고 눈동자의 움직임과 호흡까지 일치시키는 제의다. 자칫하면 에로틱한 접촉이 될 법한 이 몸과 몸의 ‘키스’는 신이 주신 자연과 인간이 오염시킨 폐허 위로 둘의 영혼이 유영하는 판타지로 넘어간다. 이 갑작스러운 이행을 정당화하는 것은, 현실이 끝나고 초월이 시작되는 순간의 표현이다. 포개 누운 메리와 톨러의 실루엣을 관객이 충분히 눈으로 더듬었을 즈음, 메리의 머리칼이 스르륵 흘러내려 드리운다. 머리칼의 주렴이 만들어낸 내밀한 공간은 그들을 둘러싼 방을 지워버리고 우주로 통하는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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