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의 특별한 형제> 육상효 감독, "지금의 청년들에게 영화의 메시지가 전해지면 좋겠다"
2019-05-09
글 : 이화정
사진 : 최성열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찾고 마는 휴먼 코미디 장르의 내비게이션. 육상효 감독은 데뷔작 <아이언 팜>(2002) 이후 <달마야, 서울 가자>(2004), <방가? 방가!>(2010),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2012)을 거치며 지난 20여년간 여타 장르의 트렌드에 편승하지 않은 채 웃음 하나만을 좇아왔다. 이주노동자, 운동권 학생 등 무겁고 민감한 소재에 비하의 시선 없이 웃음을 접목시킬 수 있을까 하는 우려 섞인 시선도 적지 않았다. 지체장애와 발달장애를 가진 두 사람이, 형제처럼, 아니 형제보다 더 끈끈하게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이야기 <나의 특별한 형제>도 그 질문 안에서 찾아낸 해답 같은 영화다. 섣부른 동정의 시선을 걷어내고, 같이 잘 살자는 태도가 만들어낸 매 장면 덕분에 이번에도 그가 전해준 코미디는 건강하고 기분 좋다. 전작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 이후 오랜만의 신작, 익숙한 코믹물로 돌아온 육상효 감독을 만났다.

-5월 베트남 개봉을 앞두고 호찌민에서 열린 개봉 전 프리미어 행사 반응이 뜨거웠다.

=베트남에서 정식으로 영화를 수입했다. 1박2일을 꽉 채워 행사를 하고 왔는데, 현지에서는 하노이국제영화제만큼 큰 행사였다고 하더라. 거기도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 인기가 상당한데, 우리 행사로 상영관을 비웠으니 엄청난 투자를 한 거다. 가서 보니 이광수 배우의 ‘아시아 프린스’라는 별명이 실감나더라. (이)광수씨가 가니 지구가 떠나갈 정도였다. ‘로다주’가 아니라 ‘이다주’였다. 옆에 있다가 나도 덩달아 큰 환대를 받았다. (웃음)

-1996년 장애인 공동체 ‘예수의 집’에서 만나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지체장애, 발달장애인 최승규, 박종렬씨의 형제애를 바탕으로 했다.

=하정완 대표(공동 제작사인 조이래빗 대표)가 방송에 소개된 사연을 보고 그분들을 만났다더라. 연출 제안을 받았는데, 자꾸 생각났다. ‘한번 해봐야겠다’, ‘장애인에 대한 코미디를 만들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지만 보람 있는 일이 될 거라 여겼다.

-<방가? 방가!>가 떠올랐다. 이주노동자가 겪는 현실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바탕으로, 그걸 코믹하게 연출한 첫 시도였다. 장애인을 소재로 코미디영화를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의 우려가 포함된다.

=<방가? 방가!>에서 취업을 위해 부탄 이주노동자 행세를 하는 방태식(김인권)의 행동을 그리면서 코믹한 장면이 연출됐다. 그때도 생각해보면 다들 하지 말라고 했었다. ‘욕먹을 게 분명하다’, ‘대상을 희화화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도 많았다. 그런데 나는 그런 유머가 내가 해야 하는 유머라고 생각했다. 내가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다면 희화화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지금껏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고 이번 영화도 그런 마음으로 찍었다. 패럴리 형제의 자극적인 유머스타일보다는 리처드 커티스의 상대적으로 잔잔한 웃음기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의 대표작 <노팅힐>(1999)을 보면 소수자나 약자가 꼭 등장한다. 윌리엄(휴 그랜트)의 친구가 장애인이고, 흑인과 성소수자도 나온다. 좋은 방향을 가지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면 인물을 희화화하거나 왜곡하는 것과는 다른 유머가 나온다고 본다.

-실화에서 극화된 건 어느 정도고 어떤 부분인가.

=전반부의 캐릭터만 실제에서 따왔다. 세하와 동구는 꼭 붙어 있을 사람이라 이 둘을 떨어뜨려놓는 게 가장 중요한 갈등이라고 보고, 사건을 만들었다.

-‘발로 뛰는 시나리오’는 감독만의 연출 방식이다. <방가? 방가!> 때는 가구공장에서 직접 일하기도 했는데, 이번엔 어떤 과정으로 시나리오를 썼나.

=마찬가지였다. 만나보니 세하의 모델인 (최)승규씨가 술을 너무 좋아해서(물론 육상효 감독도 술을 많이 좋아한다.-편집자) 함께 마시며 대화를 많이 했다. 그는 전신마비 장애가 있지만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고 똑똑해서 배울 점이 많다. 나한테 시나리오는 이렇게 써라 충고도 많이 해줬다. 같이 술 먹고, 차 마시면서 스토리를 짰다. 휠체어 전문가도 만났는데, 거기서 휠체어 농구단 친구들도 알게 됐다. 휠체어 출입이 편한 그들만의 단골 삼겹살집도 많이 갔다. 낙천적이고 재기발랄한 성격들이라 금세 어우러질 수 있었다.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구체적으로 반영된 것들도 있었을 테고, 함께 생활하다 영화에 반영된 방향성도 생겼을 것 같다.

=홀트아동복지회 취재도 했고, 미술적인 부분도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다. 누군가가 가구를 박스로 쓰는 걸 보고 동구에게 적용하기도 했고, 욕창이 생기지 않게 돌봐주는 것도, 동구가 세하를 돌보는 장면에서 중요하게 썼다. 시나리오를 오랜 기간 아주 미세하게, 끊임없이 수정하다보니 정확하게 어느 장면에서 반영이 되고 변화했다고는 못하겠지만, 이분들을 만나면서, 장애를 극복의 관점으로 그리면 안 되겠다는 걸 염두에 두게 됐다. 어느 순간이 되자, 이분들이 휠체어에 대해 농담하는 것도 유머로 써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분들은 장애가 자기 정체성이라, 장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부끄럼이 없다. 장애를 세상 뒤로, 시설로, 골방으로 보내면 죽는다, 자꾸 세상 앞으로, 일상생활로 내보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 영화가 그분들을 세상에 내보내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만들었다.

-스포츠지 연예부 기자로 활동하다가 시나리오작가, 감독으로 영역을 넓혀왔다. 대상을 직접 접하고 글감을 얻어 만드는 취재방식은 아무래도 기자 출신에서 비롯된 게 있을 것 같다.

=1990년부터 3년 반 동안 기자로 일했는데 그때의 영향이 확실히 크다. 당시 버릇이 남아 있어 시나리오 쓸 때도 처음부터 누군가를 취재하는 게 낯설지 않았다. 내가 그분들께 해를 끼치지 않으면, 그분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해줄 거라는 생각으로 다가갔다. 지금도 영화감독하려는 이들이 충고를 구하면 취재를 다니라는 말을 많이 한다. 직접적으로 무엇을 얻는다기보다 내가 이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영향을 준다.

-세하는 미현(이솜) 캐릭터에 대해 ‘그녀와 같이 있는 동안 장애인이라는 걸 잊었다’라는 말로 감사를 전한다. 이 영화가 균형감 있게 나온 이유를 찾자면, 장애인 묘사에 앞서 비장애인도 그들과 동등하게 바라봤다는 데 있다.

=승규씨가 영화를 보고 그러더라. ‘비장애인에 대한 왜곡도 없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없는 영화’라고. 우리가 장애인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들은 비장애인을 바라보니 비장애인의 태도를 주시하게 된다. 극화를 하다보면 리얼한 상황을 과장하게 된다. 장애인이 카페에 들어온다고 치자. 가장 상식적인 리액션은 잠깐 보고 못 본 척하거나 자연스럽게 행동하려고 애쓰는 거다. 그런데 그 감정을 강하게 하려면 그런 리얼리티를 왜곡해서 대놓고 싫은 티를 내는 거다. 이런 극단적인 반응은 장애, 비장애인의 묘사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활용된다. 못마땅한 누군가에게 화를 낼 수도 있겠지만, 그걸 더 포악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거다. 리얼리티를 왜곡하는 장면들이 많은 드라마,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이런 표현을 없애려고 계속 노력했다.

-같은 맥락에서, 소외된 이들을 대상으로 한 감동 서사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들을 착하게 그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세하는 그 부분에서 자유롭다. 적당히 못됐기도 하고 꼬여 있기도 하고, 그 괴팍함을 보여주는 데 인색하지 않다.

=장애인도 악할 수 있다. 장애인도 나쁠 권리가 있지 않나. 장애를 극복의 관점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지금보다 더 도발적인 캐릭터로 갈 생각도 했는데, 심재명 대표(공동 제작사 명필름 대표)가 좀 자제시켰다. (웃음) 대중이 생각하는 인식에서 너무 멀어지면 안 된다고 봤고, 지금 같은 세하의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미현은 청년실업자고 세하, 동구 형제와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이 영화의 메시지를 한마디로 표현할 때 ‘같이 좀 살자’라는 말이 떠올랐는데, 그 톤을 잡아준 캐릭터가 미현이다.

=지인이 그러더라. 이 영화에 시대정신이 있다고. ‘격려는 고맙지만, 그 정도 의미가 있지는 않은데요’라고 했더니 ‘약자의 이야기를 하는 게 결국 시대적인 것’이라고 정의해주더라. 그 말이 참 고맙게 와닿았다. 강한 존재라면, 신 같은 존재라면 혼자 살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 도와야 한다. 그래야 죽지 않고 버텨낼 수 있다. 자주 희망을 잃는 지금의 청년들에게 이 메시지가 전해지면 좋겠다.

-캐릭터가 가진 물리적 장애를 보여주는 표현 방식에 대한 고민도 필요했다.

=이상한 동작으로 과장하는 건 절대 하지 말자, 연기로만 보여주자 했고 배우들이 나의 의도를 잘 받아줬다. 각각의 동작 설정보다 어려웠던 건 이 둘을 한 프레임에 담는 일이었다. 한쪽은 휠체어에 앉아 있고 한쪽은 서 있으니 투숏을 담기가 어렵더라. 투숏은 롱숏일 때만 찍을 수 있었다. 휠체어에 앉은 사람의 시선을 많이 생각했는데, 그걸 많이 못 살린 건 아쉽다.

-일종의 ‘버디무비’라 신하균과 이광수 배우 둘의 호흡이 중요했다. 두 배우가 상당히 대조적인 무기를 쓰는 스타일의 배우라 그 차이를 보는 재미도 컸다.

=세하는 앉아서 목만 움직여 모든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역이라 연기 능력이 좋은 배우가 해야 한다는 게 절대 조건이었다. 대사는 많은데 몸을 안 움직이는 연기인데, 목울대의 떨림, 고개 돌리는 각도 하나도 신경을 써야 했다. 하균씨는 시나리오에 있는 글자를 한자도, 조사까지도 안 바꾸고 갈 정도로 정확한 연기를 하는 스타일이라 세하의 미세한 움직임도 흐트러짐 없이 표현해냈다. 그야말로 출중한 배우다. 광수씨 역시 이번에 같이하면서 감동을 받았다. 좋은 눈빛을 가졌고, 생각을 많이 해온다. 공원에서 엄마를 만나는 장면에서는, 찍으면서 나도 눈물이 날 정도로 감정 표현을 잘하더라. 배우들은 전문가다. 팔을 높여라, 팔을 낮춰라, 동작을 어떻게 해라 말할 필요가 없다. 서로 장면 해석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 행동을 한다. 힘든 촬영도 많았지만, 이 배우들이 또 어떤 걸 가져올까 기대가 돼서 매일매일 촬영이 즐거웠다.

-전작들을 거쳐 <나의 특별한 형제>에 이르고 보니, 감독이 일관되게 만드는 휴먼 코미디 장르가 감독 본인의 습성과 꼭 닮아 있고, 쌍방향으로 영향을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이 ‘넌 왜 이런 영화만 만드냐, <공작>(2018) 같은 멋진 영화나 블록버스터영화를 만들지’ 하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아, 이게 내 본성이구나’ 싶더라. 본성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잖나. 전략적인 위치나 한국 영화시장의 지도에서 차지하는 자리 이런 게 아니라, 이런 영화를 하려고 오랫동안 영화를 했구나 싶었다.

-운동은 아니지만, 분명 그간의 작업을 통해 영화가 가진 힘, 메시지 전달력을 체감해왔을 것 같다.

=<방가? 방가!> 끝나고 나서 이주노동자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궁금해하던 차에, 감사 편지를 많이 받았다. 이 영화를 보고 지하철에서 외국인을 보면 친근하게, 거부 안 하는 모습 정도만이라도 된다면 그게 내가 이 작품을 만든 보람이겠구나, 싶었다. 대학 때도 학생운동 최전선에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운동하는 친구들을 웃겨주거나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편이었다. 이번에도 내가 장애인의 인권 개선을 외치는 건 아니라도, 정서적인 차원에서 비장애인들에게 친근하게 이분들의 생활을 보여주고 싶었다. 모든 감독은 딱, 자신의 본성만큼 영화를 만드는 것 같다.

-한동안 부진했던 코미디영화들이 최근 극장가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초지일관 코미디 장르를 고집해왔는데, 최근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올해 초 <극한직업>(2018)은 내게 숙제를 많이 준 영화다. 관객의 폭발적인 반응을 보면서 어떤 지점에서, 왜 그렇게 열광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 영화가 장면별로 유머가 강하다면, 나는 전체 이야기에 대한 애착이 강한 것 같다. 스토리를 바탕으로, 그 구조 안에서 유머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코미디는 아니구나 싶었다. (웃음) 다음 영화도 또 비슷한 영화를 만들지 않을까. 현실을 잘 순화해서 사람들이 꺼리지 않도록 잘 전달하는 것, 그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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