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기묘한 모험
2019-05-22
글 : 송경원

한때 천재로 불렸던 광고감독 토비(애덤 드라이버)는 스페인의 작은 마을에서 광고를 찍다가 난관에 부딪친다. 그 와중에 이상에 들떴던 젊은 시절 자신이 만든 작품을 다시 본 토비는 열정 넘치던 그 시절을 추억하며 과거의 촬영장소를 찾아간다. 그리고 자신을 돈키호테라고 믿은 구둣방 할아버지(조너선 프라이스)를 만나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기묘한 모험 속으로 빠져든다. 영화보다 영화적인.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테리 길리엄의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를 수식하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을 찾긴 어려울 것 같다. 1989년 제작이 시작된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는 장장 30여년의 세월을 견뎌내며 우여곡절 끝에 완성되었다. 지난한 과정을 겪으며 테리 길리엄 필생의 프로젝트가 되어버린 이 영화는 제작과정 자체가 테리 길리엄이라는 영화계 돈키호테의 궤적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는 시대착오적인 인물의 행보를 통해 당대 스페인의 부조리와 분열, 기사도라는 저물어가는 낭만을 풍자하는 이야기다. 테리 길리엄은 스스로 돈키호테가 되어 시네마의 끝자락에서 영화산업이라는 거대한 풍차에 돌진하는 애달픈 만용을 과시한다. 한물간 CF감독이 초현실적인 행보에 휘말리는 과정은 현실과 이야기, 사실과 환상, 찍힌 것과 재현된 것의 모든 경계를 부수며 나아간다. 냉정하게 거리를 두고자 했던 토비가 ‘돈키호테’라는 상황 속으로 쓸려들어가는 흐름은 관객이 이 영화에 휩쓸려가는 과정과 닮았다. 스타일적으론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브라질>(1985), 수많은 마니아를 양산한 <몬티 파이튼의 성배>(1975)와 동어반복적인 부분도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망상’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테리 길리엄의 세계관을 집대성한 마침표라 할 만하다. 반골 기질의 자유로운 몽상가는 세월의 풍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자신의 길을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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