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은 ‘말의 영화’다.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집과 카페, 펍과 호텔, 회사와 포럼장 등 도시의 다양한 장소에서 펼쳐지는 지식인들의 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면 대 면의 만남이 사라지고 모두가 디지털 기기를 들여다보는 시대, 프랑스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세계의 가장 유서 깊은 문화인 책과 출판업에 대한 토론의 영화를 만든 것이다. 발표하는 작품을 통해 세계의 풍경 속에서 변화하는 삶과 인간관계의 양상을 면밀하게 포착해온 아사야스는 <논-픽션>을 통해 문화와 언어는 이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묻는다. 그러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야말로 영화의 역할이라 믿으며. 최근 차기작 <와스프 네트워크>의 촬영을 마치고 파리에서 후반작업 중인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에게 서면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퍼스널 쇼퍼>(2016)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내게 현대 세계는, 팽창하는 물질주의와 그것을 해독(解毒)하려는 정신성 사이의 긴장으로 정의된다”라고 말했다. 현대 세계에 대한 당신의 이러한 고민이 <논-픽션>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논-픽션>을 만드는 과정 내내 나는 디지털 시대의 출판업과 책이 우리 인생에 주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했다. <논-픽션> 초안은 몇년 전에 이미 완성했었지만, 그때는 뼈대가 좀더 클래식영화에 가까웠다. 그래서 투자를 받을 수 없었고(웃음) 작품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몇년이 지난 뒤, 메인 캐릭터가 출판인이라는 컨셉 하나 빼고 모두 다 바꿔버렸다. 영화를 인물간의 대사로 가득 채운 것도 이때의 일이다. 다양한 시각에서 동일한 문제를 직면했을 때,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고 우리가 그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는지, 혹은 퇴화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알다시피 현대사회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디지털화로 이 변화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특히 출판계에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키는지 표현하고 싶었다.
-<논-픽션>이 드라마가 없는, 아이디어에 관한 영화라고 말했다. 이 말의 의미에 대해 더 듣고 싶다.
=나는 문학적인 접근이나 묘사보다 대화 자체에 집중하고 싶었다. 언어와 그 언어가 우리의 생각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그 언어를 통해 우리가 우리 자신을 표현하는 것 말이다. 물론 이 방법이 전통적인 영화 접근법과는 다르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지만, 난 모름지기 영화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그 변화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곳에는 절대 답이 있으면 안 된다.
-이 작품은 특히 출판계의 변화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 이유는.
=현대사회에서 읽고 쓰고 대화하는 방식의 가장 궁극적인 요소가 바뀌고 있다. 나는 모든 것이 디지털화해가는 이 상황에서 문명의 중심부이자 가장 오래된 분야인 책과 출판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결국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코미디라고 해도 말이다.
-전자책, 오디오북, SNS를 활용한 마케팅 등 출판계의 변화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당신은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소비 방식을 평소 생활에서 얼마나 받아들이고 있나.
=나는 e북을 많이 읽지 않는다. 작업을 위해서 무언가 찾아야 하는데, 책을 찾아볼 여유가 없을 때 e북을 이용한다. SNS는 아예 하지 않는다. 관심도 없고, 그것은 내가 속한 세계나 문화도 아닐뿐더러 SNS를 할 인내심도 없다. SNS에 대한 나의 주장이 옳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냥 내가 이런 사람인 것이다. 물론 마케팅을 위해서 SNS가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난 마케팅 책임자가 아닌 영화감독이다. 그리고 난 문화와 언어를 통해 세상에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게 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극중 주요 등장인물들은 책과 전자책, 현실과 픽션, 배우자와 불륜 상대 등 삶의 다양한 층위에서 이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이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이야기하고자 했나.
=모든 것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현재와 우리의 이상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두 세상 모두 현실이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각자 자신의 문화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지만 언제나 새로운 생각, 도구, 관점들을 통해 재정의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는 당신이 ‘e-book’을 영화의 원제로 정하려 했다가 결과적으로는 ‘Double Lives’라는 제목을 택한 이유와도 연관이 있을 것 같다.
=난 작품이나 소설의 제목을 정하는 게 어떠한 지침을 준다고 생각한다. e북은 내가 이 영화를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결국에 내가 깨달은 것은, e북도 역시 종이책과 별 다를 것 없다는 사실이었다. 도구가 바뀌었을 뿐 그 의미는 여전하다. 그런 의미에서 ‘Double Lives’나 ‘Non-Fiction’ 역시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진정한 삶은 예술의 영감이 되고, 글을 쓴다는 건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해답을 찾아가는 것이니까 말이다.
-영화에서 로르(크리스타 테렛)는 소비 분석 알고리즘이 자만과 권위에 빠진 비평가보다 앞으로는 더 신뢰받을 거라고 말한다. 평론가 출신 감독으로서 비평과 활자매체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나.
=나는 자신의 시간에서 글로 삶의 예술을 표현하려는 사람들이 언제나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불필요하거나 겉만 번지르르한 글도 있겠지만 말이다.
-최근 영화산업에도 전세계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로 많은 감독들(심지어 예술영화를 만들던 감독들까지도)이 진출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난 스트리밍용 영화를 제작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떤 도구든 훌륭한 예술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영화산업 추세를 보면 어느 나라에서나 스펙터클한 블록버스터영화가 상영관을 지배하고 있다. 점점 창작자의 개성을 중시한 영화가 스크린에 걸릴 가능성은 줄어들고 있는데, 이러한 환경에서 감독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나.
=슈퍼히어로가 아닌 진짜 사람들, 현실의 캐릭터에 대한 희망을 버리면 안 된다. 위에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감독으로서 나의 책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그 변화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게 하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슈퍼 16mm로 촬영한 이유는.
=사실대로 말해도 되나? 진실은 우리가 35mm를 쓰기에 예산이 부족했다! (폭소) 그리고 디지털로 찍기 싫었던 이유도 있고…. <8월 말, 9월 초>(1998) 같은 90년대 스타일을 다시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러면서 내가 얼마나 필름의 느낌을 그리워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래! 바로 이거야!’ 하는 느낌이 왔고 그것에 내 몸을 맡겼다.
-레오나르와 발레리 부부로 출연한 연극배우 출신 뱅상 매케인, 코미디언이자 칼럼니스트 노라 함자위와 처음으로 함께 작업했다. 이들을 캐스팅한 이유는.
=뱅상은 오래전부터 알아왔던 사이고 무대감독이나 배우로서 그를 매우 존경한다. 레오나르 역으로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무척 행복했다. 노라의 경우는 특이하다. 이번 영화 캐스팅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는데, 다음 영화에서 꼭 다시 만났으면 한다.
-차기작 <와스프 네트워크>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한다.
=90년대 마이애미와 쿠바를 배경으로 일어난 실화를 다룬 정치 스릴러다. 페넬로페 크루즈, 에드가르 라미레스,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아나 데 아르마스와 와그너 모라가 출연한다. 영어와 스페인어로 제작될 예정이다. 한국에서 <논-픽션>이 좋은 피드백을 얻어 다음 영화가 나왔을 때 또 이런 인터뷰를 하게 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