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이 당도한 사회에서 발버둥치는 젊은 영화인들을 그린 <그들이 죽었다>(2014), 낯선 타국에서 음악을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는 직장인이 나오는 <대관람차>(2018) 등 청춘영화를 만들어온 백재호 감독이 첫 번째 다큐멘터리에서 의외의 대상과 만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극장가를 찾는 <시민 노무현>은 역대 대통령 중 최초로 퇴임 이후 귀향을 택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생활을 충실히 담은 영화다. 이 시기에 찍힌 200시간 이상의 기록 영상을 꼼꼼히 솎아낸 영화는 작품 전체를 노 전 대통령의 발자취로 가득 채웠고, 여기에 오늘날 봉하마을의 모습을 포개두면서 현재진행형의 가치를 질문한다. 특히 백재호 감독은 화창한 풍경 숏, 부드럽고 산뜻한 음악, 가벼운 폰트 등을 통해 작품을 밝고 따뜻한 색채로 꾸렸다. 기존의 정치인 다큐멘터리에서 좀처럼 보지 못했던 스타일임은 물론이고, 454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새롭게 ‘진보의 미래’를 고민했던 한 시민의 여정을 회고하는 태도로서 무척 용기 있는 결단이다.
-원래 <바보 농부>로 알려진 제목이 <시민 노무현>으로 바뀌었다.
=처음엔 노 전 대통령이 고향에 돌아가서 농사짓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친환경 농사를 추구하는 농부가 씨앗을 뿌리고, 거기서 쌀이 나오는 과정을 그리면서 자연스럽게 노무현이라는 한 사람이 씨앗이 되어서 여러 사람에게 변화가 퍼져 나가는 그림을 생각한 거다. 그런데 막상 작업에 착수하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이왕 서거 10주기에 개봉할 거라면, 2019년에 우리가 봐야 하는 게 뭘까, 지금 해야 하는 이야기가 뭘까에 대해 좀더 치열하게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 이력이 있는 시민으로서 그가 마지막까지 확장해나간 고민은 ‘진보의 미래’에 관한 것이었고 그 맥락을 좀더 살리고 싶었다.
-영화에는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봉하마을에서 454일간, 하루에 많게는 11번까지 만남의 광장에 나와서 시민들과 소통하고 살기 좋은 농촌을 만들기 위해 힘쓰는 모습이 담긴다. 생전의 기록을 무척 성실하게 추려낸 지점에서 대상을 향한 감독의 애정과 지지가 느껴진다.
=기록물들을 쭉 살펴보다가 팀원들끼리 우스갯소리로 노인이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닌지 걱정할 정도였다. 200시간이 훌쩍 넘는 영상 클립 내내 쉬지 않고 일한다. 남들이 시켜서가 아니라 다 본인이 직접 만들어서 하는 일이다. 패턴을 보니까 스스로 어떤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우선 남들에게 그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더라. 그러면 지지자나 마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서 하게 된다. 말 그대로 솔선수범인데, 그렇다고 그 일들이 대단히 어려운 일은 아니다. 특별한 권력이 있거나 능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일반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셨다. 모두가 함께해야만 변화가 온다는 결론이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붙들었던 믿음이다.
-이번 다큐멘터리로 <무현, 두 도시 이야기>(2016)의 제작진과 뜻깊은 조우를 이뤄냈다. 조은성 프로듀서에게 어떻게 제안을 받았나.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웃음) 늘 정치와 사회에 관심이 많았고, 잠시 영화를 쉬면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보자고 마음먹던 시기였다. 노무현재단의 리더십 학교에 들어가고 싶은데 장학금이 필요한 상황이라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의 조은성 프로듀서에게 추천서를 써달라고 했다. 전부터 다큐멘터리를 같이하자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마침 서거 10주기에 맞춰서 젊은 감독과 다큐멘터리 한편을 더 제작해보려던 참에 내가 조 PD님 눈에 들어온 셈이었다. PD님이 젊은 감독을 찾은 이유는 다음 세대를 향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의 20~30대, 혹은 노 전 대통령을 경험하지 못한 10대가 이 영화를 보고, 그동안 그에 대해 잘 몰랐던 것이나 오해한 것이 있으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봉하마을에 내려가서 1년간 생활했다고.
=아예 집을 구했다. 그곳의 사계절은 어떻게 변하는지, 친환경 농사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화포천을 찾은 겨울 철새들은 어떤 모습인지 보고 싶었다. 10년 사이 봉하마을이 얼마나 변했을지도 궁금했는데, 여전히 그곳을 지키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분들을 만나면서 많이 놀랐다. 개인적인 이유로는 그즈음 많이 지쳐 있어서 서울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제목인 <시민 노무현>을 대통령 필체로 오프닝 크레딧에 새겨넣었다.
=이 영화에 노 전 대통령이 사인을 했다는 느낌으로 그렇게 했다. (웃음)
-연단에 선 그분의 모습으로 영화의 처음과 끝을 열고 닫은 이유는.
=귀향 후 봉하마을에서 인사말을 할 때 “이제 시작하겠습니다”라고 첫마디를 뗀 모습을 오프닝에 썼고, 국회의원 초창기에 대정부질문에서 “발이 저린 사람들 좀 봐주기로 했다”고 호탕하게 마무리짓고 물 한 모금 마신 뒤 퇴장하는 모습을 엔딩에 썼다. <시민 노무현>은 감독인 내가 특별히 무언가를 만들기보다는, 그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만든 작품이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를 거치면서 재단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의 신뢰가 형성돼 있었다. 자료 제공을 많이 받았고, 봉하마을에서 보통 편당 1시간 정도 되는 200개 이상의 영상 파일을 추려냈다. 미처 다 담지 못한 아까운 것들이 많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혹은 퇴임 이후에 왜곡되거나 편집된 정보로 말미암아 받았던 오해들이 있다면, 최대한 있는 그대로 기록물을 보여줌으로써 그것을 풀어보고 싶었다.
-화포천 복원 등 생태운동에 힘쓰는 노 전 대통령의 이미지가 화면에 떠오를 때, 비리사건에 연루된 형 노건평씨와 측근의 구속 및 검찰 소환을 알리는 뉴스 사운드가 겹치는 절묘한 장면들도 있다.
=극적 효과를 위해 일부러 그렇게 한 건 아니다. 정말로 같은 날짜에 있었던 일들을 포개둔 것이다. 워낙 자료가 많았기 때문에 꼼꼼히 찾다보면 자연스레 영화의 리듬감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고 봤다.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 순서를 인위적으로 뒤섞지 않고, 최대한 사건과 시간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식으로 편집했다. 그게 <시민 노무현>을 만들면서 내린 중요한 원칙이었다. 영상을 보고 있으면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이 점점 변하는 게 느껴진다. 피로와 스트레스가 묻어나는 것이다.
-화면 비율을 4:3으로 설정했다. 영화 말미에 봉하마을을 떠날 때쯤 화면이 서서히 넓어지는 순간이 인상적이다.
=자료 화면이 모두 4:3 비율이어서 이를 최대한 잘 살리기 위한 방편을 따랐다. 노 전 대통령의 활동량이 워낙 많다보니 테이프를 감당하기 어려워서 그랬는지, 영상들이 대개 HD가 아니라 SD로 찍혀 있었다. 처음엔 화질이 안 좋아서 아쉽기도 했는데 이젠 이해한다. (웃음) 당시로서는 앞으로 계속 방대한 분량의 비디오를 찍게 되겠구나, 싶은 생각에 내린 결정일 텐데 그러고나서 1년 정도밖에 못 찍게 된 거다. 4:3 비율로 진행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10년이 지나 시점이 현재로 돌아올 때는 화면을 열어주자고 생각했다. 영화 말미에 드론숏을 통해 봉하마을을 벗어나 어딘가로 나아가는 이미지 위에서 화면이 점점 넓어진다.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고, 2019년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