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아쉽게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변성현 감독의 편지를 배우 임시완이 읽고 있다. “2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임)시완씨가 군대에 다녀오고 50살 넘은 아들내미는…. 아이돌로 성장…? 아~! 하하하하!” 불한당원들이 감독을 ‘아버지’라 부르고, 배우 설경구가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별명을 얻은 데서 온 조크를 뒤늦게 알아차린 임시완의 큰 웃음. “지금쯤 무대 위에는 제가 약속드린 대로 재호와 현수의 투숏이 마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변성현 감독의 말은 현실이 됐다.
02. 이날 참석한 배우 전원에게 불한당원들이 특별히 제작한 감사패가 전달됐다. 설경구는 사회자가 아닌 불한당원에게 직접 감사패를 받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한 뒤, “자체적으로 행사를 준비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잠도 못 주무셨을 테고. 총대 멘 분에게 감사드린다”는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불한당원’은 여전히, 어디에나 있다. 5월 18일 오후 2시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수퍼플렉스 G관에서 열린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의 개봉 2주년 기념 대관에 참여한 관객은 총 598명. 이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단 2분 만에 3388명이 신청서를 제출했다. 대관 행사에 주인공 한재호 역의 설경구와 조현수 역의 임시완의 참석 사실이 알려지기 전이었다. 그렇게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티켓을 쟁취한 이들은 상영시작 몇 시간 전부터 극장에 모여들어 지나가는 시민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극중 한재호의 스리피스 정장에서 영감을 얻어 슈트를 입고 오고, 담배를 양쪽 귀에 꽂는 등 영화의 특정 장면을 패러디하고, 루돌프 머리띠에 <불한당> 글자가 새겨진 장식을 더하고, 스티커 등 자체 제작 굿즈를 온몸에 두르는 등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도 갖가지였는데, 흡사 만화와 게임, 영화 콘텐츠를 소개하는 박람회 ‘코믹콘’이나 만화 및 애니메이션 동인 행사 ‘코믹월드’의 <불한당> 버전을 보는 듯했다. 현장에서 만난 익명의 불한당원1은 “<살인자의 기억법>(2016)이나 <우상>(2018) 무대인사를 쫓아다니는 등 설경구님의 팬질을 하고 있었다”며 근황을 전했다. 역시 익명을 요구한 불한당원2는 “현생(현실 생활)이 바빠서 잠시 덕질을 쉬긴 했지만, 다른 영화에 마음을 준 적은 없다. 2주년 대관 소식을 듣자마자 티케팅을 준비했다. 예전에 함께 <불한당> 대관을 쫓아다니던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담소를 나눌 예정”이라며 설레는 마음을 전했다.
03. “당원들이 현수가 떠나고 (죽은 줄 알았던) 재호가 살짝 꿈틀거렸다 내지 살짝 눈을 뜬 거 같다고 했다. 거기서부터 변성현 감독과 속편 이야기를 시작했다. (웃음)” 설경구는 현수의 프리퀄, 재호의 시퀄이 같이 진행되며 접점을 만들어가면 흥미롭겠다는 말을 술기운에 했다고 전했다. 김희원은 병갑 역시 꿈틀거리며 움직인 것 같다고 항변했다. 이로부터 시작된 <불한당2>에 대한 상상의 나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자리였다.
04. “우리가!” (설경구) “남이가!” (일동) <불한당>의 한 장면을 빌려온 외침으로 행사가 시작됐다. 불한당원들이 행사를 가질 때마다 단합을 도모하기 위해 쓰는 가장 상징적인 구호다(왼쪽 두 번째부터 설경구, 임시완, 김희원, 최병모, 박광재).
<불한당> 개봉 당시의 릴레이 대관 행사에 이어 1주년, 그리고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다양한 행사와 인터넷 팬문화까지…. 어떤 식으로든 <불한당>에 애정을 준 이들이 모인 이날 행사는 영화를 매개로 벌어지는 거대한 축제이자, 팬덤의 긴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제대 후 팬들을 만나는 첫 공식 행사에 참석한 임시완이 “무언가가 너무 좋다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한번쯤 눈이 간다. 그렇게 <불한당>을 몰랐던 사람도 영화에 새로 빠져들고, 그것이 계속 번지면서 영화가 계속 관심을 받을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언급한 것은 <불한당> 팬덤의 특성을 보여준다. 팬문화는 서브컬처에 가깝지만, TV 방영과 IPTV 등 2차 시장 덕분에 높은 접근성을 지닌 영화는 대표적인 주류 문화다. 그 열기가 소강되기는커녕 오히려 해를 거듭할수록 화력을 더해갈 수 있었던 것은 ‘영화 팬덤’이 가진 이 독특한 지위에서 기인한다. 이날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변성현 감독은 “사람을 믿지 마세요. 개봉 후 2년이 지나도록 모여 있는 이 상황을 믿으세요. <불한당>은 여러분들께서 완성시켜주신 영화”라는 편지를 전했다. 유례없이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은, 스트리밍 등의 플랫폼으로 인한 극장 위기설이 대두되고 영화의 감상평이 쉬이 휘발되는 시대에 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진짜’ 현상일 것이다.
05. 불한당원들이 직접 제작한 각종 굿즈를 무료로 나눠주던 테이블. 주연배우의 이름이 적힌 슬로건부터, 직접 디자인한 스티커와 부채, 렌티큘러 카드, 엽서, 포스터 등 종류도 다양했다.
06. 2m 거구 역의 박광재는 “내가 제일 착한 캐릭터 같다. 아무것도 모르고 싸우지 않았나”라고 주장했고, 최 선장 역의 최병모는 “열심히 살려고 했는데 괜히 와 가지고 무자비하게 때리고. 내가 뭘 얼마나 잘못했다고”라며 자신이 제일 선한 인물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가장 큰 환호와 박수를 받은 것은 역시 병갑 역의 김희원의 발언. “가장 나쁜 사람은 (설)경구 형님이다. 사랑을 배신했다. 제일 착한 사람은 나다. 사랑하다 죽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