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심원들>은 제목에서부터 촬영 파트의 고민이 전해지는 영화다. 사건의 대부분이 ‘법원’이란 한정된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8명의 배심원들과 김준겸 재판장(문소리) 모두가 주인공이기에 “한명이 어떤 행동을 하면 8개의 반응숏이 필요”하다. 백윤석 촬영감독은 “카메라가 9번째 배심원인 것처럼 인물들을 따라다녔다”고 말했다. “조명 파트에서 불리한 부분이 상당히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를 자유롭게 이동시키려고 했다. 카메라가 무성영화의 변사 같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홍승완 감독의 아이디어도 있었다.” 또한 예산상 카메라 두대를 돌리는 것이 쉽지 않았음에도 촬영의 효율성과 연기 앙상블을 살리기 위해 “한명이 주도하는 상황에서 다른 배심원의 리액션을 중계하듯 동시에 찍었다”고. 법원을 벗어나 주인공들이 외부로 나가는 현장 검증 시퀀스는 일부러 장르적인 시도를 했다. 어딘가 어설프지만 구색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배심원들의 모습은 블랙코미디로, 비극적인 사건을 플래시백으로 재현할 땐 리얼리티를 가미한 스릴러영화처럼 접근했다. 이같은 계산이 <배심원들>에 매끈한 템포 조절을 가능케 했다면, 카메라와 배우 사이의 정서적 거리는 감정적 여운을 이끈다. “카메라가 배우의 감정을 최대한 따라가야 한다”는 것은 백윤석 촬영감독의 가장 중요한 철학이기도 하다. 가령 변상미(서정연)와 오수정(조수향)이 싸우는 장면은 오버더숄더숏이 아닌 각각의 단독 클로즈업으로 찍혔는데, “어떤 사람의 말이 맞고 틀린 게 아니라 각자의 입장을 똑같이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입학 당시 백윤석 촬영감독은 시나리오작가를 지망했다. “영화는 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글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게 문체라면, 영화에서 그 역할을 하는 것은 촬영이라고 봤다.” 그렇게 촬영 전공으로 진로를 틀게 된 그는 최근 축구를 보면서 든 단상이 있다고 전했다. “결국 골을 넣는 스트라이커는 배우다. 카메라를 비롯한 모든 스탭은 그 바로 뒤에서 어시스트를 하는 섀도 스트라이커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배심원들>은 배우진의 연기가 고르게 빼어난 영화다. 피사체와 관객을 매개하며 이를 손실 없이 전한 백윤석 촬영감독의 카메라는, 의심의 여지없는 유력 MVP 후보다.
로베르 브레송의 <노트 온 더 시네마토그래퍼>(Notes on the Cinematographer)
“<스플릿> 마치고 최국희 감독님이 미국에 있을 때 보던 책이라며 선물로 줬다. 로베르 브레송의 촬영에 대한 단상을 모아뒀는데, 촬영이 잘 안 된 날 아무 데나 펼쳐서 보면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게 도움을 준다. 가방에만 넣어놓고, 잘 안 꺼내보려고 한다. 많이 꺼내볼수록 촬영에 아쉬움이 있는 거니까. (웃음)”
영화 2019 <배심원들> 2018 <명당> 2017 <채비> 2016 <스플릿> 2015 <극적인 하룻밤> 2013 <내 연애의 기억> 2013 <고스톱 살인> 2006 <붉은 나비>(단편) 2006 <가희와 BH>(단편) 2005 <물결이 일다>(단편) TV 2015 <처용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