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영화] 김대환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
2019-06-04
글 : 김대환 (영화감독)
꾸준히 걷고 싶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 출연 아베 히로시, 나쓰카와 유이 / 제작연도 2008년

아주 어릴 때부터 영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냥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다짐이었다. 이후 대학 시절 과제를 만들면서 연출을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욕심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풍안내 서비스> <부자면접>이라는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자살’과 ‘사후세계’ 같은 자극적인 소재를 다뤘고, 판타지 설정을 기반으로 세트를 짓고 촬영을 했다. 상당히 컨셉추얼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다들 본 적 없을 영화다. 교내 시사회나 졸업작품 상영회 이후로 상영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를 찾고 싶었다. 재능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걸어도 걸어도>를 보게 되었다. 그 영화를 통해 비로소 나의 문제를 찾을 수 있었다. 똑같은 가족 이야기이지만 태도와 시각의 차이가 분명했다. 나는 포장지를 열심히 꾸미고 있었다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떻게 내용물을 만들지에 대해 고민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철원기행>을 만들 수 있었다.

<걸어도 걸어도>의 흥미로웠던 점은 세 가지로 꼽을 수 있다. 첫째로, 3막 구조와 관계없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학창 시절 매일같이 영화를 보며 주제와 전환점을 찾고 주인공이 뭘 원하지는에 대해 기록하고 공부했다. 많은 영화학도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선명한 3막 구조가 영화를 만드는 필수 요소라고 생각했고, 믿었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 구조에 맞는 구석이 전혀 없었다. 주인공의 욕망이 목숨을 걸 만큼 간절하지도 않았고 주인공과 생사를 걸고 싸우는 적도 없었으며 주인공의 상황이 전환되는 전환점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신선했다. 새로운 시선과 시각을 선물받은 기분이었다. 두 번째로, 전개가 흥미로웠다. 흔히들 초반 5분에 관객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하지만 이 영화는 초반 5분 동안 요리하고, 걷고, 지하철을 타는 게 다다.

그렇다면 왜 이 영화의 전개는 힘이 있을까? 이 영화는 신과 신 사이에 질문을 만드는 힘이 있다. 요리를 하는 신 뒤에는 오늘 왜 요리를 하지, 오늘 무슨 날이지, 라는 질문이 생긴다. 이 질문의 대답인 ‘준페이의 기일’이라는 정보는 나중에 자연스럽게 제공해준다. 이런 식으로 캐릭터간의 관계나 사연의 질문을 계속해서 만들어주고 그에 대한 대답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다가오게끔 해준다. 이 세련된 전개가 자극적인 사건이 없어도 긴장감 있게 영화를 보도록 만들었고 나에게는 새로운 영화적 체험이었다. 세 번째는 연출이었다. 고레에다 감독은 방송 다큐멘터리 감독이었다. 첫 작품인 <환상의 빛>은 조금 다르지만 <원더풀 라이프> <디스턴스> <아무도 모른다>를 보면 연기자들이 연기하는 모습이 아니라 연기자를 따라다니면서 취재하고 기록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진짜로 존재하는 이웃의 모습 같았다. 나는 이 지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믿음이 영화의 세계를 더욱 확장시킨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어느 한 가족의 사연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일본의 거대한 사회로 이야기가 확장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출 스타일을 보면 정확한 대사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배우들과 상황을 공유하고 함께 찾아가는 연출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걸어도 걸어도>는 연출 태도가 전혀 달랐다. 철저하게 시나리오대로 연출했고 배우들의 대사 또한 엄격하게 지키도록 고수했다고 한다. <아무도 모른다> 이후 세계적으로 주목받던 감독이 예전에 했던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방법으로 연출한다는 지점이 굉장히 멋있었다. 고레에다 감독은 용기 있는 선택을 했다. 지금은 당연히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그 이전에 그는 부지런한 감독이다. 거의 일년에 한 작품씩 만들어내고 있다. 게다가 장르영화에 도전하면서 자신의 스펙트럼을 넓히려 하고 있다. 멋있다. 이 글은 그에 대한 존경이자 나의 반성이다. 부지런히, 꾸준히, 영화를 만들고 싶다.

● 김대환 영화감독. <철원기행>(2014), <초행>(2017)을 연출했고, 최근 봉준호 감독 <기생충>의 시나리오 윤색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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