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조지프 헬러 소설 드라마화한 <캐치-22>, 조지 클루니가 제작, 연출, 연기 맡아 6부작으로
2019-06-06
글 : 송경원
미치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다

조지 클루니가 TV시리즈로 돌아왔다. 1994년부터 2009년까지 방영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메디컬 드라마 <ER> 이후 10년 만의 복귀다. 게다가 이번에는 제작과 연출까지 병행했다. 조지 클루니를 사로잡은 드라마는 다름 아닌 조지프 헬러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캐치-22>다. 지난 5월 17일 미국에서 공개된 지 한달 만에 캐치온에서 국내 최초로 소개될 예정이다. 총 6부작인 <캐치-22>는 6월 6일부터 8일까지 매일 밤 11시 2편씩 방영될 예정이며, 6월 10일에는 VOD 전편이 공개된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비이성적이고 부조리한 전쟁의 참상을 풍자하는 리얼 밀리터리 블랙코미디인 <캐치-22>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필요하고 유효한 이야기라 할 만하다. 한동안 TV를 떠났던 조지 클루니의 발걸음을 되돌린 매력이 무엇일지 직접 확인해보길 권한다.

전쟁터에서 가장 먼저 살해당하는 건 ‘진실’이라고들 한다. 의미 없는 줄 세우기겠지만 굳이 순서를 정해야 한다면 그 다음으로 사라지는 건 ‘이성’과 ‘합리’가 아닐까 싶다.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의미 없는 행동들로 채워넣어야 한다. 정신 나간 조직에서 제정신인 이들이 버틸 수 있는 건 그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캐치-22>은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미 육군 항공대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드라마다. 기본적으로 전쟁 드라마지만 전쟁 드라마의 교본과도 같은 <밴드 오브 브라더스>와 같은 정통 밀리터리물과는 약간 결이 다르다. 군대에 징집되어 무의미한 전쟁에 내몰린 폭격 중대 조종사 요사리안(크리스토퍼 애벗)을 중심으로 군대 내 부조리와 비이성적인 상황을 풍자하는 쪽에 초점을 맞춘 블랙코미디적 성격이 짙다.

미치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다

‘요요’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요사리안은 군대에 입대하기 전부터 제대를 꿈꾼다. 한마디로 지극히 정상인이다. 그는 군대의 징집을 최대한 늦추고 싶어 일부러 육군 항공대에 자원한다. 어차피 뭘 해도 군대에 끌려올 수밖에 없으니 기왕이면 훈련과정이 제일 긴 폭격수를 지원한 것이다. 요요는 미국 캘리포니아 소재 공군사관학교에 생도로 입대해 “훈련이 끝날 때쯤엔 전쟁도 끝날 줄 알았다”라고 고백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전쟁 막바지에 이탈리아반도에 투입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요요를 더 절망으로 몰아넣는다. 이미 히틀러의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전투 자체의 명분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요요는 어떻게든 제대를 하고 싶어서 갖은 꾀병을 다 부려보지만 소용이 없다. 다름 아닌 ‘캐치 22’라는 말도 안 되는 딜레마의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캐치 22는 간단히 말해 ‘당신은 절대 전쟁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부조리의 결정체 같은 룰이다. 캐치 22의 논리과정은 다음과 같다. 병사가 미쳤다고 판단되면 비행 근무 해제를 받을 수 있다. 다만 근무 해제를 받으려면 본인이 직접 신청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전장을 빠져나가기 위해 신청하는 순간 병사는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 된다. 왜냐하면 군의관 다네카(그랜트 헤슬로브)에 따르면 “긴박하고 현실적인 위험 앞에서 자신의 안전을 염려하는 행위는 합리적인 심리”이기 때문이다. 이 단순하면서도 잔혹한 딜레마는 전쟁이란 상황 그 자체를 고스란히 압축하고 있다. 여기엔 두 가지 명제가 충돌한다. 하나, 자발적으로 출격을 나가고 싶은 군인은 미친 사람이다. 둘, 전장을 빠져나가고 싶은 사람은 정상인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근무 해제를 받으려면 본인이 직접 신청’이란 룰을 설정하는 것만으로 영원히 도돌이표 도는 딜레마가 발생하는 것이다.

캐치 22 자체는 암묵적인 룰, 그러니까 무형의 조항이다. 하지만 군대 내 비이성적인 상사와 모자란 동료, 이기적인 후배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의 욕망들로 인해 부조리는 현실화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부조리를 최대치로 증폭시키는 이 이야기에서 요요는 ‘미치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한마디로 이 드라마는 요요라는 정상인이 군대라는 정신 나간 조직에서 점점 미쳐가는 과정을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부조리극이랄 수 있다. 6부작으로 이뤄진 <캐치-22>에서 요요는 회차가 거듭될수록 어떤 식으로든 군대를 탈출하려고 발버둥치고, 비이성적인 조직과 제도는 번번이 그의 노력을 좌절시킨다. 전쟁이 인간의 영혼을 황폐화시키는 과정을 해학적으로 그려낸 <캐치-22>는 단순히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밀리터미물 이상의 메시지를 전한다. 전쟁이란 부조리한 상황, 군대라는 비이성적인 조직하에서 삶의 거대한 모순을 포착하는 것이다.

타인이 지옥이다

<캐치-22>는 조지프 헬러 작가의 1961년작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20세기 미국 문학에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 반전 소설은 <타임>이 선정한 100대 영문 소설 중 하나에 꼽히기도 했으며, ‘캐치 22’라고 신조어가 정식으로 사전에 등록될 만큼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후 ‘캐치 22’는 모순에 찬 관료제도나 이율배반적이고 비논리적인 상황을 지칭하는 보통명사로 자리 잡았다. 1970년 마이크 니콜스 감독에 의해 한 차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한 이 작품을 드라마로 제작한 건 다름 아닌 할리우드 유명 배우 조지 클루니다. 조지 클루니는 2009년 종영된 인기 드라마 <ER> 이후 10년 만에 TV시리즈의 출연자로 복귀했을 뿐 아니라 6부작 중 2편의 에피소드 연출을 직접 맡기도 했다. 존 보이트, 마틴 신, 앤서니 홉킨스 등 명배우들이 출연했던 영화만큼이나 조지 클루니, 카일 챈들러, 휴 로리 등이 주연을 맡은 드라마의 캐스팅도 화려하다. 캐스팅이 특별히 중요한 이유는 <캐치-22>가 일종의 캐릭터극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 불리한 의미로만 적용되는 무형의 룰 ‘캐치 22’를 성립시키는 건 다름 아닌 조직 내부의 사람들이다. 이탈리아의 피아노사섬을 근거지로 한 미 육군 항공대에는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염세주의자에 가까운 요요는 처음엔 관찰자적인 입장에 서 있지만 모든 사람을 냉소적인 시선을 바라보는 요요 역시 온전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요요의 신경을 더욱 날카롭게 하는 건 미쳐 돌아가는 군대 조직의 상사들과 이해가 가지 않는 동료들이다. 캘리포니아 군사학교의 훈련 담당관 셰이스코프 중위(조지 클루니)는 열병식과 제식훈련에 미쳐있는 사람이다. “퍼레이드는 단지 병사들을 모욕주고 사디스트 셰이스코프를 만족시키기 위해 고안되었다”는 요요의 분노에 찬 발언처럼 셰이스코프는 고지식하고 가학적인 데다 무능력한 상관이다. 요요는 그에게 복수하는 마음으로 셰이스코프의 아내와 바람을 피우기도 한다. 그나마 요요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25회의 의무출격 후에 소집해제를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미 16회의 출격을 마친 요요는 9회만 견뎌내면 집에 갈 수 있지만 눈앞에서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후 마음이 무너져가는 걸 느낀다. 설상가상 새 지휘관으로 야망 넘치는 캐스카트 대령(카일 챈들러)이 부임한 후 의무출격 횟수가 30회로 늘어난다. 가장 위험한 상사라는, 무능력하고 열정 넘치는 지휘관 밑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요요는 미치기 일보 직전의 상황까지 내몰린다. 그 와중에 피아노사섬의 또 다른 지휘관 코버리 소령(휴 로리)은 군대 내에서 스포츠를 즐기고 혼자 축음기로 재즈를 듣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가며 자신만의 작은 왕국을 꾸리는 중이다. 욕심 많은 취사장교 마일로 중위(대니얼 데이비드 스튜어트)는 그런 코버리를 구워삶아 불법적인 무기 중개 카르텔을 만들고 사적인 이익을 챙기기에 바쁘다. 세상 모든 외로움과 우울함을 껴안은 듯한 병사 메이저, 매춘부에 집착하는 네이틀리 등 병사들의 행태도 제각각이다.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대 내에서 전쟁의 광증과 인간의 모순을 대변하는 캐릭터들은 <캐치-22>의 핵심이자 6부작의 에피소드를 풍성하게 해줄 또 하나의 유머 감각이라 할 만하다.

리얼 밀리터리 블랙코미디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한 만큼 <캐치-22>의 이야기 완성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단순한 전쟁의 부조리함을 꼬집는 풍자극 이상의 감흥을 전하는 건 밀리터리물로서의 완성도도 한몫한다. 드라마에 치중한다고 볼거리를 생략하거나 경시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2차 세계대전을 재현한 밀리터리 드라마는 적지 않지만 폭격수를 중심에 두고 진행되는 작품은 흔치 않다. <캐치-22>는 그 장점을 십분 살리고 있다. 폭격기 주변으로 공대공포가 폭죽처럼 터지는 와중에도 폭격수인 요요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좁은 스코프에 의지해 목표물을 조준하고 타이밍에 맞게 포탄 투하 버튼을 누르는 게 전부다. <캐치-22>는 얼핏 지루해 보일 것 같은 이 단순 작업마저 긴장감 넘치는 전장 한가운데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새삼 일깨운다. 폭격기의 정밀한 디자인과 함께 하늘 위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 참혹하고 생동감 넘치는 전장의 경험이 재현되었기에 지상에서의 고통과 딜레마가 더욱 깊이 있게 다가온다. 한마디로 드라마를 위한 리얼리티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캐치-22>의 장르를 정의하자면 ‘리얼 밀리터리 블랙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드라마 밀리터리물의 리얼하고 생생한 완성도를 기반으로 하되 끝내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풍자와 해학 그리고 차가운 이성 비판이다. 본래 좋은 이야기는 시절을 타지 않는 법이다. 장르적 즐거움과 깊이 있는 주제의식, 이른바 깊이와 넓이를 동시에 확보한 <캐치-22>는 밀리터리 드라마 역사에 또 다른 활력과 다양성을 더해줄 것이다.

● <캐치-22>

방송일자: 6월 6일 목요일~6월 8일 토요일 매일 밤 11시 캐치온1 방송 / 6월 10일 월요일 캐치온 VOD, 캐치온 APP, 홈페이지 VOD 전편 공개

출연: 크리스토퍼 애벗, 조지 클루니, 휴 로리, 카일 챈들러, 그랜트 헤슬로브, 대니얼 데이비드 스튜어트

사진 캐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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