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영 감독의 데뷔작 <보희와 녹양>에서 녹양(김주아)은 아빠 찾기에 여념이 없는 소년 보희(안지호)의 반쪽 같은 존재다. 카메라를 든 소녀 녹양은 이동수단에만 올라타면 까무룩 잠드는 속 편한 성격이지만, 보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는 어른들의 걱정을 몰래 잠재워주는 애어른 같은 면모도 지녔다. 이번 영화에서 말갛고 단단한 연기력을 선보인 배우 김주아는 데뷔 전 어린이 소극장 뮤지컬의 주연을 맡았을 정도로 춤과 노래에도 관심이 많은, 다재다능형의 배우다. 이제 16살, 김주아의 미래는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푸르게 빛난다.
-씩씩하고 강단 있는 녹양과 소심한 보희의 우정이 즐거움을 주는 영화다. 두 사람의 대조감, 끈끈한 신뢰 관계를 어떻게 해석했나.
=주위에 당연히 있을 법한 이야기로 받아들였고 최대한 있는 그대로 표현하자는 게 목표였다. 남자치고 의외의 성격이라서, 여자치고 의외의 성격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보희 그 자체, 녹양 그 자체라는 사실이 중요하게 다가왔다. 각자 이 세상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두 인물이 서로 관계를 형성하는 것. 그게 자연스럽고 귀여운 대비를 만들어낸 게 아닐까.
-안주영 감독에게도 첫 장편영화인데, 감독과 주연배우들이 서로 친해진 과정이 궁금하다.
=처음부터 모든 걸 차근차근 맞춰가는 과정이 있었다. 촬영 한참 전부터 감독님과 일주일에 한번 만나서 같이 방탈출도 하고 떡볶이도 먹었는데, 그렇게 준비하는 단계가 가장 재밌었다. 아무래도 현장에서 연기를 실천하는 순간은 긴장이 될 수밖에 없지 않나. 연기를 시작한 후에 이렇게 긴 영화 프리 프로덕션 기간을 처음 겪어봐서 더욱 특별했던 것 같다. 감독님과 둘이서 지호를 엄청 놀리면서 전우애가 생겼다. 아, 내 별명도 있었는데 다들 나를 찐빵이라고 불렀다.
-안주영 감독이, 두 배우가 극중 캐릭터와 실제로 닮은 구석이 많다고 하더라. 안지호 배우와는 촬영장에서 어떻게 지냈나.
=우리 관계는 진짜 보희와 녹양 같은 느낌이 있다. 초등학생 때 연기학원을 같이 다녔고 이후 첫 영화에서 호흡을 맞추게 됐다. 지호와는 촬영 중 기억에 남는 특별한 에피소드 같은 게 없는데 그게 우리 사이가 편안하다는 증거 같다. 여러 주제로 아무말이나 할 수 있고, 쉴 새 없이 투닥거렸으니까. 무전기로 듣고 계시던 감독님이 가끔 “야, 너네 이제 그만 싸워”라고 말리시기도 했다.
-시원시원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조용히 배려하고, 공부엔 관심이 없지만 다큐멘터리 촬영에 열성인 녹양은 또래 배우들이 많이 탐냈을 만한 역할이다.
=녹양은 누가 봐도 매력적인 캐릭터여서 부담이 있었다. 이 매력적인 친구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고심 했고, 내게 맞게 캐릭터를 조금 변화시키기도 했다. 감독님은 그냥 나라는 사람을 잘 보여주면 된다고 하셨다.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 <보희와 녹양>을 통해 큰 행사들에 처음 참여했다.
=아직 나 자신이 미완성인 상태에서 좋은 기회들이 너무 빨리 찾아온 것 같다. 그래서 얼른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을 때도 ‘한국영화의 밤’ 같은 파티에 늦게까지 남아 있지 못해서 아쉬웠다. (웃음)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혼자 반짝거리는 사람보다는 주변 사람과 시너지를 잘 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이 생각은 예전에 영화워크숍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고 고민하다가 나왔다.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좋은 배우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배우로서 롤모델이 있는지.
=지호는 하정우 배우라고 하던데, 나는 사실 롤모델이 없다. 물론 좋아하고 존경하는 배우는 많다. 예를 들어 송강호 배우를 정말 좋아한다. 나와 성별도, 느낌도, 특징도 완전히 다른 배우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분과 같이 연기를 할 수 있게 된다면 더이상 소원이 없겠다.
-예정된 차기작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독립 장편영화인 <성적표의 김민영>에 출연한다. 곧 스무살을 앞둔 여자들의 우정 이야기다.
영화 2018 <보희와 녹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