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책들이 긴 시간을 뚫고 여러 사람의 운명 속으로 파고드는 과정이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에 담긴다. 다이스케(노무라 쇼헤이)는 할머니 기누코가 남긴 나쓰메 소세키 전집 중 <그 후>에서 소세키의 서명을 발견하고는 책의 구입처로 추정되는 비블리아 고서당을 찾아간다. 박학다식한 고서당 주인 시오리코(구로키 하루)는 서명이 가짜임을 밝힌 뒤, 뜻밖에도 50년 전 기누코(가호)의 비밀스러운 연애사까지 예리하게 추리해나간다. 고서에 얽힌 할머니의 애틋한 사랑을 중심으로 현재의 청춘들이 진실한 교류를 나누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은 책 속의 예술적, 정신적 유산은 물론이고 영겁의 시간을 견디는 책의 물질성에 대해서도 뭉클한 의미를 도출하는 영화다. 책과 사람의 본체는 시간을 따라 서서히 쇠락해가지만, 책장 사이에 깃든 생의 추억은 세대를 넘나들며 눈부시게 빛난다.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고서당에서 가장 값비싼 책인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을 노리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전개는 좀더 미스터리 장르적인 양상을 띤다. <해피 해피 브레드> <미나미 양장점의 비밀> <친애하는 우리 아이>의 미시마 유키코 감독이 서정적이고 소박한 시선으로 관객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작품. 순정만화의 필터를 한겹 씌운 듯한 화면 속에서, 고서의 질감과 소리, 은은한 냄새까지 재현하려는 듯한 아날로그적인 미장센이 돋보인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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