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성, 어떻게 발음해?
‘질렌할’(Gyllenhaal)은 미국인들도도 곧잘 발음하기 난감해하는 성이다. 심지어 철자도 어렵다. 이는 제이크 질렌할이 미국 태생이지만 혈통은 스웨덴이기 때문인데, 스웨덴식으로 발음하면 ‘일렌홀’ 혹은 ‘일렌할’에 가깝다. 다시 영어식으로 발음하면 ‘질렌할’ 혹은 ‘질렌홀’의 중간 정도로 표현된다. 질린할, 길렌할, 게일렌홀, 게일렌헤일 등 온갖 종류의 발음은 다 들어봤다는 그는 매번 겪는 이름 해프닝에 대해 “재밌다. 그들 잘못이 아니다. 정말 희한한 성이긴 하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의 팬들은 그의 이름 ‘제이크’에서 비롯된 ‘제익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영화계 집안 출신
제이크 질렌할은 영화계 집안 태생이다. 아버지는 영화감독 스티븐 질렌할, 어머니는 영화감독이자 각본가인 나오미 포너다. 그의 누나는 배우 매기 질렌할이며 매형은 배우 피터 사스가드. 또, 호러 영화 <할로윈>의 주인공 제이미 리 커티스는 그의 대모이고, 대부는 영화감독 로버트 엘스위트라고 한다. 하지만 정작 제이크 질렌할의 부모는 그가 배우가 되겠다는 결심에 크게 반대했다. 아무래도 유명인의 삶이 얼마나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견뎌야 하는 직업인지를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배우로 성공하기 전 제이크 질렌할은 해변의 구조 대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직접 사람을 구한 적은 없었지만 해파리에 물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산성이나 염기성의 정도를 표현하는 pH 농도 조절에 효과가 있다는)소변을 눈 적은 있다고.
누나 매기 질렌할
제이크의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월등하지만 누나인 매기 질렌할도 유명한 배우다. 대표적인 캐릭터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에서 맡은 레이첼 도스, <크레이지 하트>의 진 크래드독, 그리고 <프랭크>의 괴짜 밴드 뮤지션 멤버 클라라가 있다. <도니 다코>에서는 제이크와 매기 남매가 함께 출연했다. 촬영 당시 제이크의 나이는 19세, 매기가 23세였다. 보통 남매들의 대화가 그렇듯 “그게 연기야?”, “별론데” 하는 식의 장난을 주고받았다고. 제이크는 어릴 때부터 누나와 같은 직업에 뛰어들곤 경쟁심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엄연히 다른 역할, 다른 연기를 하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매기 질렌할이 <크레이지 하트>로 2010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을 때, 감격한 제이크 질렌할은 이런 심정이었다. “세상에,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내 누나야. 나보다 누나가 먼저 됐어야 했는데.”
전환점 <브로크백 마운틴>
최근 루카스 헤지스가 기록을 깨기 전까지 그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의 최연소 후보 지명자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25세. 제이크 질렌할에게 이렇게 황금 같은 기회를 열어준 작품은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이다. 그는 2006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작품 <브로크백 마운틴>을 통해 엄청나게 유명해졌다. 상대 배우 히스 레저와는 절친이 됐다. 약혼자 역할로 출연했던 미셸 윌리엄스와 히스 레저는 실제 연인으로 발전해 슬하에 딸 마틸다 레저를 뒀다. 제이크 질렌할은 마틸다의 대부가 되었다.
대표작이 대체 몇 편?
데뷔 29년 차에 접어든 제이크 질렌할의 필모그래피는 아주 풍성하다. 마흔 편이 넘는 작품들을 경유해 온 동안 연기력에 대한 찬사는 끊이지 않았다. 작품 선택의 선구안도 남달랐다. 매기 질렌할과 남매로 출연한 <도니 다코>는 컬트적 인기를 얻은 SF영화로 남았고,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 <투모로우>를 통해 대중적 인기도 얻었다. 그의 인생작이라 해도 좋을 <브로크백 마운틴>을 거친 뒤엔 데이빗 핀처의 <조디악>, 던칸 존스의 <소스 코드>, 드니 빌뇌브의 <프리즈너스>와 <에너미>, 댄 길로이의 <나이트 크롤러>, 장 마크 발레의 <데몰리션>, 톰 포드의 <녹터널 애니멀스>, 봉준호의 <옥자>까지, 단순 언급만으로 숨이 찰 정도다. 불안에 빠진 인물의 독보적인 연기로 유명 감독들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왔다.
메시지가 분명한 영화는 싫다
스케일이 크건 작건, 제이크 질렌할의 작품 선택 기준은 단순히 규모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는 인터뷰에서 “메시지가 분명한 영화를 피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기준은 질렌할에게 있어 아주 중요하다. 그는 “메시지는 설교적인 경향이 있다. 나는 영화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설교하지 않는 영화도 때론 정치적 함의를 가질 때가 있다. 그에 대해선 중요한 사안에 대해 미국인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을 다룬 이야기를 택하는 편이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녹터널 애니멀스>를 함께한 톰 포드 감독은 질렌할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말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지나칠 정도로 역할에 대해 질문하던 제이크 질렌할은 심지어는 스스로의 경험을 투명하게 만들어 버릴 정도로 배역에 몰입했다”고 한다.
그가 놓친 배역들
질렌할의 필모그래피에서 쉽게 예상하기 힘들지만, 의외로 그는 슈퍼히어로의 유력 후보로 여러 차례 거론됐다. 대표적인 사례는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 맨>에서 피터 파커가 될 뻔한 것.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에서 브루스 웨인이 될 뻔한 적도 있다. 당시 그는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역할에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캐스팅은 결국 불발됐지만 그 스스로도 크게 원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질렌할은 “캐스팅이란 항상 이렇게 흘러간다”면서 “상투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나를 원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가 놓친 배역은 이것 말고도 더 많다. 상상해 보자.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 <설국열차>의 커티스, <아바타>의 제이크 설리 등. 프로도 역할은 오디션에 지원했다가 영국 발음을 준비하지 못해 탈락했고, 커티스와 제이크 설리 역할은 감독이 떠올린 첫 번째 인물이었다.
양성애자 소문에도 관대한 답변
제이크 질렌할의 과거 인터뷰들엔 흥미로운 답변이 많다. 특히 <브로크백 마운틴> 이후 동성애자와 양성애자들이 꼽은 ‘HOT 100’ 목록에서 1위를 차지할 만큼 인기를 얻었는데, 동시에 그가 양성애자라는 루머도 돌았다. 하지만 제이크 질렌할은 “양성애자라는 소문이 돈다는 건 어쩌면 아첨 같다. 더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배우라는 의미니까. 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는 모든 것에 대해 열려 있다. 성적으로 남성에게 끌린 적은 없지만,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그걸 두려워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