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옴니버스 <한낮의 피크닉> 세 번째 에피소드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의 임오정 감독, 이우정·공민정 배우, "연대가 곧 우정이란 생각이 든다"
2019-07-11
글 : 이주현
사진 : 백종헌
공민정, 임오정, 이우정(왼쪽부터).

“너 연락 드럽게 안 하는구나.” 동네 목욕탕에 가는 듯한 차림새로 느닷없이 옛 친구 집 앞에 나타난 영신(공민정)이 우희(이우정)에게 던지는 일종의 안부인사. 1년 동안 연락도 없이 지내던 친구에게 툭 던지는 타박 같은 말에서 이들의 치장 없는 우정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의 감독과 배우로 만난 임오정, 이우정, 공민정 세 사람에게서도 끈끈하게 연결된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단편영화 <거짓말>(2009), <더도 말고 덜도 말고>(2013), <쉘터>(2015)로 주목받은 임오정 감독. 단편영화 <애드벌룬>(2011), <서울생활>(2013)을 연출했고 <도약선생>(2010), <출중한 여자>(2014)에 출연한 배우이자 감독 이우정. <풀잎들>(2017), 웹드라마 <내일부터 우리는>(2017), 드라마 <아는 와이프>(2018)의 배우 공민정. 독립영화를 즐겨온 관객에겐 결코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이들이 단편영화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로 뭉쳤다. 세 사람의 필모그래피의 첫 번째 공통분모가 된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는 지난해 열린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인 옴니버스영화 <한낮의 피크닉>의 세 번째 에피소드.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며 혼자 사는 30대 여성 우희의 집에 남편과 싸우고 집나온 영신이 어느 날 문득 찾아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마음의 혹한기를 보내던 한 여성이 온기를 찾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외로운 줄도 모르고 살아가던 여성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깨닫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를 연출한 임오정 감독과 우희와 영신으로 출연한 이우정, 공민정 배우와 둘러앉아 나눈 이야기도 결국 30대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뻗어나갔다.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작업이 주는 확실한 기쁨, 좋아하는 일을 오래 지속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우리를 응원하는 이야기가 시종 끊이지 않았던 웃음소리와 함께 이어졌다.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를 찍은 뒤로 세분이 부쩍 친해졌다고.

=임오정_ 일례로, 며칠 전 이정아 촬영감독까지 포함해 네명이서 매실청을 담갔다. 예전에 만든 단편 <거짓말>에 주인공 영희로 출연했던 배우이기도 한데, 넷이 모여 하루 종일 매실 꼭지를 땄다.

=이우정_ 6월에는 매실청을 담가야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공민정_ 100일 뒤에 매실청 개봉하는데, 누가 담근 게 제일 맛있을지 내기도 했다.

임오정_ 매실청 개봉하는 날 모여서 매실주도 맛봐야 한다.

-서로의 이름이 ‘정’자로 끝난다는 공통점이 있다.

공민정_ 나는 한자로 고요할 정(靜)!

이우정_ 단정할 정(姃).

임오정_ 정사 정(政).

이우정_ 영문 표기도 다 다르다. Jeung, Jeong, Jung. (웃음)

-비슷한 시기 독립영화를 만들어온 사람들이라 서로를 모를 수 없었을 텐데, 세분의 첫 인연이 궁금하다. 서로의 존재를 처음 인지했던 때가 기억나는지.

임오정_ 원래 우정 배우와는 동네에서 좀 알고 지내는 사이다.

이우정_ ‘좀’ 아는 건 아니지 않나? (웃음)

임오정 감독

임오정_ 매우 잘 아는 사이다. 친한 언니 동생이자, 영화 작업과 관련해선 서로 위로가 되어주는 친구 사이. 처음 알게 된 건, 언급했던 이정아 촬영감독이 <거짓말>에 출연하면서였는데. 이정아 촬영감독과 이우정 배우가 워낙 친한 학교(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동기 사이라 그때 소개받아 만나게 되었다. 공민정 배우는 예전부터 같이 작업하고 싶은 배우여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고, 웹드라마 <내일부터 우리는>의 대본을 썼을 때 거기 민정 배우가 출연하면서 뒤풀이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이우정_ 나도 민정씨를 윤성호 감독님 있는 술자리에서 처음 봤다.

공민정_ 술자리에서 오며가며 봤지만 다들 낯가리는 성격이라 살갑게 못 다가갔던 것 같다. 이번 작업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오래된 친구처럼 언니들이 잘 받아줬고, 촬영이 끝나고도 계속 생각났다. 지금은 언니들을 잘 따르고 있다. ‘오늘 시간 어때?’ 하고 부르면 쪼르르 달려나간다.

-단편영화는 준비 기간이 짧아 친해지기가 쉽지 않을 텐데.

이우정_ 감독님이 배우들의 이야기를 잘 끄집어내는 편이다. 시나리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모였는데, 각자의 지난 연애사나 가정사 같은 걸 말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됐다. 민정씨와는 거의 초면이었지만 서로의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다 보니 오랜 시간을 공유한 친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임오정_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가 친구의 영화니까. 실제로 두 사람이 친밀해지는 게 목표였다. 시나리오와 관련해서도 각자의 개인적 경험이나 공감을 느끼는 부분을 활용하고 나누려는 편이다.

-솔직하고 밝은 영신, 상대에게 잘 맞춰주는 관찰자 같은 우희. 이처럼 성격이 서로 다른 두 친구의 이야기다. 두 배우의 사실적 연기 때문인지 실제 배우의 기질도 캐릭터를 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공민정_ 영신 같은 면도 있고 우희 같은 면도 있다. 평소의 기질이나 성향은 우희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사람들은 내게서 영신 같은 면을 보는데, 그건 내가 살아가려는 하나의 모습인 것 같다. 밝고 긍정적이고 유쾌한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그렇게 해내는 내 모습이 영신으로 보이지 않나 싶다.

임오정_ 마음속으로는 두 배우 모두 우희 후보였다. 그런데 우정이가 어지간히 우희 같았다.

이우정_ 누가 강하게 이야기하면 잘 휘둘린다. 감독님이 강하게 말하는 사람이 아닌데, “우희는 이우정 너야! 넌 선택권 없어!” 이렇게 터프하게 이야기해서 그만 휘둘렸다. (웃음)

-심리상담사를 찾아간 우희가 “헤매는 애들, 길 잃은 애들이 자꾸 나를 찾아와요”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웃집 옥상에 묶여 있는 개를 보고 “제자리에서 빙빙 돌고 있는 저 개가 꼭 저 같아요. 갇혀 있는데 갇힌 줄도 모르고”라는 이야기도 하고. 이 대사들이 시나리오 쓸 당시 감독님의 심리였던 것으로 아는데.

이우정_ 헤매는 애들이 자꾸 찾아온다는 이야기는, 거기서 출발한 거 아닌가? 예전에 서로 힘들 때 한강에 자주 나가 걸었는데, 한강공원 가는 길에 계속 길 잃은 애들을 만났다. 길 잃은 거북이까 만나면서, 이러다 우리 십이간지 다 만나겠네, 그런 얘길 했다.

임오정_ 그렇게 길 잃은 애들을 주인 찾아주고, 나는 다시 혼자 남고, 그러면서 ‘나 좀 외로운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계시인 것 같은데 무슨 계시인지는 모르겠고.

-워낙 친한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게 될 때 주저하게 되는 마음 같은 건 없나.

이우정 배우

이우정_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도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이 “잠깐 나와줘” 하면 가서 찍었던 게 대부분이다. 그런 불편함은 없었는데, 다만 이 영화를 찍을 당시 내가 아무 의욕이 없었다. 그게 문제였다. 나도 감독으로서 장편을 찍고 싶은데 계속 어그러지고, 헛발질하는 느낌만 들고. 그런 감정이 절정이던 때 제의를 받았다. 얼마 전에 이 영화를 다시 보는데 내 얼굴이 부어 있더라. ‘우울증 부기’라고 하나? 저때 진짜 힘들었나구나 싶더라. 아무튼 감독님이 영화에 담고자 한 감정이 어떤 건지 알겠는데,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겁이 났다. 물론 임오정 감독님이 배우와 비전문 배우가 함께 어우러지는 작품을 전에도 찍었고, 그런 연출을 잘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나를 맡길 수 있었다.

-연기하는 걸 좋아하나보다.

이우정_ 같이 연기하는 배우들이 내 눈을 보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던져줄 때, 그 경험이 특별하다. 보통은 누군가의 연기를 카메라 너머로만 보게 되는데 직접 연기를 하면 그 에너지를 생으로 받게 된다. 이번 작품에선 민정씨가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던져줬다. 영광이었다.

공민정_ 마찬가지다. 서로가 진짜 그 상황에 들어가 소통하고 있다고 느낄 때, 무척 힐링이 된다. 캐릭터가 곧 나이기도 하니까. 연기를 하면서 진짜 그 순간 진심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저 말하고 들어주고 마주보고만 있어도 진짜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묘한 감정을 느낀다. 이번 작품에선 그런 순간이 정말 많았다.

-배우를 캐스팅해야 하는 입장에서 어떤 배우, 어떤 사람에게 끌리나.

임오정_ 글쎄.

이우정_ 어헛, 이렇게 양옆에 두 배우를 앉혀놓고. (웃음)

임오정_ 직관인 것 같다. 직관적으로 매력 있는 사람을 찾으려고 한다. 매력 있는 사람은 카메라 앞에 데려다놔도 그 매력을 발휘하게 되고, 나는 그 덕을 많이 보는 타입이다. 전문 배우가 아닌 친구들에게선 그 매력이 더 살아나는 것 같고, 배우 중에서도 자기 색깔이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 재능을 얻어 쓴달까.

-<거짓말>의 이채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의 박소담, <쉘터>의 박주희 등 실제로 좋은 배우들의 남다른 떡잎을 일찍 발견해왔다.

임오정_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솔직하다는 거다. 여기 있는 배우들도 어마어마하게 솔직하고.

공민정_ 솔직함이 과해, 과해. (웃음)

임오정_ 만나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 사람의 성격과 특징이 보인다. 실제로 캐스팅할 땐 배우들의 조합도 많이 고려하는 편이다. 두 배우가 실제로 친구가 될 수 있을지 어떤지.

-현장에서 경험한 임오정 감독은 어땠나.

이우정_ 마음으로 연출하는 감독이다. (웃음) 음성에 힘이 있다. 진심으로 와닿게 말하는 힘. 그 말을 들으면 꼼짝 못하게 된다.

공민정_ 열려 있는 사람이다. 또 배우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눈치 보게끔 하는게 아니라 편하게 계속 시도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정말 마음으로 연출하는 감독이다. (웃음) 진짜로 여겨지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진짜인 것 같은 순간이 나와야만 오케이를 한다. 진짜인 순간이 뭘까, 영화에서의 진짜라는 것 자체가 모호한데, 그래도 느낄 순 있다. 진짜인 순간이 담긴 영화를 좋아하는데 임오정 감독님의 영화엔 늘 그런 순간이 있다.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의 우희와 영신을 보면서 각자의 삶과 우정을 돌아보며 공감한 30대 여성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임오정_ 촬영 첫날 상담실 장면을 찍는데, 우정 배우가 “제자리에서 빙빙 돌고 있는 저 개가 꼭 저 같아요”, 그 대사를 하면서 울컥했다. 그때 현장에 있던 30대 여성들, 나와 촬영감독이 흐느끼며 울었다. 흑흑. 너무 내 얘기처럼 와닿아서.

공민정_ 그거 감독님 얘기 맞는데. (웃음)

임오정_ 다른 스탭들이 어리둥절해했다. 저 사람들 왜 울지? (웃음)

이우정_ 촬영 전날 집에서 혼자 연기 연습을 하는데, 그 대사를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났다. 그런데 내가 아는 감독님은 담담한 스타일이라서 촬영장 갈 때 물어봤다. 혹시 그 장면 찍다가 눈물 나면 어떡해요? 편하게 연기하라고 하셨지만 ‘울면 안된다’는 생각이 컸다. 우는 건 촌스러운 거란 생각에. 긴장을 많이 한 채 찍었고 어쩌다보니 눈물이 나버렸다. 그런데 끝나고 나니 감독님도, 촬영감독님도 울고 있더라.

임오정_ 민정 배우도 현장에 있었으면 울었을 거야.

공민정_ 가끔 연기하다 보면 자기 얘기를 할 때가 있다. 자기 목소리를 내게 될 때는 그 감정에 이입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진짜로 말할 수밖에 없고, 그걸 보는 사람도 진짜로 느낄 수밖에 없고.

임오정_ 우희와 영신 모두 외롭고 헤매는 사람인 건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영신이 짠했다. 영신이 이해받으려고 계속 짖어대고 낑낑대는 강아지라면 우희는 맴맴 도는 강아지 같다.

-영화를 두 번째 볼 땐 영신의 외로움이 눈에 들어오더라. 우희의 집에서 자던 첫날 영신이 잠꼬대를 하는데, 그때 한 말은 뭔가.

임오정_ “내가 싫다고 했잖아!” 원래는 ‘엄마 엄마 하면서 끙끙거린다’였다.

공민정 배우

공민정_ 그런 사람을 봤다. 잠꼬대를 하는데 너무 또렷하게 평소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 아주 또박또박 말을 하더라. 그때 저 캐릭터를 나중에 꼭 써먹어야지 생각했던 적이 있다. 아무튼 이번 영화에서 그러진 않지만, “내가 싫다고 했잖아”는 영신이 남편한테 쌓인 스트레스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남편을 향해 할 수 있는 말들을 생각하다 떠올린 말이다.

임오정_ 영신이 우희를 찾아갔다는 것 자체가 영신이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친정에 갈 수도 있고 다른 데 갈 수도 있는데, 오랫동안 연락 안 하고 지낸 친구를 찾아간다. 지금은 소원하지만 따뜻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친구를.

공민정_ 어쩌면 영신은 그렇게까지 수다스럽고 밝은 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옛 친구나 동창을 만나면 그때의 내 모습이 나오지 않나. 그래서 우희에게도 그렇게까지 퍼부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어딘가에서 살아가는 지금의 영신은 그렇게 말이 많거나 감정 표현을 솔직하게 하는 사람이 아닐 수 있다. 지금의 나처럼.

-네이버 인디극장 페이지에 실린 임오정 감독의 인터뷰에 우정에 관한 인상적인 얘기가 있었다. “제가 생각하기에 여성들의 우정은 가장 복잡하고 다양한 층위의 감정들을 다룰 수 있는 주제인 것 같아요. 그 안에 애틋한 마음, 뜨거운 연대, 뾰족한 질투, 유치한 집단논리, 이해와 몰이해의 거리감 따위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드러나 관계의 본질적 문제를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여성들의 우정은 의리와 배신의 서사로만 표현되기 힘든 복잡한 구석이 있다.

공민정_ 우정? 우정? 우정…? 요즘은 연대가 곧 우정이란 생각이 든다. 친구란 늘 옆에 있는 존재라 생각했는데, 요즘 들어서 여자 친구들과 연대하는 일이 많이 생겼다. 예전엔 친구들 중에 남자도 많았고 남자 친구도 많이 만났는데 30대가 되니까 남자 친구들은 거의 사라지고 여자 친구가 많아졌다. 여자 친구들을 만나는 게 재밌고 편하다. 남자 친구들이 더 편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우정_ 친구가 없는 삶은 생각해본 적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정의 의미나 기준은 계속 바뀌는 것 같다. 예전엔 친구 사이 의리의 기준도 높아서 마음 아파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기준이 많이 내려갔다. 그런데도 서로의 기준이 다르면 자연스럽게 떠나가기도 하고 또 새롭게 찾아오기도 하고. 우정의 형태는 계속해서 변할 텐데, 분명한 건 살아가는 데 친구가 있어야 한다는 거다.

임오정_ 남자가 주인공인 시나리오도 많이 썼지만 이상하게 그런 건 안 찍게 되더라. 여자들이 나오는 이야기가 더 재밌다. 이게 보편적 재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만들 영화가 어떤 이야기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여성의 우정과 여성 서사에 여전히 관심이 많다.

공민정_ 아직까지 상업영화에선 좋은 여성 캐릭터를 만나기가 어려운데, 여성이 주인공인, 여성의 시선이 중심인 영화가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세상도 변할 거다!

-임오정, 이우정 두 감독은 단편영화를 만들어 일찌감치 주목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장편 데뷔를 하지 못했다. 혹 비슷하게 영화 일을 시작한 남자 동료들에 비해 기회가 덜 주어진다고 느낄 때도 있나.

임오정_ 그 감정은 굉장히 복잡한 것 같다. 그들에게 더 기회가 가는 것 같기도 한데 동시에 ‘나는 얼마나 열심히 했나’ 반성과 자학도 하고, ‘대체 얼마나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거지?’ 억울해하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웃음) 내가 단편영화를 만들고 영화제에 다닐 때 수많은 독립영화 감독들을 만났는데 그중에 ‘이 사람 영화, 다시 보고 싶다’ 하는 감독의 비율을 따져보면 여자감독이 훨씬 많았다. 그들의 영화를 못 보고 있는 게 아쉽다. 그런 생각 자주 한다. 그분들 뭐하지? 단편영화로 주목받은 그 수많은 여자감독들 다 어디 갔지? 이 영화를 찍기 전까지는 나 역시 그렇게 사라진 감독 중 하나였을 거다. 앞서 언급한 이정아 촬영감독도 재능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이우정 감독의 <애드벌룬>도 너무 좋은 영화인데 쉽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했고. 공민정 배우도 더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데 아쉬움이 있다.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는 그런 우리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서 찍은 영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업하며 서로 더 끈끈하게 연대했던 것 같다.

이우정_ 개인적으로 이정아 촬영감독이 정말 오랜만에 촬영하는 걸 봐서 좋았다. 이정아 촬영감독의 마지막 작품이 아마 <이월>(2017)을 만든 김중현 감독이 한국영화아카데미 다닐 때 찍은 중편이었을 거다. 이정아 촬영감독도 영화아카데미 촬영 전공이어서.

공민정_ 그 작품 <날 놓아줘>(2010)일 텐데. 거기 내가 출연했다. 그게 벌써 10년 전이니까, 당시만 해도 여성 촬영감독이 굉장히 드물었다.

이우정_ 이렇게 보니까 꼭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 같다. 결혼해서 살고 있던 친구(이정아 촬영감독) 부르고, 우울증으로 누워 있는 사람 불러내서 영화 찍고. (웃음)

임오정_ 이렇게 일 잘하는 애가, 이렇게 영화 좋아하는 애가 쉬고 있는 게 억울했다. 사회적으로 불합리하고 어떻고를 따지기 이전에 나 같은 성격은 자기를 먼저 탓하고 침잠하곤 하는데, 운이 좋아 이번 기회에 영화를 찍으면서 그런 상황을 조금이나마 극복할 수 있었다. 다른 분들에게도 이런 기회가 더 많이 돌아갔으면 좋겠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기쁜 소식은 우정 감독이 먼저 물꼬를 트게 됐다.

이우정_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원을 받아 지금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저예산 장편영화고, 이제 곧 스탭도 꾸리고 캐스팅해서 가을쯤 촬영하려고 한다. 여고생들의 이야기다.

임오정_ 지난해까지만 해도 우리가 다들 꽉 막혀 있는 상태였는데, 조금 있으면 우정이의 진짜 살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 같다.

공민정, 이우정, 임오정(왼쪽부터).

-계속 작품을 만들고 살아남아야 한다.

임오정_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때도 지인 찬스 쓰듯이 도움을 많이 받았다. 영화하는 친한 친구들을 현장에서 다 만날 수 있었다.

이우정_ 민정씨가 그랬다. 현장에 죄다 감독이라고. 놀러오거나 도움 주는 사람이 다 감독이라고.

공민정_ 신기했다. 저 감독님을 여기서 뵙네. 저 감독님은 집을 빌려주네. (웃음) 나는 그저 눈앞에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싶다. 예전에는 막연한 것들을 꿈꾸기도 했는데, 지금은 잘된다는 것의 기준이 그때와 달라졌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꾸준히 했으면 좋겠다. 그게 가장 큰 목표고 꿈이다. ‘한방’ 이런 건 모르겠다. 동료들 잘 만나서 재밌게 촬영하는 것, 어쩌면 그게 큰 꿈이다. 아, 이우정 감독님 촬영 들어가면 뭐든 일 도와주고 싶다.

임오정_ 우리 모두 출동해야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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