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슈즈>는 동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모티브로 해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한국 애니메이션이다. 클로이 머레츠, 샘 클라플린 등 해외 유명 배우들이 목소리 출연하고, 디즈니 스튜디오의 수석 애니메이터로 유명한 김상진 감독이 캐릭터 디자인과 애니메이션 감독을 맡는 등 <레드슈즈>에 참여한 인물의 면면을 보면 세계 시장을 겨냥한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의 야심을 확인할 수 있다. 알고 보면 더 재밌는 <레드슈즈>의 이야기들, 탄생 과정과 작품의 매력을 정리했다.
◆ 10년 넘게 공들인 글로벌 프로젝트 ◆
모든 영화 만들기의 과정이 그렇지만, 특히 모든 국내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의 제작과정이 그렇지만, <레드슈즈> 또한 오랜 시간 많은 이들의 노력과 정성과 기술과 자본이 집약돼 완성된 작품이다. <원더풀 데이즈>(2003)의 시각효과를 담당했고, 2000년대 초반 국내에서 3D 장편애니메이션 <에그콜라>를 준비했던(결국 미완의 작품으로 남았다) 홍성호 감독은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 <레드슈즈>를 제작하기 위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로커스를 설립한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인 2009년의 일. 그림 형제의 동화 <백설공주>를 모티브로 한 시놉시스 <일곱난장이>가 2010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레드슈즈>의 영화화 추진 엔진에 불이 켜진다. 하지만 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했다. 시나리오 개발에만 5년. 기억을 다 할 수 없을 만큼 여러 버전의 시나리오가 있었다.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최적의 이야기를 찾아 나가는 과정에선, 초록색 난쟁이가 된 일곱명의 왕자가 자신들의 저주를 풀어가는 내용이 중심인 시나리오도 있었고, 현실 세계의 여자주인공 보니가 백설공주가 사는 동화의 세계로 빠져들어가는 내용도 있었다. <레드슈즈>는 애초부터 해외 시장을 겨냥한 글로벌 프로젝트이자 22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다. 전세계 관객에게 친숙한 캐릭터와 이야기를 활용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했다는 이야기다. 주인공이 한국어가 아닌 영어를 구사하는 것도 해외 시장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디즈니와 픽사의 애니메이션처럼 전 연령대의 관객에게 소구할 수 있는 보편적이지만 개성 있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제작진의 목표는 <레드슈즈>에 선명히 새겨져 있다.
◆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슈렉>을 만났을 때 ◆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아름답지?” 진실을 말하는 마법 거울의 대답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림 형제의 유명한 동화 <백설공주>와 <백설공주>를 원작으로 한 디즈니스튜디오 최초의 장편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는 지금까지도 새롭게 변주되곤 하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애니메이션 <레드슈즈> 역시 백설공주, 일곱 난쟁이, 젊음과 미모에 집착하고 마법을 쓰는 왕비까지,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들을 영화에 불러낸다. 그리고 여기에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슈렉>(2001)의 설정을 더한다. <레드슈즈>에 등장하는 일곱명의 난쟁이는 원래는 잘생긴 일곱명의 왕자였다. 하지만 저주를 받아 초록색의 난쟁이로 변한다. 일곱명의 왕자들은 슈렉의 초록색 피부만을 이식받은 것이 아니다. 해가 지면 외모가 변하는 피오나 공주처럼, 왕자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 닿지 않을 때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왕자들의 저주를 푸는 해독제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공주와의 키스. 그리고 이들 앞에 빨간 구두를 신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공주’ 레드슈즈가 나타난다. 하지만 레드슈즈 역시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으니, 그건 마법의 빨간 구두를 신었을 때와 벗었을 때, 비포와 애프터가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
<레드슈즈>는 주제 면에서 <슈렉> <미녀와 야수>와 비슷한 범주에 속하는 영화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진짜 나의 모습이 충돌할 때 던지게 되는 ‘무엇이 진짜 나인가?’와 같은 정체성에 관한 질문에서부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까지 <레드슈즈>는 두루 담고 있다.
◆ 패러디와 모티브 ◆
<레드슈즈>의 모티브가 된 작품은 <백설공주>와 <슈렉>만이 아니다. <레드슈즈>의 캐릭터들은 대체로 유명 동화와 애니메이션에서 차용됐다. 일곱 왕자/일곱 난쟁이 캐릭터가 모두 그러하다. 레드슈즈의 사랑을 받기 위해 경쟁하는 멀린과 아더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아서왕 전설> 속 마법사 멀린과 아서왕 캐릭터의 변형이라 할 수 있다. 부적을 이용해 마법을 부리는 멀린은 마법사로서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고, 멀린을 라이벌로 생각하는 힘센 아서는 전설의 검 엑스칼리버를 뽑아 자신의 힘을 증명하고자 하는 캐릭터다. 외모 꾸미기에 관심이 많아 밤이 되면 얼굴에 팩을 붙이고 거울을 무기처럼 들고 다니는 잭은 <잭과 콩나무>를 바탕으로 창조된 캐릭터며, 여자의 마음을 달달한 도넛과 팬케이크로 녹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스는 <헨젤과 그레텔>의 헨젤을 참조한 캐릭터다. 남은 세명의 왕자는 세 쌍둥이 피노, 노키, 키오.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내는 이들은 두말할 것 없이 <피노키오> 패러디의 산물이다.
◆ 스노우 화이트 / 레드슈즈 ◆
화이트 왕국의 공주 스노우 화이트는 새엄마이자 왕비 레지나에 의해 아버지를 잃고 왕국에서 쫓겨난다.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레지나는 마법의 빨간 구두가 열리는 사과나무를 심지만, 아름다움을 선사해줄 빨간 구두는 스노우 화이트의 발에 들어간다. 빨간 구두를 신었다가 몰라보게 날씬해지고 예뻐진 스노우 화이트는 일곱 난쟁이들에게 자신이 ‘레드슈즈’라는 이름을 가진 공주라고 말해버리고, 벗고 싶어도 쉽게 벗겨지지 않는 구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레드슈즈와 스노우 화이트로 이중생활을 시작한다.
<레드슈즈>의 주인공은 레드슈즈지만, 레드슈즈는 영화에서 가장 평범한 축에 속하는 캐릭터다. 그건 레드슈즈가 그 스스로 성장하고 변화하는 주인공이 아니라 타인의 성장과 변화를 이끄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통해 성장하는 건, 그 자신이 잘생겼기 때문에 ‘얼평’을 당연히 여기던 멀린이다. 반면 레드슈즈는 평범한 공주다. 자아가 강한 전사나 투사형 인물도 아니고, 특별한 초능력을 갖추지도 않았고, 원대한 꿈을 품은 인물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외모와 소박한 꿈과 정직한 마음을 지닌 보통의 사람. 그런데 스노우 화이트가 레드슈즈로 변신하면 상황이 좀 달라진다. 레드슈즈에겐 언제나 ‘예쁘다’는 말이 따라 붙는다. 그것은 곧 레드슈즈를 설명하는 강력한 장치가 되는데, “겉모습과 진짜 모습이 다른 기분”을 느끼는 레드슈즈의 이야기는 역시나 자신의 진짜 모습을 두고 고민하는 멀린의 이야기와 만나 주제를 심화한다.
◆ 목소리 출연 배우 ◆
<레드슈즈>에 목소리 출연한 배우들의 이름만 보면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영화인가 하고 착각하기 쉽다. 그만큼 클로이 머레츠와 샘 클라플린의 이름은 <레드슈즈>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클로이 머레츠는 레드슈즈/화이트 스노우의 목소리를 연기한다. 10대 초반에 <킥 애스: 영웅의 탄생>(2010), <렛 미 인>(2010) 같은 작품을 찍으며 강렬한 인상을 안겨준 클로이 머레츠는 어느덧 출연작만 50편 가까이 되는 좋은 배우로 성장했다. <서스페리아>(2018)와 <마담 싸이코>(2018) 등 최근작에서의 활약도 나무랄 데 없다. 그런 클로이 머레츠가 <레드슈즈>의 메시지에 공감해 목소리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일곱 왕자의 리더이자 레드슈즈를 사랑하게 되는 멀린의 목소리는 샘 클라플린이 연기한다. 샘 클라플린은 로맨스영화 <미 비포 유>(2016)와 <헝거게임> 시리즈로 잘 알려진 영국 출신 배우. 재밌는 건 샘 클라플린이 앞서 <백설공주>를 완전히 새롭게 각색한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2012), <헌츠맨: 윈터스 워>(2016)에 출연한 적 있다는 것. 이외에도 레지나 여왕의 목소리는 폴 버호벤의 <쇼걸>(1995), 오우삼의 <페이스 오프>(1997)로 유명한 지나 거손이 맡았고, 마법 거울의 목소리는 디즈니의 <쿠스코? 쿠스코!>(2000) 등 여러 애니메이션에서 목소리 출연한 바 있는 패트릭 워버턴이 맡았다.
◆ 한국인 최초 디즈니 수석 애니메이터 김상진 외 스탭들 ◆
1995년 디즈니 스튜디오에 입사해 20년간 애니메이터, 캐릭터 디자이너로 활약한 김상진 감독이 <레드슈즈>에 캐릭터 디자인과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참여했다. 김상진 감독은 <라푼젤>(2010), <빅 히어로>(2014), <겨울왕국>(2014), <모아나>(2016) 등의 캐릭터 디자인을 맡았고, 한국인 최초로 디즈니 수석 애니메이터가 된 인물이다. 그런 김상진 감독의 합류는 <레드슈즈> 제작에 큰 힘이 되고도 남았다. 한편 <레드슈즈>의 음악은 미국의 영화음악 작곡가 제프 자넬리의 손에서 탄생했다. <디스터비아>(2007),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2017),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2018) 등의 음악감독인 제프 자넬리는 한스 짐머 사단의 일원으로 여러 영화음악 작업에 참여해온 작곡가다. 더불어 <미녀와 야수>(1991), <알라딘>(1992), <라이온 킹>(1994)의 애니메이터이자 애니메이션 <뮬란>(1998)의 감독인 토니 밴크로프트도 <레드슈즈>에 보이스 디렉터로 참여했다. 이처럼 <레드슈즈>의 스탭 크레딧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영화인들의 이름으로 다채롭게 채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