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을 관람한 938만명 중 116만명(7월 9일 기준)은 더빙으로 영화를 관람했다. 극장에 걸린 실사 더빙판의 상영관이 확대되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메가박스에 따르면 <알라딘> 더빙판은 재관람률이 4.1%, 자막영화에 비교해 더빙 관객 점유율이 15% 높다. 어린이 관객뿐 아니라 성인 관객이 <알라딘> 더빙판을 선택한 것은 흥겨운 노래와 어색함 없이 어우러지는 연기의 공이 컸다. 자연스러운 더빙으로 알라딘, 자스민에게 한국어를 불어넣은 것은 성우 심규혁과 사문영이다.
-7월 6일 성우 팬들과 <알라딘> 상영회를 열었다. 상영회도 흔치 않은 이벤트지만 실사영화 더빙판에 관객이 100만명 이상 드는 것도 이례적이다.
=심규혁_ 3주 전에 사문영 성우와 함께 <A Whole New World>를 부른 커버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는데, 그날 팬카페로부터 상영회를 열자는 전화를 받고 추진하게 됐다. 사실 상영회를 열 때까지 영화가 계속 영화관에 걸려 있을지 몰랐다. (웃음)
=사문영_ 더빙판 N차 관람객도 많더라. 상영회에서 다 같이 영화를 보니 새로웠다.
-<알라딘>은 연기는 성우가, 노래는 뮤지컬 배우인 신재범·민경아가 했다. 대사와 노래를 다른 사람이 한 셈인데 위화감이 없더라. 서로 목소리 톤을 맞추는 과정이 있었나.
사문영_ 나는 내 목소리를 아니까 노래와 연기 목소리가 다르다 싶었는데, 알라딘은 두 사람 목소리가 같아서 놀랐다. 규혁씨한테도 “너무 비슷해”라고 하니까 규혁씨는 “난 잘 모르겠는데” 하더라.
심규혁_ 어머니도 “노래도 직접 했냐”고 하셨다. 아무래도 대사 톤을 조절하는 일은 성우가 더 전문적이라 어떤 장면은 노래 톤에 맞춰서 수정 녹음을 하기도 했다. 특히 알라딘 캐릭터는 노래 중간에 대사가 나올 때도 있어서 노래와 연기가 자연스러워야 했다.
-사문영 성우는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했다. 노래도 직접 하고 싶었을 것 같다.
사문영_ 성우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 이미 뮤지컬 배우 오디션이 끝난 뒤였다. 관심이 있어서 “노래는 누가…”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봤는데, 그 자리에서 <Speechless> 악보를 보여주시더라. 자스민 노래 중에 그렇게 어려운 곡이 숨어 있을지 몰랐다. 그 어려운 곡을 완벽하게 소화한 분이 있고, 그게 민경아 배우였다. 나중에 녹음된 걸 듣고 감탄했다. 기회가 되면 커버를 해서 올려볼까 생각 중이다.
-성우들은 보통 오디션을 통해 작품에 참여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알라딘>은 오디션 과정이 어땠나.
사문영_ 캐릭터의 주요 장면 샘플을 받아서 연기했는데, 내가 받은 건 <Speechless> 다음에 하킴에게 외치는 대사였다.
심규혁_ 내 경우는 알라딘이 자파에게 “그래봤자 넌 2인자야”라고 부추기는 장면이었다. 배역이 확정된 이후에는 영상과 대본을 받아서 시사를 하는데, 극장에 걸리는 작품들은 보안 때문에 녹음실에서 시사를 한다. 짧은 시간 안에 영화와 대본을 다 봐야 하니 굉장히 집중해서 봐야 했다.
-알라딘, 자스민 녹음을 따로 진행해서 서로의 연기를 극장에서 처음 봤다고. 따로 녹음하는 이유가 있나.
심규혁_ 극장용 영화는 녹음 후에 음성 크랙을 나누는 작업을 하는데 기술적으로 소리가 겹치면 안 된다. 같이 녹음하면 감정은 맞을지 모르지만 대사 길이 때문에 수정을 할 때 다른 성우가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더빙은 한국어 대사를 캐릭터의 입이 움직이는 길이에 맞춰야 하는 기술도 중요하다.
-대본을 받은 후 각자의 캐릭터의 목소리 톤을 어떻게 잡았는지.
심규혁_ 알라딘은 한마디로 ‘사랑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스민을 사랑하게 되면서 꿈을 갖게 됐는데 더 욕심 부리지 않고 자기의 마지막 소원마저 친구 지니를 위해 사용한다. 야심보다는 우정과 사랑이 중요한 순수한 면, 그리고 연인 앞에서는 멋있어지는 부분을 목소리로 표현하려 했다.
사문영_ 그래서 알라딘과 자스민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자스민은 공주이지만 속에서 왕의 피가 끓어오르는 강인함을 가진 여자다. 그런 멋진 면을 잘 표현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심규혁 성우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스파이더맨, <언어의 정원>의 타카오, <괴물의 아이>의 렌,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치아키 등 소년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다.
심규혁_ 성우가 되기 전에는 목소리 톤이 높은 게 콤플렉스였다. 어릴 때에는 목소리 굵은 가수 노래만 따라 부르면서 바꾸려고 노력도 했었다. 지금도 기본 톤은 안 바뀌었는데, 성우 일을 하면서 발성을 다양하게 쓸 수 있게 개발돼 내 색깔이 생긴 것 같다.
-사문영 성우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진 어소, <터미네이터>의 사라 코너, 게임 <오버워치>의 애쉬 등 여전사나 진취적인 캐릭터를 주로 맡아 연기했다. <알라딘>의 자스민 역시 이전의 디즈니 공주들과는 차별화된 캐릭터다.
사문영_ 내 목소리가 차가운 면도 있으면서 딱 부러지는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청순하거나 귀여운 캐릭터는 오디션을 봐도 잘 안 되더라.
심규혁_ 술탄 정도는 돼야. (웃음)
사문영_ ‘왕이 될 거야’ 하는 야망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내 목소리 톤과 맞는 것 같다.(웃음) 자스민을 연기할 때 그래서 좋았다. 하킴에게 쏟아부으면서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장면을 연기할 때에는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게 느껴지더라. 연기할 때 쾌감이 있었다. 이 장면의 자스민을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한국 배우 수현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한국 배우 목소리 연기를 하는 게 부담이었을 것 같은데.
사문영_ 연기하러 가서도 ‘이걸 더빙하는 게 맞나요?’라고 물어봤다.(웃음) 극중 수현씨가 한국어로 말하는 장면도 있어서 한국어를 한국어로 더빙해야 했다. 최대한 수현 배우의 말투와 목소리를 비슷하게 하면서도 다른 성우들과 이질감 없이 연기하는 게 어려웠다.
-과거 TV시리즈를 기억하는 시청자들은 더빙을 ‘과장됐다’고 오해하지만, <알라딘> 같은 최근의 더빙은 생활 연기에 가깝다.
사문영_ 그게 요즘 추세다. 정말 많이 달라졌다. 이번에 애니메이션 <알라딘>(1992)을 다시 봤는데, 지금과 연기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더빙도 시대를 반영해서 달라진 것 같다.
심규혁_ 예전 애니메이션은 성우가 오디오만으로 감정을 보여줘야 하니까 TV 배우처럼 연기하면 전달이 잘 안 되기도 했다. 과거 이미지만으로 ‘더빙은 좀 과장됐어, 일상 연기가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는 분들에게 지금의 더빙을 알릴 수 있는 그런 연기를 하고 싶다. 생활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더 많은 역할들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TV시리즈 더빙이 줄어든 대신 다른 분야의 일이 더 다양해진 것 같다. 예를 들어 게임이나 <러브앤프로듀서> 같은 롤플레잉도 전부 성우 목소리가 필요하다.
사문영_ 놀이공원에서 나오는 멘트도 성우 목소리고, 밥솥의 “취사가 시작됩니다”나 내비게이션, 구글, 휴대폰 연결음도 성우 목소리다. 생활 곳곳에 성우들의 목소리가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 역시 “현미 취사가 시작됩니다”도 녹음해봤다. (웃음)
심규혁_ 충무아트센터에 공연 보러 가면 내 목소리로 안내가 나온다.(웃음) 아기들 장난감 속 목소리나 은행 ARS 연결음도 성우 목소리다. 일이 줄었다고만 볼 수 없는 게, 예를 들어 <알라딘>처럼 실사 더빙 영화가 극장에 걸리는 경우는 과거에도 흔치 않았다. 지금은 디즈니의 방침 때문에 기회가 생긴 경우다. 그리고 해외 드라마나 영화를 넷플릭스에서 더빙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넷플릭스에서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엘리오 역할을 더빙했다.
사문영_ 맞다. 넷플릭스가 지금은 실사 더빙 산업을 받쳐주고 있다.(웃음) 미국 드라마 시리즈를 할 기회가 많지 않은데, 넷플릭스 드라마 <하우 투 겟 어웨이 위드 머더>에서 로렐 역할을 하는데 재밌더라. 얼마 전엔 넷플릭스 드라마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라는 청불 시리즈도 더빙했다. 일본의 포르노 감독인 무라니시를 다룬 시리즈인데 1분 넘는 정사 장면이 있어서 시사도 차에서 혼자 했다. (웃음) 다양한 캐릭터나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건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