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리 애스터 감독에 의하면 타인의 고통에 공감 못하는 자는 유죄다. 갑작스런 비극으로 가족 전원을 잃은 <미드소마>의 대니(플로렌스 퓨)에게 남자친구 크리스티안(잭 레이너)은 어정쩡한 태도를 취한다. 애정은 식었지만 악역도 질색인 비겁한 남자는 연인 관계는 유지하면서 대니의 감정은 외면한다. 대니는 무너져가는 관계를 붙들고 둘 사이의 문제를 모두 자기 탓으로 돌리게 된다. 그해 여름 그들이 초대받은 스웨덴의 외딴 마을은 출생부터 죽음까지 공유하는 강력한 공동체로, 대니가 한동안 잊었던 소속감과 위안을 느끼게 한다. 이야기의 클라이맥스에서 배신을 목격한 대니는 구토하고 오열한다. 울타리처럼 대니를 에워싼 마을 여자들은 대니와 호흡을 맞춰 통곡하며 울음의 코러스를 연출한다. 같이 울어주기. 그것이야말로 크리스티안이 대니에게 결코 주지 못했던 위로다.
07/04
마블이 크리에이티브를 가져온 두 번째 스파이더맨 솔로 무비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이하 <파 프롬 홈>)은 부제가 말하듯 <스파이더맨: 홈커밍>(2017, 이하 <홈커밍>)과 대구를 이룬다. 전작에서 피터 파커(톰 홀랜드)는 어벤져스를 동경하고 임무를 달라고 보채는 워너비였는데 결국 학교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어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영화에서 소년은 다시 타노스와의 전투에 끌려들어왔고, 나름 산전수전을 겪은 <파 프롬 홈>의 피터는 평범한 10대 생활이 그립다. “너는 우리를 지켜야지!”라고 외치는 단짝 친구 네드도, 청한 적 없는 임무를 덜컥 맡기고 제대로 못했다고 책망하는 닉 퓨리도, 피터는 부담스러울 뿐이다. 변화의 원인은 피터를 어벤져스에 영입한 아이언맨/토니 스타크의 부재다. 마블 스튜디오는 소니의 스파이더맨을 기존 MCU에 편입시키는 고리로 토니와 피터의 유사 부자관계를 설정했다. 소니의 <스파이더맨> 영화에서 그토록 중요했던 피터의 보호자 벤 아저씨는 마블판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마블의 스파이더맨에게 최고 중요한 정체성은 생계형 지역구 히어로가 아니라 아이언맨 주니어다. 거미의 감각과 그물 치는 능력으로 뉴욕 시민을 돕던 피터는 MCU로 넘어와 토니가 선물한 나노 테크 슈트로 갈아입는다. 하늘을 날고 다양한 가제트를 무기로 쓰는 스파이더맨은 리틀 아이언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니 스타크가 전사한 다음인 <파 프롬 홈>에서도 아이언맨의 이미지는 지배적이다. 피터는 유럽 수학여행길에 기내영화로 아이언맨 추모 다큐멘터리를 보고, 오직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만 어울릴 법한 선글라스(알고 보면 스타크 방위 시스템의 제어장치다)를 물려받으며, 전투 도중에 토니의 환영과 맞닥뜨린다. <홈커밍>과 <파 프롬 홈>은 악당마저 ‘메이드 바이 스타크’다. 전편의 악역 벌처(마이클 키튼)는 스타크 산업과 미국 정부가 대형 계약을 체결하는 바람에 밀려난 중소 기업인이었고, <파 프롬 홈>은 토니에게 가려 공을 인정받지 못한 스타크 기업 퇴직자들을 적대 세력으로 불러낸다. 생전의 토니는 그들에게 스톡옵션으로도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준 게 분명하다.
<파 프롬 홈>은 시의적절한 테마를 다룬다. 가짜 뉴스의 범람, 재앙의 본질보다 영웅 소비에 집중하는 군중심리, 살상용 드론의 위험성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정작 MCU의 장기 서사로서 중요한, 피터가 아이언맨의 유산을 이어받는 과정은 나이브하게 그려졌다. 토니 스타크는 막대한 파워만큼 결함도 큰 히어로로서 그의 유산은 오류를 포함한다. 과거 스타크 기업이 팔아치운 무기는 세계 곳곳에서 악한 목적에 봉사했고,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실수를 덮으려는 발명은 더 큰 재난을 부르기도 했다. 슈퍼히어로의 활동을 국가권력의 통제 아래 두는 문제를 두고 캡틴 아메리카와 빚은 갈등도 미결 상태다. 그럼에도 <파 프롬 홈>의 피터 파커가 계승하려는 아이언맨은 대중이 먼발치에서 기리는 천재 재벌 영웅의 이미지와 별로 다르지 않다. 피터 잘못은 아니다. 소년은 토니 스타크를 증오하는 빌런들에게 논점을 들어볼 기회도 없었다. 그저 신뢰와 애정을 베풀어준 아저씨를 존경하고, 전용기를 몰고 와 위기에서 구해준 해피 아저씨(존 파브로)로부터 화려한 장비 지원을 받아 투지를 다잡는다. 스파이더맨이 MCU의 차기 중심인물로 유력하다고 볼 때, 피터는 참으로 갈 길이 멀다. 하긴 토니 스타크도 피터가 본인과 정반대로 영웅심리가 전무하고 순수한 선의로 움직이는 인물이라 후계에 적임이라고 생각했을 터다. 여기까지 온 마당에 하나마나한 말이지만 나의 마지막 질문은, 왕위도 아니고 애초에 왜 후계자를 찾아야 하는지다. 아이언맨의 기술과 힘은 반드시 한명에게 배타적으로 상속돼야 할까? 체력과 지력을 한몸에 융화한 브루스 배너는 ‘스타크 재단’의 좋은 관리자가 되지 않을까? 그토록 채우기 힘들다는 아이언맨의 빈자리는 그냥 빈자리로 남겨두고 가면 안 될까? 물론 답은 모두가 안다.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단단히 묶으려면 계보가 있는 편이 용이하다.
07/09
테크놀로지가 너무 발전해서 탈인가? <토이 스토리4>에서 중간 부분에 이야기가 엉킬 때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무엇이든지 다 시각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조건이 서사를 방만하게 만들 수도 있다. 포토리얼리즘에 입각했다는 의미에서 ‘실사판’으로 통칭되는 존 파브로 감독의 <라이온 킹>은 반대 의미에서 같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 리메이크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만들 수 있으니까” 외에 찾기 어렵다. <라이온 킹>의 문제점은 영화를 보기 전에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던 바다. 의인화와 표현주의를 완전히 제거한 극사실적 동물 캐릭터들이 원작과 똑같은 농담을 교환하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에서 인간의 관점을 투사한 드라마를 보는 것과 유사한 어색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것은 새로운 언캐니 밸리다. 사실적으로 그려진 동물들은 노래할 때도 별로 입을 움직일 수 없다. 모글리를 제외한 영화 전체가 CG로 구현된 파브로 감독의 전작 <정글북>은, 사실주의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일정 정도 동물 캐릭터들을 균등하게 카툰화해서 함정을 피했다. 예컨대 <정글북>의 시어칸과 <라이프 오브 파이>의 리처드 파커는 둘 다 사실적이지만 그 수준이 다르다. 몇몇 와이드숏에서 원작 애니메이션의 미장센을 그대로 복사하는 한편, 동물 근접숏에서는 자연사 다큐멘터리 비주얼을 고집하는 <라이온 킹>의 ‘실사’는 무파사의 죽음을 포함한 역동적 액션 시퀀스에서만 그나마 가치를 보여준다. 요컨대 <라이온 킹>은 연기가 나쁜 영화다. 제작과정에 인간 배우의 퍼포먼스 캡처가 들어갔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목소리 배우의 표정 및 몸 연기가 삭제된 스타일은 목소리 연기의 효과까지 덩달아 밋밋하게 끌어내린다. 도널드 글로버, 비욘세 등 카리스마 강한 스타를 캐스팅한 이유가 아리송할 지경이다. 그나마 만화 캐릭터처럼 행동하는 품바(세스 로건)와 티몬(빌리 아이히너)이 너럭바위의 사자처럼 졸음에 빠져가던 나를 깨웠다. 여러 원형적 이야기를 섞은 <라이온 킹>의 서사는 1994년 당시에도 신선하지 않았는데, 2019년 판의 극사실적 비주얼은 이야기의 구태의연함과 허술함을 부각시키는 역효과를 낸다. 실사 리메이크가 불가피했다면 대안은 없었을까? 심바(도널드 글로버)에게 실망한 날라(비욘세)가 스스로 저항의 리더십을 쥐었다면? 실제로 날라는 “나라도 무파사를 닮아서 다행이야”라고 말한다. 혈통을 못 잇는다면 사자 무리의 특성상 그도 무파사의 딸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황폐한 프라이드 록을 떠나 사자들이 품바와 티몬의 마을로 이주해 컬처 쇼크를 겪는 전개는? 자연사 다큐멘터리 형식에 어울리게 아예 대사를 없애고 관찰로 서사를 전개하며 노래는 화면 밖 음악으로 넣으면? 줄리 테이머가 연출한 브로드웨이 버전 <라이온 킹>을 영화로 옮겨, 의인화된 퍼포먼스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은 어땠을까? 망상이지만 어느 카드나 지금의 <라이온 킹>보다는 활력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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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舊)스카
존 파브로 감독의 <라이온 킹>을 보고 나서, 불쑥 그리워진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의 캐릭터는 스카(제레미 아이언스)다. 제레미 아이언스의 스카는 위협적인 악당 이상이었다. 포토리얼리즘에 입각한 디자인은, 애니메이션판 스카의 (리처드 3세를 연상시키는) 요사스럽고 낭창한 몸의 선을 도저히 따를 수 없다. 폭력성이 부각되는 신판 스카에 비교해, 구(舊)스카는 영광스런 자화상을 상상하며 자기도취에 빠지는 마키아벨리주의자다. 최고급 와인 같은 음색으로 제레미 아이언스가 읊고 노래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