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레드슈즈> 홍성호 감독·김상진 애니메이션 감독,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했다"
2019-07-25
글 : 이주현
사진 : 오계옥
김상진 , 홍성호 감독(왼쪽부터).

<레드슈즈>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만든 한국의 장편애니메이션이다. 우연히 마법 구두를 신고 레드슈즈로 변신한 스노우 화이트 공주가 저주를 받아 초록색 난쟁이로 변해버린 일곱 왕자들을 만나는 이야기로, 모두에게 친숙한 동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새롭게 변주했다. 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2003)의 시각효과를 담당했고 CGI &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로커스를 설립한 홍성호 감독이 <레드슈즈>의 연출을 맡았다. 든든한 아군이 되어준 인물은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빅 히어로>(2014), <겨울왕국>(2014), <모아나>(2016) 등에 참여하며 애니메이터, 캐릭터 디자이너로 20년간 활약한 김상진 감독이다. 김상진 감독은 <레드슈즈>에 캐릭터 디자인과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참여했다. 홍성호 감독과 김상진 애니메이션 감독을 만나 10년 넘게 공들인 <레드슈즈>의 탄생 과정을 들었다.

-<레드슈즈>는 어떻게 시작된 프로젝트인가.

=홍성호_ 시놉시스를 쓴 건 2007년이다. 그전에 오리지널 스토리를 개발해 <에그콜라>라는 장편애니메이션을 준비 중이었는데 투자 상황이 여의치 않아 완성하지 못했다. 그때 ‘다음엔 전세계 사람들이 알 만한 설정을 가져와 쉬운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모티브로 해서 <레드슈즈>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고 로커스라는 회사를 차렸다.

-<레드슈즈> 제작에 10년이 걸렸다는 이야기는 한편으로 한국에서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방증하는 것 같다.

홍성호_ 영화를 만들면서 제일 어려운 게 뭐냐고 물으면 시나리오 작업이라고 얘기하는데, 그건 멋있는 대답이고, 솔직히 제일 힘든 건 투자 문제다. <레드슈즈> 제작에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도 마찬가지다. 작품에만 매진할 수 있는 상황이면 좋은데,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경우 회사를 유지하면서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 물론 시나리오는 정말 중요하다. 실사영화는 배우들의 연기가 영화를 메워주기도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그런 게 없다. 제작하는 사람이 오롯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애니메이션에선 시나리오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시나리오 작업에 있어서도 쉽게 타협할 수 없었다.

=김상진_ 오랫동안 미국에서 일했지만 한국인으로서 한국 애니메이션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멋진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나오지 않을까, 참 안타까웠다. 그러다 홍성호 감독의 <레드슈즈> 프로젝트를 만났고, 디즈니에서 쌓은 20년의 경험이 한국 애니메이션에 보탬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영화에 참여하게 됐다.

-세계 시장을 겨냥한다는 목표가 처음부터 분명했나.

홍성호_ 제작비 회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레드슈즈>의 제작비가 220억원이다. 이 제작비를 온전히 한국의 영화시장에서 회수하는 건 어렵다. 자연스레 해외 시장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해외 시장이라고 했을 땐 영어권 시장이 크니, 그래서 영어로 영화를 만들게 된 거다.

김상진_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나 미국에서 만들어지는 영화와 비교하면 200억원 예산은 거의 미국 독립영화 수준이다. 스튜디오의 규모나 자본, 인력 면에서 할리우드를 따라가긴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진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홍성호_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 여건상 사건이나 배경을 크게 벌일 수 없었다. 캐릭터와 연기, 드라마에 더 신경을 쓴 것도 그 때문이다.

김상진_ 그러면 애초에 일곱 난쟁이가 아니라 소수의 캐릭터가 나오는 아이디어를 생각하셨어야지! (웃음)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에 <슈렉>의 설정과 주제를 결합한 모양새다. 시나리오 변천사도 어마어마했다고 들었는데, 지금의 이야기가 완성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나.

홍성호_ 2010년 12월에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모티브로 쓴 시놉시스 <일곱 난장이>가 대한민국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 후 여러 번 이야기가 바뀌었다. 지금껏 쓴 시나리오를 다 출력하면 회의실 하나를 채우고도 남을 거다.

김상진_ 시나리오를 몇고까지 썼더라?

홍성호_ 기억을 다 못할 정도다. 처음엔 레드슈즈가 신발을 신고 변하는 설정이 없었고, 동화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나뉘어진 버전도 있었다. 초반엔 내면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내면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조차 편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야기를 또 뒤집었다. 그런 과정의 연속이었다. (웃음)

-주인공인 스노우 화이트/레드슈즈(클레이 머레츠)에겐 어떤 개성을 부여하려 했나. 더이상 아름답기만 하고 수동적인 공주 캐릭터는 통하지 않는 시대다.

홍성호_ 외모는 이래야 해, 내면은 이래야 해, 그런 편견을 없애는 것에서 시작했다. 특별한 능력을 지니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내면이 특별히 아름다운 것도 아닌, 평범하고 솔직한 보통의 캐릭터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진정성 있고 솔직한 캐릭터. 레드슈즈 캐릭터의 매력이라면 우리와 비슷하다는 점이 아닐까.

-최근 들어 디즈니의 여성 캐릭터 변화도 두드러진다. 디즈니가 시대적 흐름과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듯 보이는데, 디즈니에서 일할 당시 스튜디오 내부의 분위기는 어땠나.

김상진_ 그렇게 변하는 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상이 바뀐 건 오래전부터 시작됐다고 보는데, <뮬란>의 뮬란이라든지 <미녀와 야수>의 벨이라든지. 여성, 성소수자, 소수민족 등 약자나 소수자로 여겨졌던 사람들이 진작 그랬어야 할 본래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최근 디즈니 내부의 가장 큰 변화라면 지난해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수장이 바뀌었다는 건데, <겨울왕국>의 감독 제니퍼 리가 여성인데, 그가 수장이 되면서 변화가 더 가속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 디즈니에 입사했던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여성 애니메이터는 굉장히 드물었는데 지금은 슈퍼바이징 애니메이터 중 상당수가 여성이다.

홍성호_ 애니메이션쪽에선 훨씬 예전부터 여성주의에 대한 흐름을 반영했다고 본다. 워낙 공주 이야기가 많지 않나. 우리 회사(로커스)만 보더라도 여성 아티스트 비율이 꽤 높다. 디즈니는 남자 주인공이 더 나와야 되는 것 같다. (웃음)

김상진_ 디즈니에 있을 때 워낙 공주 캐릭터, 여성 캐릭터를 많이 그려서 오랜만에 남자주인공 캐릭터를 그릴 수 있었던 <빅 히어로> 작업이 즐거웠던 기억도 있다. (웃음)

-스노우 화이트/레드슈즈 캐릭터 디자인의 경우 모티브가 된 게 있나. 이 캐릭터의 핵심은 빨간 구두를 신었을 때와 신지 않았을 때 외모가 변한다는 것이다. 원래의 스노우 화이트는 먹는 것을 좋아하고 힘이 세며 통통하고 귀여운 외모를 지녔고, 빨간 구두를 신으면 모두가 첫눈에 반할 정도로 날씬하고 아름답게 변한다.

김상진_ 기본적으로 디자인을 할 때는 주변 사람들, 개인적으로 알 만한 사람들의 모습을 참고하는 편이다. 이번엔 좀더 상상력에 의존한 작업이었는데, 시나리오에 묘사된 성격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디자인을 했다. 또 스노우 화이트와 레드슈즈의 외형이 서로 다른데, 어떻게 한 인물처럼 보이게 만들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눈, 코, 입의 모양을 비슷하게 그려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전혀 다른 모습의 두 캐릭터로 가게 됐는데. 애니메이터들이 캐릭터의 액팅을 잘 표현한다면 서로 다른 외모를 지녔어도 충분히 동일한 캐릭터로 보일 거라 생각했다.

홍성호_ 잘생긴 왕자 멀린이 저주를 받아 초록색 난쟁이로 변한 것도 그렇고, 스노우 화이트가 마법 구두를 신어 변신하는 것도 그렇고,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봐 경계한 지점이 분명 있다. 예를 들어 스노우 화이트의 체중이 줄어들어 예뻐진 것처럼 보일까봐 체중의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외형의 캐릭터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멀린이 난쟁이가 된 것도 왜소증에 대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어 색깔과 형태를 모두 바꾸는 식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스노우 화이트에게 통통하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 관객이 보기에 스노우 화이트는 평범한 보통 사이즈의 여성이다.

김상진_ 일반적으로 캐릭터 디자인 작업을 할 때 대비의 효과를 많이 쓴다. 비례의 대비. 큰 사람은 더 크게, 작은 사람은 더 작게 함으로써 시각적 대비를 주는 거다. <레드슈즈>에서도 마찬가지로 대비를 강조한 측면이 있다.

-진짜 나를 발견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라는 주제 면에선 <슈렉> <미녀와 야수>가 연상된다.

홍성호_ <슈렉>이나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아이 필 프리티> 같은 영화를 볼 때, 결말에 가서는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나 역시 이 작업을 시작할 때 ‘외모가 이러니까 내면은 이래야 돼’라는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외모와 내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왜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내면의 아름다움을 얘기하는 것에서 좀더 나아가보자고 생각했다. 이 영화의 질문은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누구일까?’이다. 내면이 아름답고 외면이 아름다운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제일 예뻐 보인다는 얘기다. 그래서 멀린이 자신의 저주를 푸는 과정도 결국 자기와의 대화로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가지 모습으로 살아가는 멀린에게 ‘너는 누구인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게 했다.

-클레이 머레츠, 샘 클라플린 등 할리우드에서 활약하는 스타 배우들이 목소리 출연한 것도 화제다.

홍성호_ 우선 클레이 머레츠는 유명하지도 않은 스튜디오에서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 감독이 만드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시나리오를 보고 출연을 결정해주었다. 실제로 만나보니 생각이 깊고 마음이 열려 있는 멋진 친구였다. 멀린의 목소리를 연기한 샘 클라플린도 마찬가지다. 목소리 녹음과 관련해선 정말 에피소드가 많은데, 한번은 샘 클라플린이 피지에서 다른 영화 촬영 중일 때 일정을 맞추느라 피지의 한 호텔에서 녹음을 한 적도 있다. 클로이 머레츠는 마이크 앞에 서면 완전히 변한다. 샘 클라플린은 애니메이션 작업이 처음이었는데 자신이 마음에 들 때까지 정성을 쏟았다. 우리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영화를 이해하고 있었다.

김상진_ 보이스 디렉팅과 관련해 도움 주신 분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뮬란>의 감독이었고 디즈니에서 오래 함께 일했던 토니 밴크로프트가 보이스 디렉터로 참여했다. 마법 거울의 목소리를 연기한 사람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쿠스코? 쿠스코!>에서 악당 사이드킥 목소리로 출연한 패트릭 워버턴인데, 내가 이분을 캐스팅하자고 했다. (웃음) 캐릭터와 목소리가 아주 잘 맞았던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홍성호_ 로커스에서 준비 중인 차기작이 있는데 아직 공개할 단계는 아니다. 어쨌든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꾸준히 만들고, IP가 중요한 시대라 회사 차원에선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싶다. 우리의 롤모델은 디즈니다.

김상진_ 좋은 작품이 있으면 언제나 참여하고 싶다. 조건이 있다면, 7명 캐릭터가 주인공인 작품은 이제 더이상 안 하고 싶다는 것? 이건 사실 7명도 아니지. 변신을 하니까 7 곱하기 2였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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