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정장 차림의 실장님이나 부장님은 잊어도 좋다. <봉오동 전투>에서 조우진의 뾰족한 콧수염과 길게 기른 머리는 한눈에 쏙 들어올 만큼 강렬하다. 영화에서 그가 연기한 병구는 마적 출신으로, 해철(유해진)을 따라 독립군이 된 남자다. 영화 속 독립군 중 유일하게 일본어를 구사할 줄 알고, 총쏘기에 능한 인물이다. 조우진은 “병구를 포함한 모든 등장인물들이 봉오동전투라는 만만치 않은 여정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작업”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어땠나.
=서사가 추격 신, 전투 신, 인물 몇몇의 드라마가 촘촘하게 배치돼 상승 곡선을 타는 구조다. 희한하게도 책을 읽을수록 심장박동이 점점 빨라졌다.
-그만큼 쾌감이 극대화된다는 뜻인가.
=이 책의 매력이, 감정이 상승 곡선을 타면서 이야기 끝까지 달림을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기회가 주어져 행복했다. 지금 사람들은 결코 실감하지 못할, 그때 그들의 각오가 어떠했는지 좇을 각오가 돼 있어야 그들의 심정을 작게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병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시나리오에 있는데….
=첫 미팅이 끝난 뒤 원신연 감독이 <마적>이라는 제목의 책을 한권 주셨다. 마적이던 병구가 어떻게 독립군이 되었는지 물어보니 읽어보라고 권한 책이다. 그 책이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병구는 항일을 위해 이 여정에 뛰어든 인물은 아니다. 해철에 대한 충성심 하나로 독립군에 합류했다. 그렇게 전투에 참가한 그가 작전이 점점 커지고 격렬해지면서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중점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그가 품은 마음과 꿈이 전투에 녹아드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유일하게 일본어를 할 줄 알아 독립군의 입과 귀가 되는 인물이다.
=병구는 현실밀착형 인물이라 할 만하다. 해철을 만나기 전에는 자신의 무리에서 우두머리였을 것이다. 나라도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기술이라도 연마하지 않았을까 싶다. 일본어 또한 교육을 따로 받기보다 생존을 위해 어깨너머로 배우면서 익혔을 것 같다. 어느 하나만 잘하는 게 아니라 총도 잘 쏘고, 발도 빠르며, 두루두루 할 줄 아는 게 많다. 어디에 던져놔도 굶어죽지 않을 인물이랄까. 무엇보다 묵직하고 날렵하며 진지한 가운데 나름 관객의 숨통을 틔우는 인물이라 생각하고 접근했다.
-외양을 보니 콧수염과 머리를 길게 길렀더라.
=촬영 전 병구를 설명하는 주요 키워드가 ‘유연성’이었다. 마적질을 하다 ‘어, 이거 예쁘네’, ‘나랑 잘 어울리네’ 싶으면 이것저것 몸에 걸쳤을 것이다. 그 시절에도 날라리가, 자유분방한 아방가르드가 있었을 테고, 그걸 병구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 말로 설명하면 ‘트렌드세터’인 셈이다. 정장 입을 때보다 몸도 마음도 자유분방해 너무 붕 뜨지 않도록 촬영 초반부터 신경 써야 했다.
-촬영현장이 산속이라 체력적으로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간 했던 작업 중에서 물리적으로 가장 힘든 현장이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마음까지 힘들진 않았다. 숨이 찰 만큼 힘들게 산에 올라갔고, 갑자기 비가 내려 한컷도 찍지 못하고 내려온 적도 있었고, 하산할 때는 배우도 스탭도 너나할 것 없이 함께 장비를 들고 내려왔다. 원래 아침식사를 잘 안 하는데 이번 현장은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삼시 세끼 꼬박꼬박 챙겨먹었다. 촬영이 끝난 뒤 열린 쫑파티에서 제작기 영상을 보았는데 무척 짠했다.
-촬영하면서 당시 독립군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해 울컥한 순간도 있었나.
=굉장히 많았다. 진짜 봉오동전투를 경험할 수 없지만 현장에서 동료들의 얼굴을 보고 숨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뛰고 피가 끓어올랐다. 진짜 폭탄이 빵빵 터지는 폭발 신을 찍을 때 어떻게서든 뚫고 나가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고, 동료 독립군의 거친 숨소리가 그렇게 위안이 될지 몰랐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독립 하나만 보고 위험한 작전에 뛰어든 독립군의 각오를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차기작은 이용주 감독의 <서복>과 변성현 감독의 <킹메이커: 선거판의 여우>다. 요즘 일복이 많다.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몇년 전만 해도 이렇게 좋은 작품에 참여하고, 다양한 인물을 맡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행복하고 다행으로 생각한다. 기대감이 점점 높아지는 만큼 앞으로도 계속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커져간다.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을까’, 출근할 때마다 늘 고민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실험 정신을 가지고 계속 도전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