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파경(破鏡)
2019-07-31
글 : 김혜리

*<미드소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녀들을 도와줘>

<그녀들을 도와줘>는 운전하며 눈물을 훔치는 리사(레지나 홀)의 출근길로 시작한다. 영화는 그날 아침 리사가 우는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는데, 그의 하루를 뒤따르는 영화를 본 후의 관객은 감독의 선택을 수긍하게 된다. 이 여자에게는 울 만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선정적 유니폼을 입은 젊은 여성들이 서빙을 맡는 레스토랑 ‘더블 웨미’의 성실한 매니저 리사는 온 세상을 짊어지고 있다. 못된 남자친구에게 휘둘리는 웨이트리스와 아이 맡길 데가 없는 직원을 도와야 하고, 환풍구로 침입한 도둑과 무례한 손님을 처리해야 한다. 소인배 사장은 직원들의 생활까지 보살피는 리사의 방식을 못마땅해하고 남편은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를 떠나려 한다. “슬픈 사람들은 내 전공이야”라는 리사의 말에는 본인도 포함돼 있다.

07/15

대학원생 대니(플로렌스 퓨)와 크리스티안(잭 레이너)은 4년차 연인이다. 하지만 크리스티안은 대니를 만난 지 4년인지 3년 반인지도 혼동할 만큼 애정이 식어버렸다. 집에 두고 온 양극성장애 동생은 대니의 큰 근심이지만 관계의 균열을 감지한 대니는 가족 문제를 토로할수록 크리스티안이 짐스러워할까 불안하다. 남자는 당사자인 애인과 해결을 도모하는 대신, 동성 친구들에게 스트레스를 흘리고 투정한다. 친구들이 대신 대니를 비난하도록 만들고 자신은 도리어 애인을 감싸며 악역을 피하는 방식이다. 친구 가운데 특히 마크(윌 폴터)는 대니에게 적대적이고 크리스티안이 지지부진한 관계를 끝내기를 바란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간주하는 성향이 강한 마크는 친구가 싱글로 돌아와 자기와 여러 여자를 섭렵하며 놀길 바란다. 마크의 미숙한 여성관을 논외로 하면 <미드소마> 전반에 제시되는 연애를 둘러싼 세 인물의 처지는 누구나 한두 가지쯤 경험해봤을 법하다. 더 사랑하여 상대가 진저리를 낼까봐 주눅 드는 마음, 어떻게 헤어지면 잡음을 최소화할지 계산하는 속내, 그리고 제3자가 보기에 백해무익한 연애에서 친구를 빼내려는 다소 주제넘은 책임감. 아리 애스터 감독은 하지만 이 보편적인 프롤로그를 극히 예외적인 가족 비극으로 끝낸다. 대니의 동생은 결국 정신적으로 무너지고 부모를 살해한 후 자살한다. 크리스티안은 관계를 정리할 타이밍을 놓친 채 미적거리다가 계획과 달리 남자 친구들과의 스웨덴 하지제(미드소마) 여행에 대니를 동반한다. 가족의 부고에 짐승처럼 울부짖던 대니는 안간힘을 다해 ‘좋은 여자친구’가 되고자 애쓰며 크리스티안과의 관계에 매달린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느라 억눌린 대니의 비탄은 발작적 구토로 배출된다. 여기서 가장 해로운 행위는 크리스티안의 가스라이팅(상대가 스스로 제정신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심리 조작)이다. 대니를 떼놓고 갈 예정이던 스웨덴 여행이 발각되자 크리스티안은 진작 말했는데 네가 흘려들은 거라고, 원래 같이 갈 작정이었다고 친구들까지 동원해 주장한다. 한쪽의 널빤지에 매달려 표류하는 사람처럼 궁지에 몰린 여자는 자기가 오해했다고 믿는 편을 택한다. 급기야 생일을 잊어버린 남자친구 앞에서 “내 잘못이야!”라고 선수친다. 크리스티안은 요컨대 괴물이 아니라 우리 중 누구나 될 수 있고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악역이다. 대외적으로 그는 불운한 애인 곁을 지키는 착한 남자지만 실상 대니의 고통을 외면해 그것을 괴어 썩게 만들고 극히 유약해진 의존적 마음을 이용하고 있다. <미드소마>는 나쁜 연애의 종말에 관한 영화다. 물론 민속 호러이자 밀폐된 장소에서 하나씩 시체가 늘어가는 슬래셔이고, 인체와 동식물을 접붙인 이미지를 전시하는 보디 호러이며 사상 최초 꽃꽂이 공포영화이기도 하다.

07/16

마침내 일행이 도착한 스웨덴의 코뮌 호르가는, 대니가 스스로에게도 은폐해온 비밀스런 소망을 우아하고 장려한 의식(ritual)으로 눈앞에서 보여준다. 퍼포먼스 아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의례의 나열이 대신하는 서사 전개는 <미드소마>와 감독의 전작 <유전>과의 가장 큰 차이다. 호르가의 무엇이 대니를 감화시켰을까? 고유한 경전에 따라 한점 의혹 없이 평생을 사는 마을 주민들은 개인의 삶을 결정하는 수고를 면제받는다.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이 일치하는 이 작은 국가에서 모든 사람은 탄생부터 죽음까지 같이 먹고 자고 울고 웃는다. 누구도 고아가 되지 않고 홀로 죽지 않는다. 무엇보다 고어영화로서 면모를 보여주는 죽음의 의례 장면에서 대니는 친구들과 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우리는 가족의 참사 현장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을 대니에게, 주민들이 ‘섭리’로서 흔쾌히 수용하는 죽음의 스펙터클이 끼친 영향을 짐작해볼 수 있다. 여기에 영적 합일의 촉매로 쓰이는 환각물질의 영향까지 더해져, 대니는 급격히 마을의 일원이 되어간다. 그런데 아리 애스터 감독은 대니에게 위안뿐 아니라 복수의 카타르시스까지 주고 싶어 한다. 유전병을 방지하기 위해 외부인과의 짝짓기를 필요로 하는 주민들은 크리스티안을 희생시키고, 결과적으로 여태 혐의에 그쳤던 ‘배신’을 대니가 눈으로 확인하게 해 복수의 빌미를 제공한다. 대니에게 깊이 공감하는 일부 관객은 해피엔딩이라고 믿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리 애스터는 장기간 지속된 연애가 괴로운 파국을 맞은 상황에서 대니에게 동일시하며 <미드소마>의 각본을 썼다고 한다. <유전>과 <미드소마>의 결말은, 직관에 따르는 연출과 시각화가 영화작가로서 아리 애스터가 갖는 독창성의 근원이자 약점임을 보여준다. 애니(토니 콜레트)와 대니의 어두운 여정을 아등바등 따라가던 관객은 오컬트적 피날레 속에 중심 캐릭터가 휘발되는 광경을 허무하게 목도한다.

남성감독 아리 애스터는 두 장편에서 여성 캐릭터에게 감정을 이입해 이야기를 착안했다. 그러나 그들을 그리는 방식은, 심원한 슬픔의 젠더는 여성이라고 지정하고 인물을 알레고리로 채용하는 데에 그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두 영화는 공히 나이든 여성의 나체를 그로테스크의 맥락에서 사용한다. <유전>은 막판에 애니를 밀교(密敎)적 풍경의 일부로 흡수시켜버린다. <미드소마>에서 대니의 캐릭터도 증발된 인상이다. 연인의 심리적 방치를 오래 견뎌온 대니는 고풍스럽게도 성적 배신을 목격하고서야 비로소 복수한다(따지고 보면 이 대목에서 크리스티안은 배반의 주체가 아니라 성적 제물이다). 고작해야 대니는 애인에게서 호르가 공동체로 의탁의 상대를 바꾸었을 뿐이다. 영화가 끝난 후 대니에게 20여년의 지난 삶은 ‘전생’으로 일축될 것이다. 호흡까지 동기화해 함께 울어주는 마을 여자들의 행위는 바깥세계에서 대니에게 필요했던 도움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지만, 감정의 모방이 관습인 공동체에서 이 행위가 갖는 무게는 미지수다. <유전>과 <미드소마>는 상반된 팔레트로 비탄과 공포를 풍경화하는 아리 애스터 감독의 재능을 증명하는 동시에, 그 감정의 거처인 인간을 지켜보는 끈기가 성장할 여지가 많다는 사실도 암시한다.

<피트니스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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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 드라마

<그녀들을 도와줘>로 인해 앤드루 부잘스키 감독의 전작이 궁금해진다면, 넷플릭스에서 <피트니스 스캔들>(The Results, 2015)이 서비스되고 있다. <피트니스 스캔들> 역시 특정 직업 세계를 관찰하는 드라마. 이혼 후 무기력증에 빠진 대니(케빈 코리건)는 갑작스런 유산을 받아 벼락부자가 되지만, 돈으로 무엇을 할지도 모르고 본인의 몸도 다룰 줄 모른다. 맞아도 쓰러지지 않으려고 찾아간 피트니스 센터의 열정 넘치는 대표 트레버(가이 피어스)와 냉정한 개인 트레이너 캣(코비 스몰더스)과 대니는 기상천외한 삼각관계를 이룬다. 부잘스키 감독의 영화로서는 처음으로 프로페셔널 배우와 함께 작업한 <피트니스 스캔들>은 <그녀들을 도와줘>와 마찬가지로 직장 동료이자 사적 친구인 관계의 속성을 면밀히 관찰한다. 세 주연배우의 연기는 고루 빼어나고, 특히 마블의 마리아 힐 요원으로만 코비 스몰더스를 알던 관객에게는 재발견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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