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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썸머> 박주영 감독 - 10대, 죽음, 일상
2019-08-01
글 : 이화정
사진 : 오계옥

햇빛 비치는 여름 교내 운동장, 썸 타는 10대 소년 현재(정제원)와 수민(김보라)의 해사한 웃음. 비극이 들어설 공간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들의 시공간에는 곧 죽음을 앞둔 현재의 시간이 깔려, 이들의 관계에 갈등과 불화를 일으킨다. 해야 할 것도, 생각할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닌 10대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로 발화되고, 의미를 가지는 걸까. <굿바이 썸머>는 현재와 수민 그리고 친구들의 미묘한 일상의 감정선 안에 ‘죽음’을 배치하고 이들의 예민한 감정선을 묘사하는 성장 멜로드라마다. 시한부, 10대, 멜로드라마라는 키워드를 나눠 갖는, 조시 분의 <안녕, 헤이즐>(2014)과 구스 반 산트의 <레스트리스>(2011)의 어느 중간쯤, 장편 데뷔작으로 가장 밝은 슬픔을 묘사한 이유를, 박주영 감독에게 들었다.

-죽음을 앞둔 소년의 이야기지만 마냥 어둡거나 비극적이지 않게 묘사한다.

=웬만한 또래 10대가 나오는 영화들은 다 본 것 같다. ‘시한부’보다는 ‘소년, 소녀’의 이야기, 성장 멜로드라마에 더 초점을 두었다. <허공에의 질주>(1988)를 보면 멋있는 소년(리버 피닉스)이 나오지 않나. 이야기보다 인물, 그렇게 멋있는 소년에 대한 이미지를 표현해보고 싶었다. 그들의 생각, 행동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소년의 이미지에 먼저 몰입해야 했고, 그래서 주인공으로 호감 가는 남자배우가 필요했다. 정제원 배우와 그런 지점에서 소통이 잘됐다. 그의 새로운 모습이 엿보인다는 건 자신한다. (웃음)

-이야기의 메인 흐름은 ‘고3 시한부 선고를 받은 소년 현재의 여름방학’이다.

=죽음을 전제하지만 눈물을 흘리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스토리를 전개하려 했다. 오히려 눈물이 맺히는 정도, 혹은 나중에 다시 이들을 생각했을 때 가슴이 저리는 느낌. 시간이 지나고 나서 감정의 여파가 다가오길 바랐다. 이야기 안에 큰 방해막을 넣되 영화에서 그 방해막이 작용하지 않게, 관객이 갑자기 슬퍼하거나 안쓰러워하지 않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런 플롯에서 나올 수 있는 클리셰를 피해보자고 생각했다.

-신파 멜로드라마의 클리셰를 피하기 위한 방법은 어떻게 찾아갔나.

=영화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각 개인의 시간을 만들어냈다. 캐릭터들이 집에 있는 시간을 상상해보았다. 현재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들도 영화에는 보이지 않는 그 시간 안에서 고민하고 부딪혔을 것이다. 영화에서 그들이 하는 대사는 혼자 있는 수많은 시간동안 고민 끝에 나온 자신만의 결론이다. 그렇게 상대에게 그 결론을 말하고 나서도 헤어지고 나면 또 후회하고, ‘내가 왜 그랬을까’ 다시 고민하고. 이런 평범한 10대가 가지는 감정을 담고자 했다.

-극적인 지점을 포기했을 때 오는 단조로운 서사에 대한 위험부담도 있다.

=앞서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제작 지원을 받은 시나리오는 지금보다 훨씬 내러티브가 강한 영화였다. 그런데 그 작품이 여러 문제로 불발되고 나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소년’이라는 설정만 두고 다시 써내려갔다. 시나리오를 쓴 후 아는 촬영감독님들에게 많이 보여줬다. 굴곡 없이 평범한 이야기다보니 이게 영화적으로 찍을 만한 이야기인가 고민이 되어서였다. 저예산으로 첫 영화를 연출한다고 하니 ‘센 영화, 연출이 드러나는 영화를 해야 하지 않겠냐’는 충고도 많았다. 연출적인 지점이 보이지 않으면 감독 데뷔작으로는 오히려 마이너스가 아닐까라는 의미였다. 나도 그 부분을 고민하다가 결국 지금의 전개로 밀어붙이자 용기를 냈다.

-현재의 죽음에 대해 친구들은 ‘왜 친한 나한테 먼저 말하지 않았느냐’고 화를 내거나, ‘고3이니 입시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들이 가진 이기심과 죄책감 같은 감정을 거르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낸다.

=친구들의 행동이 귀엽게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서로 자기의 입장을 주장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이나 비극은 사실 막연한 무엇일 것 같다. 만약 이 설정을 그대로 어른 사회로 옮긴다면 굉장히 이기적이고 지질하고 현실적이 되지 않을까. 홍상수, 에릭 로메르 감독의 영화처럼 현실적으로. (웃음)

-어른들이 이 서사에서 배제되고 10대만의 이야기로 전개된다는 점도 죽음의 존재를 잊게 만드는 장치다.

=이들이 보호받거나 의지하는 대상이 보이지 않게 하려고 했다. 대사에서도 선생님이나 부모에 대한 언급은 뺐다. 가족이 나오면 관객은 그 순간 부모의 입장을 생각하게 되고, 현재의 죽음에 대한 비극성이 강조될 것 같았다. 초점을 분산시키거나 확장시키지 않고 아이들의 이야기로 모으고 싶었다.

-학교 운동장, 교실, 도서관, 학원, 편의점 등 현재와 친구들의 일상의 동선을 연출해낸다.

=원래 인물들의 걸음을 통해 동선 전체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들이 걸어서 찻길을 건너고, 롯데리아와 맥도날드를 지나서 지하도를 건너면 학원 건물이 나오고… 이런 식으로 아이들이 생활하는 공간을 리얼하게 보여주려고 했다. 한번 전체를 보여주고 나면 갑자기 어느 공간이 나와도 그 근처라고 생각할 수 있게 계획했다. 실제 로케이션 장소가 인물들의 동선과 일치한다. 그런데 계획처럼 전부는 못 보여주고 일부 공간은 그 안에서 움직인다.

-현재의 ‘현재’ 시간에 플래시백 장치를 흥미롭게 활용한다.

=사실 영화의 시간이 섞여 있는 것 자체가 큰 의미는 없다. 그들이 대화에서 어떤 현실을, 감정을 보여주는지가 중요했다. 시간의 구조가 섞여 있을 때 오는 약간의 불편함을 통해 관객이 앞서 이들이 했던 대사나 행동을 되짚어 생각해보게 되고, 조금 더 이해해보는 지점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시간의 배치를 구조적으로 활용했다.

-비극적 정서를 꾹꾹 눌렀던 건 결국 10대 소년 현재에게 다가올 ‘미래’의 죽음이 아닌, ‘현재’의 일상이 주는 다양한 감정과 시간을 표현하고자 함이다.

=‘현재’라는 이름을 그래서 상징적으로 사용했다. 다소 촌스럽게 느껴지는 뻔한 상징일 수 있지만 소년이 그 이름으로 불릴 때 관객이 지금 자신들의 현재를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

-연출부 생활을 오래 했다. <연인들>(2008), <조금만 더 가까이>(2010) 등 김종관 감독의 작품을 비롯해 <티끌모아 로맨스>(2011)까지, 참여 작품 중 멜로영화가 꽤 보인다.

=2006년 단편 작업 하나를 했고 상업영화 현장에서 연출부, 조감독을 했다. 초창기부터 함께한 김종관 감독님은 멘토 같은 분이다. 슬레이트 치는 것도 모를 때 그것부터 배우면서 했으니까. 멜로영화 제작이 줄어들고 있지만 내가 보고 자라고 정서적으로 공감했던 건 역시 멜로 장르였다. 과거 선배들이 했던 좋은 작품들이 또 나왔으면 하고, 분명 멜로영화에 호응하는 관객층도 있으리라 본다. 첫 장편을 끝내고 또 계속 해나가겠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장르는 멜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에 이어 곧 개봉인데.

=김보라 배우도 큰 힘이 됐다. 드라마 <SKY 캐슬>이 그렇게까지 호응을 얻을 줄 몰랐다. <SKY 캐슬>보다 먼저 찍었는데, 우리 영화에 ‘스카이반’도 나오고. (웃음) 우리 영화와 음악감독님도 같다. 지인들이 얼른 <SKY 캐슬>에 이어 개봉하라고, 제목도 ‘스카이 스쿨’로 하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더라. 이 작품을 발판으로 앞으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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